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 원작의 타잔은 인기많은 작품이지만 그다지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원작인 '유인원 타잔'이 나온 계기도 황당하지요. 20세기초, 잡지에 실리던 저속한 단편 소설들을 읽던 에드가 라이스는 이런 작품들이면 나도 쓰겠다란 마음으로 잡지에 소설 하나를 보내는데 이게 바로 바로 타잔 시리즈의 시작입니다. 당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 소설은 단순한 선악구도와 영국식 제국주의에 영향을 받은 인종 차별주의적 코드 그리고 남성 우월주의로 포장한, 오만했던 시대의 상징적인 유물로 기억됩니다.
애초에 작품에 거대한 야심이 없었듯 작품은 시종일관 영국의 백인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텍스트로 가득했습니다. 타잔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지극히 영국적인 허영심이 깃들어 있었지요. 장장 24권에 걸쳐 반복되는 타잔의 이미지는 야생이란 무정부적 환경에서 영국인 귀족의 피를 이어받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완벽한 사내가 보여주는 신성함이었고 영국인들은 그를 자신들과 동일시여기며 오랫동안 사랑을 주었습니다.

물건너 헐리우드의 영화꾼들도 이 작품에 반했습니다. 소설 자체가 미국에 호의적인 태도를 위하고 있는데다 야생성이 주는 성적 매력은 20세기초 영화꾼이 가장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섹슈얼리티였기 때문이었죠. 정말 인기가 많았어요. 작품이 나온지 채 한 세기가 지나지 않았는데도 라디오같은 매체를 포함해 장장 100번이 넘는 영화화가 진행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인종차별에 대한 도덕적 위기감이 환기되고 마초이즘이 붕괴하기 시작하는 시대가 오면서 타잔도 바뀌게 됩니다. 본래는 역사 속에 과거의 유물로 수그러 들었어야 맞는 일이겠지만 여전히 플롯과 인물, 스펙터클의 강인한 매력이 있었고 이걸 쉽게 포기하기 힘드니 캐릭터만 살짝 바꾸기 시작한겁니다.
실제로 80년대 들어 갑자기 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10년 넘게 작품의 수요가 끊기기 시작합니다. 타잔은 포르노와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전락해 버렸구요. 그런 가운데 90년대 말에 디즈니가 타잔을 발표한다고 한 것은 센세이셔널하면서도 살짝 시기적으로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그렇지만 그건 원작의 오명을 완전히 탈바꿈시킬 매력적인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1999년에 디즈니가 선보인 타잔은 전체적인 면에서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감독 케빈 리마는 각색과정에서 원작 캐릭터의 매력적인 속성은 끌어내고 불공정한 정치적 관계나 비유, 풍자들은 모두 삭제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몇가지 에피소드를 엮어 새롭게 이야기를 꾸미고 그마저도 압축시킨 후 빈 틈을 특유의 기술력과 코미디로 채워 신나는 활극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일단 내용자체가 원작하고 많이 달라요. 핵심적인 갈등구조는 인간과 고릴라라는 두가지 세계관의 대립으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면서 원작에선 타잔의 아버지인 클라이튼이 적이 되었고 고릴라 커책은 악당이 아니라 아버지같은 존재로 나오죠. 또 원작의 복잡한 혈연관계같은 것도 모조리 사라지고 (원작에선 제인이 타잔의 사촌과 약혼한 사이거든요) 주제도 명쾌하게 제시됩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좀 더 깔끔하고 분명해졌지요. 이야기는 크게 두 단락으로 나뉩니다.
