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의 아이러니
토이 스토리와 벅스 라이프의 성공 이후로 5편의 작품을 추가로 디즈니와 계약한 픽사는 이 시기에 잔뜩 화가 나 있었습니다. 디즈니가 5편의 추가 계약에서 토이스토리2를 쏙 빼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디즈니에서 유리한 협상을 위해 일부러 작품을 제작중일 때 이런 애매모호한 추가 계약을 맺은 것이죠. 당연히 토이스토리2를 포함한 5편을 계약할 줄 알았던 픽사의 경영진들은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비록 재정난에 허덕이던 픽사를 구원해 주고 메이저급 스튜디오로 키워준 것이 디즈니이긴 했지만 디즈니는 픽사에게서 거의 모든 권리의 주도권을 가져가고 있었거든요.
작품들의 판권은 물론, 심지어 속편의 제작여부까지 디즈니의 권한이었죠. 그런데다 추가 계약마저 뒷통수를 때리는 바람에 디즈니의 경영진에 대한 픽사의 신뢰도는 바닥을 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반쯤 횡포를 부린 디즈니의 CEO 마이클 아이즈너에게 픽사의 대표 스티브 잡스가 계약이 만료되자마자 다른 배급망을 찾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물론 세상일은 알 수 없는 것이었죠. 결국 디즈니의 경영권 싸움에서 패한 마이클 아이즈너가 좇겨나면서 스티브 잡스와 존 라세터가 디즈니 왕국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전쟁의 서막: 존라세터와 제프리 카첸버그
적은 당연히 내부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사실 90년대말은 미국 애니메이션에서 제일 복잡한 시기였을 것입니다. 90년초 디즈니의 놀랄만한 성공을 목격한 다른 메이저 회사들이 발 빠르게 애니메이터들을 영입해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한 게 90년대 말이였으니까요. 돈 블루스(아나스타샤의 감독)를 영입한 20세기 폭스사를 시작으로, 디즈니 내에서 마이클 아이즈너의 인사결정에 불만을 품고 회사를 나간 제프리 카첸버그 역시 스필버그와 손잡고 드림웍스를 설립해 이 시기부터 작품을 내어놓습니다.
드림웍스의 작품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건 디즈니였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디즈니가 벅스라이프의 개봉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드림웍스가 떡하니 '앤트'를 내놓았기 때문이었죠. 두 작품이 상당히 유사한데다 개봉날짜가 거의 선전포고에 가까울 정도로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디즈니와 드림웍스는 거의 철천지 원수가 되었고 그것은 곧 마이클 아이즈너와 제프리 카첸버그의 싸움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드림웍스가 내놓은 슈렉의 악당 파쿼드 영주가 마이클 아이즈너의 얼굴을 달고 나왔겠습니까.
이들의 전쟁은 드림웍스가 전통적인 2D기법으로 만든 '신밧드'와 '스피릿'을 말아먹은 후에 3D 전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탈바꿈하면서 픽사와의 경쟁으로 바뀌게 됩니다. 휴머니즘과 감성적 코드, 전통적인 디즈니 정서를 강조하는 존 라세터와 상업적 소재와 MTV식 영상미, 세련된 팝콘무비를 지향하는 제프리의 방식은 10년간 두 회사의 작품을 지배해온 주요 코드였죠. 당장 2008년에 나온 월-E와 쿵푸팬더만 비교해봐도 딱 그렇지 않습니까.


토이 스토리2
95년 디즈니는 토이 스토리의 성공에 고무되어 픽사에게 작품의 속편을 만들 것을 지시합니다. 디즈니의 전통답게 60분짜리 비디오용 속편이었죠. 그런데 스토리보드와 초기 작업단계를 본 디즈니는 작품의 놀랄만한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전편보다 더 멋진 작품이 나오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죠. 결국 디즈니가 작품의 속편을 극장개봉하기로 결정하면서 존 라세터는 이 작품을 극장용으로 다시 작업하게 됩니다.
당연히 그 확신은 이 작품의 원천이 매끈거리는 장난감의 표면에 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슴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죠. 여전히 토이 스토리를 뭉클거리는 낭만의 세계으로 데려다 주는 것은 작품이 던지는 심오한 질문들에 있습니다. 전작과의 감정적인 교류를 확대하면서 영화는 한단계더 깊은 경지로 나아갑니다. 우디는 이제 영원히 살아가되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과 언젠가는 잊혀지고 버림받을 운명사이에서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작품이 장난감으로서의 태생적인 물음을 던졌다면 이번 작품은 그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말한대로 이번 작품은 장난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리적인 죽음이 쉽지 않은 장난감들은 주인의 성장을 통해 존재에 영원한 작별을 고하게 되지요. 우디가 그토록 앤디와 둘이 있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와 있을 때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장난감으로서 주인이 없다면 그들은 본래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죠.“앤디가 나중에 커서 신혼여행 갈 때도 널 데려갈 거라고 생각하니?” 이미 한번 버림받는 것을 경험한 제시의 질문에는 진정성이 담긴 공포와 상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캐릭터들은 서로 다른 동기로 인해 그 딜레마 가운데 한가지를 선택해야하고 결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성장하고 상처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악역으로 등장하는 인형 스팅키마저 그 사악한 행동에 합리성을 가지고 있지요. 이 영화 속 장난감들의 고민은 해답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절박하고 진심어린, 생존에 달린 문제입니다. 그들의 선택은 곧 그들의 뿌리를 흔드는 아픈 과정을 거쳐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어쩔 수 없는 ' 장난감'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런 고민이 관객을 감정적으로 뒤흔드는 것은 추억을 자극하는 이유도 있지만 이 이야기가 보편적인 감정에도 적용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랑의 시간적 한계 그리고 누군가에게 잊혀지는 상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사랑을 시작하는, 설명할 수 없는 논리는 사람에게도 장난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이 영화의 판타지는 거기에서 시작되고 그 갈등구조 속에 가장 큰 진심이 담겨 있지요.

