
19화 불가능한 도전
35년 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백설공주의 작업 진행이 본격적인 궤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월트의 갑상선 질환 때문에 작업이 완전히 멈춰있다가 다시 진행된 지 몇달이 채 흐르지도 않은 상태였다. 월트는 로이에게 스튜디오의 다른 것을 희생해서라도 이 작품을 일년 내로 끝내겠다고 못박았다. 이미 34년에 이 작품을 위해 대대적인 사원모집을 벌이기도 했다. 대공황의 여파로 졸지에 실업자가 된 애니메이터들이 줄줄이 주급을 제대로 그리고 많이 지불할 수 있었던 월트의 스튜디오로 몰려들었다. 아트 배빗(훗날 파업을 일으키는)이나 워드 킴볼같은 유명 애니메이터들이 이 시기에 디즈니 스튜디오에 들어왔는데 스튜디오의 최정상급 아티스트였던 배빗이나 프레디 무어같은 경우는 주급으로 무려 만 오천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걸출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도 스토리는 명확하게 나오지도 못했고 월트는 일년 전과 마찬가지로 백설공주가 난장이들과 처음 만나는 장면을 작업 중이었다. 심각할 정도로 더디게 작업되던 스토리는 지나치게 연출을 꼼꼼하게 살핀 탓이었다. 스크린에 잠깐 등장하는 새들이 꼬리로 거미줄을 털어내는 장면이나 백설공주의 사소한 행동들까지도 애니메이터들과 월트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이런 증세가 심각해져 월트가 각각의 씬의 조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외우고 다닐 지경이었다. 12월 즈음 되어서야 전체적인 스토리의 윤곽이 확실하게 결정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디테일한 면은 좀처럼 확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때만해도 시나리오에 들어갈 예정이던 난장이들이 다섯명이었으니 애니메이션 작업은 사실 시작도 못한 상태였다.
구체적으로 백설공주에서 월트가 가장 먼저 작업하자고 한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코믹한 부분들이었다. 그들이 원래 만들던 단편 영화라는 것이 본디 코미디가 중심이어서 그게 우선적으로 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월트는 코미디 다음엔 무서운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는 슬픈 장면을 만들자고 제의했다. 다들 사실 애니메이션하면 웃기는 것만 만들 줄 알았지 진지한 장면은 다루는데 서툴렀다. 애니메이션의 성장만큼 애니메이터들도 급속하게 성장해야만 했다.
12월 중순부터 드디어 애니메이션 작업도 시작되었다. 월트는 각 캐릭터에 맞게 애니메이터들을 캐스팅했다. 가령 심술쟁이(Grumpy)는 실제로 심술맞은 성격이었던 애니메이터 빌 타이틀러가 맡았다. 씬 별로도 각기 재주가 다른 애니메이터들이 씬의 성격에 맞게 캐스팅되었는데 각각의 씬은 약 두달간의 실험기간이 주어졌고 스토리조가 여섯개로 나뉘어 애니메이터와 협력해 할당된 부분을 만들어 합치는 방식으로 작업되었다.
월트는 총감독으로 자청한 데이브 핸드에게 감독 자리를 넘겼다. 그러나 본격적인 연출작업이 시작되면서 곧바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애니메이터마다 씬과 캐릭터를 따로 맡기면서 일이 충돌할 것을 예상치 못한 탓이었다. 애니메이터들은 제가 맡은 캐릭터가 다른 애니메이터가 작업하는 씬에 등장하면 어떻게될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렸다. 제각기 스타일이 달라서 누구는 씬의 작업에 매달린 반면 누구는 캐릭터에 주로 관심을 두었다. 게다가 보조 작업을 해줄 사람들이 너무 부족했다. 월트는 백설공주 한편을 위해 300명의 보조 인력을 추가로 뽑기로 하고 스튜디오의 애니메이터 돈 그래엄과 조지 드레이크를 뉴욕으로 보냈다. 그러나 2천명의 후보 중에 뽑혀온 인물은 당초 예상의 십분의 일도 안되는 고작 22명으로 나머지는 자격미달판정을 받고 집에 되돌아가야 했다. 이 때 뽑혀진 사람 중에는 훗날 디즈니의 주역이 된 올리 존스터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스튜디오가 백설공주에 한창 열을 올리면서 이제는 완전히 장편 애니메이션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로는 2주에 한번씩 단편도 만들었지만) 과다한 업무의 중압감도 대단해서 애니메이터들 중 상당수가 알콜 중독인 상태였다.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풀거나 뭔가 아이디어를 얻어보려고 한 두 잔 술을 마시던 애니메이터들은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술집으로 드나들었고 본래는 금지되어있었던 사내 연애나 하룻밤 불장난도 술김에 무분별하게 벌어지곤 했다. 실제로 그들 중 적지 않은 애니메이터들이 결국은 스튜디오에서 제 짝을 만났다. 대개 이십대 중반내외였던 애니메이터들은 흡사 대학교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비슷한 또래로만 이루어진 직원 수가 이미 500명에 달하고 있었다.
1936년 여름, 애니메이션 작업은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금전적인 위기가 닥치고 있었다. 슬슬 돈의 압박에 시달리면서 그리는 필름길이만큼 추후에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할 정도였다. 애니메이션 작업도 수월치 않았다. 애니메이터들의 기싸움이 문제였다. 다들 장편 애니메이션을 처음 만드는 것이어서 내놓는 의견도 천차만별이었다. 단편 애니메이션과 장편 애니메이션은 너무나 달랐다. 선의 굵기를 표현하는 일부터 (물론 그들 스스로 처음 만들어낸 규칙들이지만) 질감을 표현하는 일은 단편 애니메이션식으로 작업하다가는 결국 어느 단계에서 주저앉아버리곤 했다. 여러 의견차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애니메이터들끼리 서로를 비방하는 일도 생겼다. 인간 캐릭터에 주목하느냐 아니면 동물 캐릭터에 집중하느냐도 엄청난 다툼거리였다. 결국 월트가 인간을 실제처럼 표현하는데 한계를 느낀다며 두 손들고 포기하면서 영화의 초점은 작은 동물들과 난장이들로 맞추어졌다. 영화의 제목이 '백설공주'가 아닌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인 것도 실은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영화에서도 눈치챌 수 있지만 월트의 캐릭터에 대한 관심은 난장이들에게 주로 집중되어 있었다. <계속-다음이 마지막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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