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극이라고 다 막장이던가요 미디어탐구


불륜극이라고 다 막장이던가요


일찌기 불륜은 서사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예술의 흥미거리였고 인간의 역사를 이루는 요소이기도 했다. 요소라고 부르니 상당히 격상시켜주는 것 같지만 불륜은 누가 뭐라해도 흥미로운 주제고 인간의 역사와 궤를 함께 해왔다. 가령 2004년에 발견된 전북 완주의 1500년전 돌방무덤에서 출토된 유골들은 그 묻힌 순서와 DNA를 조사한 결과 어머니의 불륜 가능성이 있다라는 흥미로운 결론을 도출한 적이 있다. 처용가의 예도 있듯이 신라나 고려시대에는 남녀의 엇갈린 연애 사건이 자주 있었다고도 한다. '성적 퇴폐'라는 단어 조합은 몹시 흥미롭다. 이 두 단어의 연결은 인간이 가진 동물적인 본성과 스스로가 만들어낸 윤리적 의식의 팽팽한 대결과 고민을 보여준다. 누가 불륜을 진부하다고만 말할 것인가. 그 소재의 문학적 가능성은 끝이 없다. 

최근에는 통속극을 막장극이라고 부르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나 '나 대놓고 막장 드라마예요' 라고 선언하고 시작하는 극은 없다. 대개 처음에는 건전한 사회적인 목적, 메세지를 지니고 출발하기 마련이고 드라마가 장기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함량의 미달이 드라마를 막장으로 이끄는 경우가 태반이다. 통속극과 불륜극이 모두 막장 취급받는 건 썰렁한 일반화의 오류다. 

중요한 것은 소재를 다루는 방식일터. 막장드라마라고 폄하하지 말라던 아내의 유혹 제작진의 마음도 전혀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다시 한번 짚어주지 않아도 막장스럽긴 하다. 결말에 용서와 화해를 삽입한다고는 하지만 막장이던 것이 건전한 결말만을 담는다고 뿅하고 막장아님! 이러는 건 시청자에 대한 기만이고 농락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그 막장성을 희석시키는 무시무시한 구성력을 갖추고 있다. 시청자들을 정신없이 드라마에 빨려들게 하는 요소는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앞서는 형식의 파괴다. 4일 방송된 아내의 유혹은 그간의 전개중에도 가장 빠른 구성을 보여주었는데 스토리의 핵심과 인물들을 극단적으로 재편성해 마치 권투경기를 보듯 서로에게 연달아 펀치를 날리는 듯한 구성이 이어졌다. 드라마에 서스펜스를 유발하던 비밀들이 연달아 폭로되었고 인물들은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극단적인 감정을 오고가야만 했다. 1초도 눈을 못뗄 정도로 이야기의 호흡이 빨랐다.

최근의 드라마 작가들이 아내의 유혹 특유의 작법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런 면에서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아내의 유혹은 내용의 진부함을 형식의 파괴로 극복해냈고 그 새로운 스타일에 시청자의 눈도 도약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유혹 이후 다른 드라마에는 흥미를 못느끼는 시청자가 나온다해도 이상할게 없다. 한번 속도의 맛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은 정적인 분위기에 쉽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친절한 서사의 대명사인 헐리우드 영화들이 대중의 취향을 재편하고 영화의 정의를 모호하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그런 면에서 아내의 유혹은 드라마의 종말에 대한 과감한 선언으로 읽히기도 한다. 앞으로의 드라마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아내의 유혹은 시청자와 드라마 작가들 모두에게 본질적인 회의감을 안긴다.

한편 새롭게 시작한 드라마 미워도 다시한번 역시 중년의 불륜을 소재로 다룬다. 그러나 어느 누구에게도 동정하기 힘든 독특한 전략을 취한다. 주인공 한명인(최명길)은 냉혹한에 첫사랑을 평생 가슴에 품고 피상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여자고 정부인 은혜정(전인화)은 화려한 외면 내에 오히려 헌신적이고 순정적인 마음을 숨기고 사는 여자다. 바람을 피는 이정훈(박상원)은 어떤가. 평생을 꼭두각시처럼 타인에 의해 인생을 지배당하고 사는 사람 아닌가. 아이러니하게 그는 바람을 피울 때만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이 역시 인물 설정에 있어서 아주 참신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인간 자체를 바라봄에 있어 한층 복잡하고 더 나아가려는 시도가 있는 접근인 셈이다. 이를테면 이 드라마는 아내의 유혹 속 구은재처럼 시청자가 자기를 대입시킬 주체를 찾을 수가 없고 대신 모든 캐릭터에 대한 반사적인 방어자세를 취하게 만든다. 그로서 드러나는 것은 드라마가 표현하고 싶은 사랑의 얇팍함, 인간의 불완전함일 것이다. 드라마가 가진 극도의 정적이고 안정된 분위기는 이를 드러내는 또 다른 가능성이다.

불륜을 소재로 다루는 드라마는 많다. 이들은 때로는 막장극으로 집단화되어 사회현상으로도 대두되지만 사회의 모순을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소재중 하나이기도 하다. 과거 96년도 문화방송 드라마 '애인'은 겉은 안정적이지만 속은 고독과 우울로 넘쳐나는 사회 안정기의 중산층의 위기를 다루면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이 드라마를 불륜으로만 기억하는건 어찌보면 대단한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불륜 드라마는 장르가 아닌 소재이며 따라서 그것이 표현하는 목적과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이 불륜 드라마들이 막장이 되는 것은 제작진이 보여주려는 것이 단편적이고 국한적인데 몰두할 때다. 진지한 성찰없이 욕망만 난무하는 자극적인 시선에만 머문다면 그것이야말로 막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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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노랑잠수함 2009/02/06 02:50 # 답글

    아내의 유혹이라는 드라마는 시간이 맞지 않아 보지 못했습니다만...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시청자의 눈과 귀를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갈등이 필요하겠죠.
    아니, 갈등이 없다면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없는 거죠.
    불륜 드라마가 번번히 욕을 먹으면서도 일정 수준의 시청률을 담보하는 이유는...
    제 생각엔, 그 갈등의 구조를 확연하게 드러내고 선과 악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는 게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 속에서 선에 해당하는 법적 아내가 지고지순하고 악에 해당하는 정부가 파탈팜므라는 공식은 너무 오래도록 써먹었기에 진부하게 느껴질 것이고...
    오히려 선이어야 할 아내가 파멸적, 파괴적이고 악에 해당하는 정부가 청순가련형이라면 또 시청자들은 화끈하게 몰릴 겁니다.
    거기에 또 다른 남자 하나쯤 등장시키면 제대로 가는 거죠.
    가령, 아내의 옛 남자, 또는 정부를 사랑하는 남자가 등장하는데 이 남자가 알고보니 현재 남편의 배다른 형제, 소식이 끊긴 어릴 적 친구, 생사여탈권을 쥔 직장 상사, 사업을 위해 돈을 빌린 사채업자 등등...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평샐 한번도 겪지 못할 일이지만 왠지 주변에서 한번쯤 있을 법한 이야기를 적당하게 수위를 조절하는 데에 성공하면 좋은 드라마가 되는 것이고, 작가의 능력이 한계에 다달아 상상력이 모자라다면 그때부터는 결국 꼬이고 꼬여서 막장 드라마가 되는 거 아닐까요?^^
  • jun Boy 2009/02/06 15:19 #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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