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디즈니 리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Wonderland (1951)


사실 이 작품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것은 좀 의외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디즈니가 추구하는 서사의 흐름과 전혀 일치하지 않고 있거든요. 아마도 디즈니가 이 작품에 끌린 이유는 그 독특한 이미지의 향연과 뮤지컬의 가능성에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원작의 복잡한 줄거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죠. 여전히 이 영화는 디즈니의 70년 역사 가운데서 가장 난해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설명도 이해도 쉽지 않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기억하기도 어렵죠.

그러나 그게 단점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루이스 캐롤의 원작 역시 정말 개연성이 떨어지고 난해한 동화인데다 그것이 그 작품에게 무한한 매력을 부여하고 있으니까요. 이 영화는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두 작품을 모두 원작으로 두고 있습니다. 수십명의 작가가 각본을 만들고 디즈니의 프로듀싱 하에 시퀸스를 다섯개로 끊어 감독을 달리했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편을 줄줄 이어놓은 것 같은 원작 덕택이었습니다. 영화는 시퀸스가 독립적인데다 클래식과 뮤지컬의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에 흡사 환타지아의 연장선에서 작은 단편들을 연이어 놓은 것 같은 분위기를 냅니다. 

(복잡한 원작을 두개나 합친 작품)


영화는 쇠라의 '그랑드자트 섬의 오후'를 연상시키는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역사선생과 함께 있는 앨리스는 좀 독특한 소녀입니다. 글 읽기를 따분해하고 그림 보기를 좋아하는 건 또래들과 다를 바가 없지만 그녀는 나름대로 확고한 자기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을 읽기 싫어하는 것이 넌센스라고 말하는 역사 선생에 맞서 앨리스가 하는 말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시적이지요.
 
앨리스는 자신의 세계가 바로 그런 넌센스의 세계, 비합리적인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게다가 무의미하고 터무니없는 자기의 세계에서는 바로 그런 이유로 어느 것도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자신의 세계에서는 자기가 부여하는 성질대로 사물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요.  이런 앨리스의 말들은 다소 어렵지만 작품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해요.

그녀의 비성숙함과 정서적 논리는 작품의 주무대인 원더랜드의 기반이면서 그 세계가 왜 그토록 개연성이 없고 우발적인지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죠. 정말로 원더랜드, 앨리스의 꿈은 그녀의 가치관처럼 넌센스의 세계이고 이는 우리가 사는 실제 세계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지는 않지만 그 개별적인 진실을 형상화시킨 문학적 공간입니다.

여기서 영화를 어떻게 볼 지는 관객들이 선택해야 합니다. 영화는 로알드 달의 동화처럼 괴팍한 교훈극처럼 읽히기도 하고 아니면 시간적인 이유를 감안 하건대 합리적인 것만 추구하던 시대에서 벗어나고 싶은 비정형적인 욕망의 등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디즈니는 어린이 관객들을 의식했는지 영화에 어느 정도 교훈적인 성질을 부여하고 있는데 엄밀히 말해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어린이의 세계를 상징화시킨 비합리적인 세계의 흥미를 어른의 합리적인 논리로 귀결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뿐에요.




또 이미지의 나열도 지나치게 심하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힘듭니다. 이는 독립적인 책의 부분부분을 분리해 놓은 다음 다섯명의 감독에게 각각의 시퀸스를 만들도록 시킨 데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는 개성의 충돌과 종종 도를 지나치는 무정부적 질서때문에 어지럽고 무섭기까지 합니다. 각각의 시퀸스가 너무 개성이 강해서 단편을 이어붙인 느낌이 강해요. 스타일 과잉입니다.

화면도 그렇지만 내용이 참 정신없죠. 시계를 가지고 어디론가 급히 가는 토끼를 따라 지구의 중심을 지나 도착한 방에서는 작아지는 약을 먹고 한없이 줄어들다 눈물의 바다에 갇히고 갑자기 새들이 등장해서 같이 신나게 노래를 부르다가... 영화는 큰 관점에서 볼 때 순간적인 위기가 발생하고 다시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그 문제가 해결되고나면 다시 거기서 위기가 파생되는 식입니다. 사태는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지요.

