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E DVD가 나왔다는거

눈알 튀어나오게 잘 만든 영화가 하나 있다. 실은 몇번 보면서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개봉전날 가서 처음 본 날에는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삐져 나왔다.
월이는 기계다. 쓰레기를 가지런히 큐빅으로 만들어 차곡차곡 쌓는다. 이유도 모르고 의무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단순한 프로그래밍에 맞춰 살아왔지만 동시에 살아 숨쉰다. 영화 속 월이는 나름대로 미의식이 있다. 콜렉션에는 아이팟이 있고 픽사의 영화에 나온 인형들도 있다. 헬로 돌리를 즐겨보고 손을 잡는 씬을 가장 좋아한다. 손가락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척박한 철조각들이 엉킨채 쌍안경을 빼닮은(실제로 토이스토리의 쌍안경캐릭터에서 빌려왔다) 두 눈으로 낡아빠진 텔레비전을 가지런히 바라본다. 두 눈 속에 티비 속 광경이 반사된 것인지 안개 속 별이 투영된 것인지 눈물 어린듯 아름답다.

이 지극히 순수하고 단순한 기계는 그래서 더없이 행동 하나하나가 측은하다. 그는 늘 같은 것을 보고 듣는다. 700년동안 그래왔다. 인간을 닮았지만 거기에는 지적으로 완숙하지 못해 불완전함이 가득하다. 그의 시대는 끝나고 나머지 기계들은 모두 진화했다. 멸망한 지구에서도 그렇지만 신세계 액시엄에서도 그는 가장 바보다. 가장 순수하고 그래서 가치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의무면 의무고 사랑이면 사랑이고 손잡는거면 손잡는 것이다. 좋아하는 이브가 그놈의 임무 타령을 하니 임무를 완수하라고 장화 속 식물을 내밀고 다 터져가는 몸뚱아리로 버텨 인류를 지구로 귀환시킨다. 영웅흉내를 내는게 아니다. 그저 손 한번 잡아 보려고 모든 걸 희생한거다.

그런 그가 결국 메인보드가 타버려 기억을 모두 잃는다. 마침내 원하던 것을 얻은 순간이나 그 당사자의 영혼은 사라지고 없다. 살려보겠다고 별 짓을 다했던 이브는 이별의 순간을 받아들이고 키스를 한다. 입이 없으니 눈을 맞대는데 자력이 강해 스파크가 튀고 월이는 마법처럼 다시 기억이 돌아온다. 내 아이팟도 그랬었으면 좋았건만. 아무튼 해피엔딩을 당연히 예상했었던 모두가 마법에 홀린 듯 감동을 받는다. 영화는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기적위에 다시 설 것임을 이야기한다.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영화의 에필로그, 인상주의 화풍으로 그려진 월이와 이브는 두손을 잡고 장화 속 식물에서 자란 거대한 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픽사의 월이는 어찌보면 곤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나왔다. 네러티브를 귀중하게 여기는 픽사에서 엄밀히 말해 이 작품은 좀 괴짜다. 네러티브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3막으로 구성된 사건들은 매우 단순하고 역대 최저 캐스트를 기록했다. 인물도 거의 없고 그래서 관계의 복잡성도 없다. 기계들은 진화해봤자 유아적이고 말도 할 수 없이 몸짓만 애처롭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서 극한의 아름다움을 꺼내든다. 우주로 나간 월이 위로 펼처지는 얼음빛의 고리들, 이산화탄소 위에 아름답게 새겨지는 레이저. 스탠릭 큐브릭 못지않게 아름다운 화면들, 움직이는 많은 것들과 영화가 이야기하는 그 희망과 눈물어린 진심. 바보들도 사랑을 한다. 그 미미한 움직임이 눈물샘을 마구 자극할 줄이야. 정말로 마법이라도 부린걸까. 80년전에 월트디즈니가 만든 영화들을 본 관객들도 지금 나같은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DVD 한장 사서 내내 돌려볼 수 있다는 사실이 좋고 행복하다. 아마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미녀와 야수 이후로 두번째 노미네이션 정도는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DVD에는 앤드류 스탠튼의 음성해설을 비롯해 극중 지구를 망친 bnl사의 역사(원래는 요구르트 회사였단다), 삭제장면, 단편 프레스토, 다큐멘터리 픽사 스토리등 많은 서플먼트가 함께 담겼다. 그렇지만 역시 본편이 인생의 진리. 글쓰다 또 울 뻔했다.




덧글
mskim 2008/11/23 02:01 # 삭제 답글
저도 며칠 전에 친구 녀석이 어둠의 경로로 다운받은(^^;) 월이를 봤습니다. 영화를 봐도 데면데면했었는데 월이는 이상하게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정성들여 잘 쓰신 감상평 꼼꼼히 잘 읽고 갑니다. 또 들릅죠. (__)
레티노 2008/11/23 04:37 # 답글
남들이 뭐라던 저에겐 지구최고의 로맨스 영화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