이런 감정적 차원의 발전은 감독인 존 라세터가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방식에 있어 전편보다 훨씬 세련되고 진화된 방식을 구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 영화는 우디로 비롯되는 진지한 드라마를 펼치면서 한편으론 스릴러와 액션, 코미디를 연결하는 버즈의 구출작전을 교차 편집으로 내보냅니다. 전편이 우디와 버즈의 대결구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한 부분이 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무엇하나 놓치지 않습니다. 각각의 인형들의 에피소드는 균형이 짝짝 맞으면서 완벽한 장르 배합을 보여주고 있어요.
도로를 건너는 버즈와 햄, 렉스 일당의 액션과 마지막 공항시퀸스는 실사 영화를 능가하는 대단한 서스펜스를 자아내고 있으면서 그 자체로 한편의 재치있는 코미디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액션은 꼭 1989년 디즈니의 코미디물 '애들이 줄었어요'의 무한한 확장판 같습니다. 조그만 인형들에게 세상은 정말 위험하기 짝이없고 감독은 그런 인형들을 온갖 위험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리고 그 자체가 굉장히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죠.
영화는 슬랩스틱에서 만담, 성인용 농담과 패러디를 넘나드는 코미디들을 영화속에 자잘하게 숨겨놓았습니다. 자사의 영화들의 패러디는 물론이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타워즈, 쥬라기공원을 넘나드는 패러디도 수준급이죠. 특히 어떤 픽사 영화보다도 잘 다져놓은 조연 캐릭터들의 농담이 인상적인데 렉스, 포테이토도 좋지만 무엇보다 햄의 조크가 영화 속에서 가장 재밌습니다. 이 작품의 조연 캐릭터들은 비록 행동에 어떤 동기나 사연이 부여될 정도로 투자되고 있진 않지만 외형과 성격에 따라 완벽한 행동과 대사를 보여줍니다. 픽사 영화들 가운데서도 가장 조연 캐릭터들이 성공적이었지요.

이 작품에서 존 라세터의 연출력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능숙합니다. 90분을 꽉 채우는 스토리를 존 라세터는 거의 완벽하게 주무르고 있어요. 감정적인 파고듬도 굉장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진부함이 없어요. 작품의 에피소드는 현대 관객의 조급증을 반영하듯 몇가지 반드시 지나가야할 단계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우발적이고 예상하지 못하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점점 더 확장되는 작품의 무대 활용도 매우 흥분되는 지점이죠. 우디의 앞마당에서 시작된 모험이 공항의 활주로로 확장되는 과정은 관객에게 기분좋은 현기증을 일으킵니다. 형만한 아우 없다지만 토이스토리2는 거기서 예외입니다.

아마 이 작품에 가장 자극받은 것은 다름아닌 디즈니일 것입니다. 타잔을 끝으로 디즈니 르네상스가 종결되면서 98년에 픽사의 흥행 기록이 디즈니를 압박해 왔거든요. 특히 당시로선 거의 타이타닉의 제작비에 맞먹는 돈을 들인 타잔이 토이스토리2보다 낮은 흥행 성적을 내면서 디즈니는 적잖게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디즈니가 픽사에게 밀리기 시작한 이유는 성공을 새로운 성장의 발판으로 마련하지 못했고 영화제작에 중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픽사가 이미 토이스토리 시리즈로 정점을 달렸음에도 십년후에 월-E같은 명작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미래를 향한 비전이 확고했기 때문이고 그들이 내세운 기본적인 가치-플롯의 완성도-에 충실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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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바비의 성우는 인어공주의 아리엘과 동일인물입니다.
토이스토리3가 2010년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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