 

이미 말했다시피 이 작품의 스토리에는 원작부터가 개연성이 없고 말장난 혹은 우연과 환상, 앨리스의 잠재의식에서 탄생한 잡다한 사물로 가득할 뿐입니다. 중간중간 삽입된 듯한 에피소드들도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후반부 매드 해터가 등장해 단어조합을 이용한 말같지도 않은 말장난을 해댈 때면 화려한 화면과 겹쳐 정말 피곤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언어유희는 원작에서도 중요한 부분이었고 이 영화에서도 성실하고 재미있게 다루어집니다. 주로 -ing이나 -tion같은 것들로 각운을 맞추거나 동의어내지 동음어를 가지고 장난치는 식이지요. 흥미로운 것은 이야기가 점점 진행이 되면서 그런 의미없는 장난과(사실 의미를 파기 시작하면 끝도 없지만) 개연성 없는 진행 속에서 앨리스 스스로도 질리게 된다는 겁니다. 무수한 이미지의 폭력속에서 앨리스는 단순함과 탈출의 욕구를 느끼게 되어 버려요. 심지어 완벽한 비논리의 상징인 하트 여왕 앞에서 눈물을 터뜨리는 앨리스는 자신이 만든 이 비논리의 세계가 좋지만은 않다고 느끼게 되어 버립니다. 전 이 교훈적인(?) 결말이 몹시 찝찝했던거지요. 아이들의 유쾌한 상상력이 폭력적인 이미지의 나열이 되고 거기서 교훈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개운치 못한 기분을 안깁니다. 원작의 장점이 영화 속에서는 단점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래도 영화의 장점은 디즈니 생전의 작품답게 역시 완벽한 시각적 재구성에 있습니다. 이 작품이 만들어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거의 백설공주만큼이나 강력한 이미지를 제공합니다. 지금도 앨리스하면 디즈니에서 그려낸 캐릭터들이 먼저 떠오를 만큼 영화는 19세기말에 나온 원작 관련 삽화들의 이미지를 집대성해 그걸 디즈니식으로 재구성하고 있죠. 고전적이면서 유행을 타지 않는 캐릭터는 당연 아직도 써먹을만한 것입니다. 이 영화가 디즈니의 손을 빌려 재구성되면서 가장 주목할만한 부분은 미술입니다.

디즈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디즈니는 앨리스라는 캐릭터가 관객들이 몰입하기에 어려웠고 감정이 부족한 인물이었다고 회고했다고 합니다. 정말로 그 시각적 유혹은 강렬하지만 내용과 캐릭터가 영화화되기는 너무나 어려운 작품이란게 제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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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ALICE 2009/03/06 21:06 # 답글

    저는 이 애니메이션 디즈니 작품 중에 두 번째로 좋아해요. 제일 좋아하는 것은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구요, 앨리스가 그 다음이랍니다. 참 매력적인 작품인데, 흥행에는 실패했군요....
  • 잠본이 2009/03/06 21:27 # 답글

    앨리스가 미소녀이기 때문에 다 용서할 수 있습니다 (뭥미)
  • ydhoney 2009/03/06 21:39 # 답글

    앨리스 시리즈 자체가 원래 애들용이라고 보기엔 상당히 골때리는터라 :-D
  • 도도뇽 2009/03/06 21:45 # 답글

    역사선생이 아니라 언니었던 걸로 기억...'ㅅ';
  • jun Boy 2009/03/06 23:23 #

    언니가 맞습니다. 극중에서 앨리스한테 역사를 가르친다고 역사 선생이라고 써버렸네요. ;
  • 펭귄대왕 2009/03/06 21:49 # 답글

    이 글을 보면서 하루히가 연상됐다면, 오덕인증일까요...
  • 2009/03/06 22:4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피코 2009/03/07 03:38 # 답글

    개인적으로 앨리스 참 좋아하지만, 이 애니는 정말 피곤하더군요...어릴 때는 멋 모르고 홀로그램처럼 넋 놓고 봤던 거 같아요~
  • 나인테일 2009/03/07 05:16 # 답글

    POP WONDERLAND판으로 디자인이 리뉴얼된다면 더욱 좋..(도주)
  • 베지타의후예 2009/03/15 12:05 # 답글

    저거 타이틀에서 원작자 루이스캐롤 이름 스펠링 틀렸다고 비난받았다고 알고있어요 ㅎㅎㅎ
    흥행에 실패했단 사실도 오늘 첨 알았네요....노래와 대사를 외울만큼 좋아하는데 ㅠ
  • 크롱크 2009/03/15 22:41 # 답글

    디즈니의 고전들은 좀 으스스한 느낌을 받을때가 있는데 이 작품이 최고봉인듯
  • 닭살튀김 2009/04/07 13:00 # 답글

    이 쇼킹한 동화가 디즈니에서 팀버튼 감독을 필두로 다시 영화화된다는 소식은 들으셨는지 모르겠군요 ㅎㅎㅎ 정말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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