영화는 배가 난파되면서 아프리카 한복판에 떨어진 한 영국인 부부와 그들의 아기가 나무위에 집을 짓고 간신히 살아가던중 표범 사보의 습격을 받게 되는 오프닝으로 시작합니다. 그때 마침 사보로 인해 자식을 잃은 고릴라 칼라는 이미 부모를 죽이고 아기마저 죽이려는 사보에게서 아기를 구출해내고 그를 아들대신 여기며 타잔이란 이름을 지어주죠. 그렇게 고릴라 무리에서 성장한 타잔은 무리의 우두머리인 커책에게 미움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무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마침내 사보를 죽이는데도 성공합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전환되죠.
때마침 정글에는 고릴라 연구를 위해 영국에서 포터 박사 무리가 옵니다. 타잔은 박사의 딸인 제인을 위기에서 구출하면서 자기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자신이 어느 영역에 머물러야 하는지 갈등하게 됩니다. 한편 박사의 경호원인 클라이튼은 고릴라를 잡아 영국까지 끌고갈 계획을 세우면서 타잔과의 피할 수 없는 대결구도에 서게되죠.
영화는 가장 극적인 부분을 과감히 오프닝에서 압축시킵니다. 타잔이 고릴라 무리에 편입되는 과정은 전통적인 비극에 가깝고 이것만으로도 좋은 이야기거리가 되지만 이 영화는 필 콜린스-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상을 받은-의 박력있는 음악을 배경 삼아 빠른 교차편집과 액션 씬까지 더불어 8분안에 모든 설명을 끝내고 있습니다. 이로서 대부분의 캐릭터 설명과 갈등구조가 단숨에 윤곽이 잡히게 되고 이야기의 비중을 액션씬에 더 쏟을 수 있게 되지요.
이때만 해도 디즈니가 매년 새로운 그래픽 기술을 한가지씩 선보이는 게 거의 관례처럼 되었는데 이 해에 처음 개발된 '딥캔버스'는 실사에서는 불가능한 액션을 만들어냅니다. 일단 컴퓨터로 롤러코스터 레일 마냥 꼬여있는 정글을 3D 형태로 만들어놓고 각종 카메라 기술로 박진감 넘치는 배경을 만든 후 2D 캐릭터를 맞춰 그려넣는 방식이었죠. 영화는 현기증이 날만큼 아슬아슬한 액션을 보여줍니다. 특히 영화가 타잔의 시점에서 보여질 때는 정말 1인칭 게임같지요.
(딥캔버스)
뮤지컬 스타일도 붕괴되었습니다. 영화에 삽입된 곡들은 이전처럼 캐릭터들이 직접 부르는 게 아니라 작품의 전개를 압축하는 기능으로 사용됩니다. 전체적으로 이렇게 스토리를 당겨서 진행하기 때문에 짧은 러닝타임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이야기가 들어가 있습니다. 물론 빠른 전개로 인해 인물들의 감정을 충실히 그려내지 못하고 얘가 이래서 이렇게 되었다 계속 짚어주지요. 결과적으로 이야기를 따라가고 이해하는 게 어렵지는 않지만 유치하다는 느낌도 지우기가 힘듭니다. 타잔의 고민은 굉장히 성숙한 질문-정체성의 혼돈과 성장 그리고 실존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영화는 그것을 간단히 추상화 시켜버리는 우를 저지르고 있는거예요.
디즈니의 타잔은 원작의 부담을 버리면서 매력적이고 잘 빠진 블록버스터가 되었고, 헐리우드가 자랑하는 수준급 각색을 보여주었지만 지나치게 어린이 관객들을 의식했고 어른들을 볼거리많은 액션의 영역에만 내몰았습니다. 분명 재미있고 시각적으로 놀라운 영화지만 슬슬 관객들은 반복적이고 맹랑하기만 했던 디즈니의 방식에 지쳐가던 차였고 영화는 당시의 여름 블록버스터의 한계를 벗지 못했지요.

누군가를 의식하고 만드는 작품이 반드시 의식하는 대상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서 내다보지 않는다면 결국은 후퇴하게 되고 진부한 느낌을 주게되죠. 인어공주로부터 시작된 디즈니 르네상스의 종결 작품으로 평가받는 타잔은 이후 3D 애니메이션의 시대가 열리면서 마지막 2D 애니메이션 흥행작이 되었습니다.




덧글
크롱크 2009/03/15 22:42 # 답글
딥캔버스는 지금봐도 정말 경이로운 기술인거 같아요! 그때당시 쪼그만한 화면으로 예고편 보면서 감탄했던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