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장르를 부활시킨 걸작 인어공주 디즈니 리뷰

인어공주 The Little Mermaid (1989)


인어공주는 사실 월트 디즈니가 백설공주 이후로 가장 먼저 손을 댄 작품이었습니다. 그의 초기 아이디어들이 어떤 이유로 고사된건지는 몰라도 장장 50년의 세월 동안 그 회사에서 다른 누구도 인어공주를 건드리지 않았던 건 좀 신기한 노릇이었죠. 물론 원작 자체가 영상화의 매력은 있지만 디즈니의 세계에서 다루기는 좀 애매모호한 면이 있었습니다. 종교적인데다 비극이었기 때문이죠.

흥미로운 것은 월트 역시 그의 초기 아이디어에서 이 작품을 비극으로 구성했단겁니다. 그는 종교적 색체를 빼고 이 작품을 완전한 비극, 그러니까 영혼을 통해 영생을 누리는 설정을 뺀 아주 슬픈 비극을 만들자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아이디어가 실현되지 못하고 월트가 죽은지 20년이 넘어서야 인어공주의 얘기가 80년대 디즈니의 신진 세력이던 애니메이터 론 클레멘츠에게서 나왔죠. 회사가 스플래쉬2(이것도 인어 이야기입니다)와 로저래빗에 매달려 바쁜 사이 그는 애니메이터 존 머스커, 작사가 하워드 애쉬먼과 팀을 이루어 인어공주의 초안을 만듭니다. 하워드 애쉬먼의 동료였던 뮤지컬 ' 리틀샵 오브 호러스" 작곡가 알란멘켄도 이들의 프로젝트에 참여했죠.

(덴마크의 인어공주 동상에서 따온 장면)


놀랍게도 이들은 작품을 해피엔딩으로 각색하였고 원작은 많은 면에서 바뀌었습니다. 인어공주 아리엘은 인간들의 세계를 궁금해하고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호기심 어린 십대 여자애가 되었고, 원작에선 기술자에 불과하던 마녀는 근본적인 사악함을 지닌 악당으로 바뀌었죠. 영화는 인간의 물건을 모으는 걸 좋아하는 아리엘이 인간을 증오하는 트라이톤왕과 갈등을 겪으면서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리엘이 우연히 왕자 에릭의 생일파티가 배에서 열리는 걸 보게 되는데 사고로 폭발하는 배에서 왕자를 구하고는 한눈에 반하게 되죠. 그런 사실을 트라이톤이 알고 크게 나무라자 화가 난 아리엘은 우슐라의 음모인줄도 모르고 그녀의 힘으로 인간이 됩니다. 대신 목소리를 마녀에게 주어야했죠. 그리고 마침내 왕자를 만나 서로가 사랑이란 걸 알아갈때쯤 우슐라는 또 다른 음모를 꾸밉니다.

(아리엘과 우슐라)


이들의 발상은 새로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워낙에 확고한 체계를 가진 안데르센의 동화를 벗어나려면 원작을 완전히 전복시키고 이야기를 다시 써내려가는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다른 의미로 완벽했다고 생각해요. 안데르센의 팬들이 불평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디즈니의 이야기에는 디즈니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재미로 가득차 있거든요. 특히 화면을 구성하는 연출이 좋습니다. 오프닝을 잘 만들었는데 조용히 오케스트라 반주를 깔고 바다속을 유유히 조명하다 갑자기 음악이 장대해지며 인어의 그림자를 살짝 보여주고 긴장감을 한껏 당긴다음, 이윽고 트라이톤 킹덤이 나타날때 모든 악기와 코러스를 동시에 크게 터뜨리는 식이죠.

 
이런 오프닝은 한가지 예에 불과해요. 괴수영화를 떠오르게 하는 상어의 추격씬이나 마지막 거대해진 우슐라와의 대결은 잘 만들어진 액션물에 가깝습니다. 이전 작품 '명탐정 바실'에서 액션의 기초를 닦은 감독 론 클레멘츠와 존 머스커는 매우 능숙하게 액션 장면을 연출해냅니다. 마지막 대결씬은 일본 전대물의 영향을 받은 것 같지요.

이 영화는 또 당대 디즈니의 신예 아티스트들의 재기발랄함과 뛰어난 실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작품은 어떻게 해야 관객들이 영화에 만족할 수 있는지 알고 시작한 영화처럼 한없이 능숙하고 재밌습니다. 분위기 전환도 빠르고 곳곳에 배치된 유머도 매우 성공적이죠. 좋은 코미디인 동시에 세련된 뮤지컬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몇 십년만에 디즈니가 뮤지컬 스타일을 부활시킨 영화인데 작곡가 알란멘켄은 놀라운 정도의 현대적이고 재미있는 클래식을 만들어냅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로부터 이름을 따온 '게'가 카리브해 민요인 칼립소 멜로디에 현대적인 레게를 한다는 발상부터 푸가에서 응용한 곡들과 팝, 전형적인 브로드웨이 곡까지 다양한 곡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곡을 연출하는 뮤지컬 방식도 이전의 5,60년대 작품과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80년대에 개국한 mtv의 영상문법을 이어받아 카메라를 다각도로 활용하고 영화와 애니메이션만이 가능한 재치있는 화면구성을 사용해 무대연출을 그대로 조명하는데 집중했던 과거 뮤지컬 영화와는 다른 가능성을 이끌어 냅니다.
 


