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유혹이 무서운 이유 나쁜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무서운 이유

몇일 전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시골에 한적하지만 아주 작지만은 않은 병원, 저녁 7시가 넘어서자 고즈넉했던 분위기는 어디로 사라지고 로비에 환자고 보호자고 가릴 것없이 사람들로 가득찼다. 어떤 할아버지가 리모콘을 집어들고는 커다란 티비앞에서 sbs로 채널을 변경했다. 거기에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고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거기 앉아 우리는 다같이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봤다. 한창 드라마를 보던 중에 저기 멀리서 떠드는 무리들에게 한 할머니가 큰 소리로 화를 냈다. 드라마보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몰입감은 대단했다. 오랜만에 이 드라마를 보는 것인데도 참 이상했다. 어제 본 것같이 생생했고 30분은 아깝지않게 꽉 차있었다. 한 회에는 기승전결 구도가 다 들어있어서 악녀인 애리는 나쁜 짓을 저지르고 그에 따른 벌도 받았다. 그 사이 은재는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고 끝부분은 참 아쉽게도 마무리되었다. 예고편도 안해주니 내일 방송을 보지 않고서는 잠도 안올 판이었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방송 내내 은재에게 빙의되어 애리와 시어머니를 욕하고 있었다. 드라마는 순간적으로 허구에서 현실처럼 다가왔다.

아내의 유혹의 시청률이 30%를 넘었다고 한다. 이 시간대에 이렇게 성공한 드라마가 없었다는 걸 감안하면 드라마의 힘은 인정할만하다. 내 숭고한(?) 체험처럼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충실히 방송을 지킬 것을 무의식적으로 강요한다. 이 드라마는 분명 시청자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게다가 그 시청자층도 몹시 광범위하다. 10대 중심이나 20대 중심의 커뮤니티에도 이 드라마는 화제의 도마에 올라있다. 가벼운 수다의 단골소재가 되고 분명 다들 예측할만한 이야기가 다음에 펼쳐질 텐데도 다음 화를 애타게 기다린다. 즉 이 드라마가 종전의 주부 판타지를 건드리고 고연령의 주부만을 대상으로 하고있다는 해석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드라마는 모든 연령과 성별을 초월한 채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아유월드'의 탄생, 하이퍼 리얼리티

이 드라마의 문법은 과감하다. 개연성은 지나치게 상실되어 있고 몇가지 상황 연출에 극이 집중된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결과다. 이를테면 애리가 갑작스레 은재의 집으로 들어와 난리를 치는 장면이나 사람을 시켜 강제로 짐을 끌어내는 장면에선 '인'은 없고 '과'만 있다.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드라마는 설명해주지 않고 대신 펼쳐진 결과에 울부짖는 감정적 묘사와 거기서 벌어지는 신경전에 주목한다. 당연히 극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유도될 수 밖에 없다. 개연성은 없는데 황당하게도 빈틈이 없기 때문이다. 각각의 씬들은 그렇게 불연속적이고 충동적이다.

이것은 일종의 하이퍼 리얼리티다. 극중 은재의 고통과 복수, 변신은 모두 판타지에 가깝고 허구이다. 그러나 충동과 감각에 의존한 서사는 실제보다 더 강렬한 허구가 되고 현실의 욕망을 대체한다. 실제의 가치는 허구의 영상 속 강렬함 앞에서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개연성의 부족함을 의식치 않고 거기에 스스로를 과격하게 대입시킨다. 현실이 극을 모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거시적으로 드라마를 비판적으로 의식하기보다는 그 일부가 되어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는데 급급해한다. 시청자들은 이제 더이상 인식의 감동을 극에서 원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쇼크고 오락이다. 아내의 유혹은 그점에 몹시 충실하다. 전개를 늘리지 않고 (현재까지) 빠르게 끌어가며 캐릭터를 단순화시켜 쉽게 감정을 이입시킬 수 있게 만든다. 이것은 미덕일까 무책임할걸까. 문득 허구와 현실의 혼동은 드라마의 가치판단조차 모호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의 유혹은 현실에 가깝다.


'명품' 막장 드라마라굽쇼?

아내의 유혹이 '명품 막장 드라마'란 수식어를 시청자들로부터 획득한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막장 드라마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소비하고 싶은 시청자들의 충동은 막장 앞에 조심스레 명품이라는 단어를 새겨 놓았다. 극의 재미와 질적 담론이 상반되니 시청자들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 드라마는 좋은걸까 나쁜걸까. 이 드라마가 위험한 것은 바로 이런 가치 판단을 흐리게 하는데 있다. 실제로는 이 드라마도 막장이란 칭호를 얻은 다른 드라마와 큰 차이가 없다. 작품성이 바닥을 치고있는 '너는 내운명'을 생각해보자. 초반 이 드라마의 빠른 전개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얻는데 성공했다. 죽은 첫사랑에 가슴앓이를 하던 호세는 2주만에 새벽에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갖은 고비를 순식간에 넘은 태영커플은 60회만에 결혼에 성공했다. 문제가 되기 시작한 지점은 작가의 역량이 정해진 스토리를 모두 소모한 이후였다. 이는 '아내의 유혹'의 작가의 전작인 '그래도 좋아'나 얼마전 종영한 '흔들리지마'와 맥락을 함깨한다. 이들 드라마는 큰 서사에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실제적으로 거의 동일한 외형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모순이다.

방송사들은 드라마의 일관적 스토리텔링으로 그 개별적인 차이를 지우고 있는데 정작 시청자들은 거기에 차이를 부여한다. 동일한 것을 무한정 생산해내는 현재 드라마국의 문제점은 이렇게 시청자들의 합리화를 통해 간파되지 못하고 되려 독려받는다. 실제로 아침드라마와 일일드라마는 이미 오락적인 면을 제외하고는 다른 가치가 소멸해 버린 상태이다. 자극적으로 특정 시청자층을 노리려는 방송국은 일종의 매트릭스, 틀을 형성했다. 그안에서 다른 배우와 작가가 윤회할뿐 드라마들은 하나같이 다 똑같이 말도 안되는 내용과 자극성을 담고 똑같이 욕을 먹는 형상을 반복한다. 그 무수한 반복은 마침내 착각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시청자들은 아내의 유혹에 빠져드는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심지어 그것을 합리화시키는 무비판적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독일의 미디어 이론가 귄터 안더스는 시청자가 결국은 미디어에 대한 성찰을 잃어버리고 통제권을 미디어 자체에게 빼앗길 것이라 예측하였다. 현대의 텔레비전은 그가 예측한대로 생산과 소비의 틀에서 무한한 자극적 소비만을 시청자들에게 형성시킨다. 그새에 우리는 성찰의 기회를 잃어버린다. 그저 말초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그 쇼크에 취해 드라마를 소비할 뿐이고 이윤에 혈안이 된 방송사는 역시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막장 드라마를 생산해낸다. 아내의 유혹은 분명히 재미있는 드라마이다. 근데 마냥 재밌다고 소비해 버리면 결국 아내의 유혹이 일으키는 그 부정적 매트릭스는 계속 유지될 수 밖에 없다. 까짓것 드라마 하나가 이상하다고 문제라는 게 아니다. 이런 현상이야말로 '막장'이고 우리가 경계하지 않으면 안되는 불안한 징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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