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의 부활, 잠자는 숲속의 공주 디즈니 리뷰

잠자는 숲속의 공주 Sleeping Beauty (1959)
-50주년 플래티넘 DVD 발매기념 리뷰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피노키오, 신데렐라 이후에 디즈니가 동화를 다루지 않은 건 더 이상 새로운 걸 보여주기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그 영화들은 각기 역사의 새로운 단절로써 작용했고  그만큼 획기적이었으며 비교할 수 없이 가치있는 작품들이었죠.

차이코프스키의 발레를 기본으로 한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디즈니 사상 최고가의 프로젝트였습니다. 월트는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이 작품을 통해 보완시키고 더 나아가 완벽하게 새로운 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해요. 그렇지만 멀티플레인 카메라 기법이나 그리피스 스타일의 영화 표현기법, 이미지와 음악의 유동적인 결합은 이미 이전작품들을 통해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전통을 계승하되 동시에 선구적인 존재가 되는 것. 그를 위해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이 강구한 방법은 이전까지의 스타일을 버리고 사실주의와 디즈니의 전통을 결합시키는 것이었죠. 실험적으로 시네마스코프(2.66:1)로 만들어진 바로 이전 작품 <레이디앤 트럼프>와 다르게 테크니라마를 적용시켰는데 원화 자체를 크게 제작해 배경의 디테일을 극도로 살리는 방법을 취했다고 합니다. 프레임 하나하나를 완성된 예술품으로 만드는게 이 작품의 지향점이었죠.

(오리지널 포스터)

작품의 총 디자이너 아이빈드 얼이 유명한 '유니콘 타피스트리'에서 영감을 얻어 중세 예술과 페르시아 양식을 합쳐 영화에 막대한 디테일을 불어넣었는데, 숲이 등장하는 시퀸스에서 나무 하나하나마다 주름을 세세하게 그려넣을 정도로 이 작품의 작화는 극단적으로 놀랍습니다. 게다가 캐릭터도 이전과 다르게 길고 각지며 동시에 조금 더 인간답게 변형되었는데 단순히 로토스코핑만을 사용한게 아니라 라이브액션에서 캐리커처를 따와 캐릭터의 행동에 사실감을 입혔지요. 이를테면 오로라가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들썩이거나 마녀의 동작과 시선의 교묘한 조화라던지 당대로는-데이터 베이스도 없고 무조건 수작업인- 상상도 못할 기술적(혹은 노가다의) 성취를 이 작품은 해냈습니다.
(부엉이는 마법에 걸린 사랑에 카메오로 나옵니다)

그러다보니 제작비가 엄청나게 불어났지요. 전쟁이후에 신데렐라의 성공으로 회사는 막대한 금전적 이익을 누렸지만 50년대 디즈니랜드 개장과 맞물려 약 10여년에 걸친 이 작품의 제작은 회사에 큰 타격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역사상 최초로 6채널의 다중 스테레오를 사용했는데 사운드 작업을 하는데 시간도 돈도 많이 나갔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디즈니는 1년에 한 작품을 내겠다는 바람을 실현시키지 못했습니다. 그 엄청난 제작비때문에 첫 극장수입에서는 본전도 찾지 못했고 이후 몇번의 재개봉을 통해 수익을 맞출 수 있었는데 그래서 처음에는 디즈니의 플래티넘 시리즈에 이름이 오르지도 못했었죠. 이미 2003년에 한번 스페셜 에디션이 출시되었는데 디즈니에선 이례적으로 5년만에 플래티넘 버전으로 재출시되었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재평가가 아주 최근에 일어난 셈이지요.
(마녀 마리피센트- 신데렐라의 계모와 성우가 같습니다)

작품은 디즈니의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감소한 첫 작품이었습니다. 말한대로 디즈니랜드의 개장과 티비쇼 출연등으로 도무지 이전처럼 스토리보드 하나하나를 통제할 시간을 가지질 못했다는데 덕분에 그가 책임을 위임한 아이빈드 얼의 고딕 스타일이 전적으로 작품의 성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디즈니 영화들 중에는 드물게 스토리 텔링의 디테일이 거의 사라진 작품인데, 원작의 중요한 막들을 편집해서 큼직한 시퀸스 몇개로 나누고 이를 나열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 구조가 지극히 단순합니다. 약 75분의 러닝타임에는 어떤 네러티브의 복잡성도 발견되지 않는데 흥미롭게도 이야기를 진행시키거나 기존 디즈니의 희극적 요소같은 것은 조연인 세명의 착한 요정들에게 전적으로 위임되어 있고(공주인 오로라는 채 20분도 나오지 않습니다) 나머지 장면들은 시각적인 충격과 아름다운 경이, 놀라운 표현력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작품의 인상적인 몇몇 씬들- 숲에서의 댄스, 성에서의 탈출과 용과의 대결, 댄스홀씬-은 그 카메라의 사용이나 아이디어가 매우 놀랍지요. 인물들이 클로즈업되는 쇼트같은 경우에는 그 시선처리같은 디테일이 후대에 널리 인용된 듯 싶은데 <인어공주>나 <미녀와 야수> 최근에 <마법에 걸린 사랑>등에서 그런 흔적들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특히 그런 기술력을 작품의 희극적 요소와 결합시켜 유기적으로 보이는게 만든 것이 영화의 큰 장점인데 두 요정의 자존심 대결-드레스 색이 계속 바뀌는- 아이디어는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울 뿐더러 디즈니의 이데올로기에 근접해 완벽한 표현력과 호소력을 지니는 명장면입니다. 더 설명하자면 디즈니식 희극과 아이빈드 얼의 예술성이 조합되어 이상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또 작품에는 영화사에 가장 인상적인 씬중 하나로 손꼽히는 마녀가 용으로 변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냥 보기에도 참 아름답지만 세세한 특수효과들-blur처리나 인물이 추상에서 다시 순식간에 구체화되는- 에 주목해보면 약 10초간의 장면에 응축된 애니메이션의 미술과 기술의 역사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요컨대 두가지 명장면을 종합해서 보면 이 영화의 선구적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느낄 수 있을겁니다.
(파리 디즈니랜드에 실제로 있는 슬리핑 비유티 캐쓸)

이 영화는 동시에 디즈니의 전통적인 스타일을 유지한 가장 마지막 작품이었는데 이후 제로그라피 시스템의 본격적인 도입으로 셀화를 복사할 수 있게 되면서(이전에는 수작업) 제작비가 크게 감소하고, 덧붙여 직선의 노출과 디테일이 뭉개지는 인상주의, 표현주의 화풍이 발달하면서 사실상 디즈니식 동화의 마지막 고지를 찍게 됩니다. 후에 80년대 컴퓨터 에디드 아트(Computer-aided art)가 발달하기 전까지 이런 값비싼 느낌이 나는 애니메이션은 더이상 존재할 수도, 만들 수도 없었던 것이죠. 그와 동시에 이 작품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후대 애니메이션들에게 스타일의 발달을 유도하게 되었는데 바로 다음 작품인 <101마리 달마시안>을 비롯한 모든 작품들이 이 영화의 미학적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영화의 예술적 성취는 이처럼 디즈니가 구사할 수있는 최정점에 다다르고 있는데 네러티브를 넘어선 그 아우라를 느끼는게 영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합니다. 이 작품이 현대 수많은 애니메이터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그런 예술에 대한 진지한 장인정신과 그를 비추는 찬란한 후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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