캐릭터들의 설정도 혁신적이고 현대적인 색체가 반영되었습니다. 주인공 아리엘은 사회에 반항적이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사회의 일면에 무한한 환상을 품고있는 전형적인 미국 십대소녀의 이미지를 반영한 캐릭터입니다. 트라이톤은 불안정한 것에 대해선 무조건적인 반대를 표하는 보수적인 아버지이고요. 영화가 이들의 싸움과 화해를 중심적으로 그린다는 건 여러모로 의미가 있습니다. 80년대 이후 베이비붐 세대가 중년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가족관이 달라졌고 x세대가 표면위에 등장하면서 가치관의 대립이 심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리엘과 트라이톤의 갈등은 현대 가족관계의 은유이기도 하지만 근면하고 성실했던 베이비붐 세대와 확연히 달라진 생활태도를 지닌 x세대의 갈등의 은유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디즈니가 비로소 이 작품을 통해 제2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는 평을 들은 것도 우연은 아닙니다. 비로소 월트 디즈니의 망령에서 벗어나 작품을 통해 무언가를 구현하려고하는 창의적인 고민을 한다는 증거가 바로 이 작품이기 때문이죠.

(조르주 드 라 투르의 명화는 카메오 출연)

배우들의 연기도 좋습니다. 아리엘 역의 조디 벤슨의 맑은 목소리나 세바스찬 역의 사무엘 라이트의 연기도 인상적이지만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우슐라 역의 팻 캐롤입니다. 본래 목소리를 한 옥타브 낮춘 채 독특한 리듬으로 대사를 읊는 팻 캐롤은 매우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며 어찌보면 평면적인 모사꾼에 지나지 않는 우슐라에게 고통과 우울이 가미된 듯한 입체적인 매력을 부여해줍니다. 우슐라 역은 배우 테스트를 가장 많이 거쳤다는데 보람이 있었네요.


기술적인 면도 넘어갈 수 없군요. 비록 마지막 장면에만 쓰였지만 픽사와의 합작인 CAPS 시스템의 도입은 이후 애니메이션계에 제작비 감소와 표현적 한계점을 넘어설 발판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아리엘이 계단을 내려가는씬이나 마지막 대결에선 CG도 부분적으로 차용했죠. 이후 코디와 생쥐구조대, 미녀와 야수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이 작품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정을 받는 것은 흥행 면도 있지만 기술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이유도 적지않습니다. 혁명적이라고 칭해지는 작품들에는 기술적으로 선구적인 요소들이 빠질 수 없는 모양입니다.



+ 안데르센의 원작에는 캐릭터들의 이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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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sds 2009/03/03 21:48 # 답글

    http://ondisk.co.kr/?bid=hujn884

    제가자주 이용하는 클럽 입니다 한번 놀러오세요....
  • 나디르Khan★ 2009/03/03 23:37 # 답글

    반가운 마음에 오프닝 영상을 클릭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보니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과 너무나 흡사한 컷이 있질 뭡니까. (http://blog.naver.com/dbswn1002/60060038236) 드 라 투르야 다빈치코드덕에 유명해졌다고는 하지만....지금에야와서 보니 곳곳에 명화패러디가 숨어있을 것 같은 애니메이션이군요. 다시 보고 싶어졌어요 ;ㅁ;
  • 피코 2009/03/04 00:05 # 답글

    아, 너무 행복한 애니에요...
  • JellyBean 2009/03/04 00:12 # 답글

    이거 처음엔 잊혀질 애니라고 했던 평이 생각나네요
    하지만 요즘 애들은 원래 인어공주가 마지막에 죽는다는걸 알고 충격을 받는대요 인어공주는 당연히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디즈니 결말을 알고 있더라구요(앗 스포 죄송 ㅎㅎ)
    노래도 좋고 재기발랄한 영상도 좋구요...
    어느날 우연히 동영상 보고는 눈을 못떼고 순식간에 다 봐버릴정도로 좋더군요...
    하지만 제 베스트 디즈니 애니는 신데렐라^^;;(노래는 인어공주 이후의 애니가 더 좋지만 어릴때 감동은 어쩔수 없나봐요^^;;미취학 아동일때부터 봐와서리...)
  • 살찐쥐 2009/03/04 07:58 # 답글

    아 이건 정말 제 인생 최고의 영화!중 하나에요;ㅠ_ㅠ
    다 커서 보니까 눈물이 날정도로 좋더군요.
    글 잘봤습니다^^
  • 크롱크 2009/03/15 22:44 # 답글

    이 영화 이후로 OST를 먼저사서 듣고 영화를 보는 습관이 생겼죠. 다른것도 물론 좋지만 음악은 디즈니애니메이션중 최고입니다!
  • 닭살튀김 2009/04/07 13:08 # 답글

    디즈니 르네상스의 첫 스타트를 끊어준 작품이죠! 한국에서 처음으로 극장에서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기도 하구요. 이 작품이 성공한 덕분에 이후에도 즐거운 디즈니의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던건 아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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