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혼타스, 왜곡인가 픽션인가 디즈니 리뷰


포카혼타스 Pocahontas (1995)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 극 속에서 부활한다고 한들 그것을 역사의 재현이라 부르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모든 사실과 예술은 일정 거리를 두고 있고 그 간극은 전적으로 창조하는 사람의 예술이 채워지는 부분이죠. 그런 예술에서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인물은 그저 모티프의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과일 뿐인 예술을 사실로 착각하지 말아야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 그러기가 쉽나요. 대다수의 극들은 설득력과 개연성에 충실해 종종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뒤흔들어 놓으니깐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책임을 바꾸자면 예술가들이 사실을 재조립하는데 있어 위험성과 의무가 없는 것도 아니겠지요.
 
늘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특히 더 그런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일본이 2차대전사를 다룬다거나 백인과 인디언의 역사를 백인이 묘사하다던가, 바로 이런 경우, 우리는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죠. 물론 예술가 개인의 시선이 남다르다면 의외의 수확이 나오기도 합니다. 영국 감독이 인도의 빈민 상황을 묘사한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최근 이야기들을 들어보니 오히려 인도 자국 영화들보다 리얼한 색채가 묻어있다고 그러더만요.

디즈니가 만든 포카혼타스는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른 영화입니다. 말그대로 인물들의 이름만 빌려올 뿐이지 이들의 관계나 묘사는 오로지 이 영화만의 것입니다. 이를테면 영화 속 악당인 존 랄프가 실제로는 포카혼타스가 영국에 와서 결혼한 남자라던가, 왜 이런 장난을 쳤는지는 몰라도 디즈니는 역사에 존재했던 인물들을 완전히 새롭게 플롯 속에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역사 왜곡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믿었나 봅니다. 결론적으로 뒷말이 무성했지만요.

포카혼타스는 17세기 영국 사교계에 널리 알려진 실제 인물이었습니다. 그녀가 유명했던 이유는 그녀가 영국으로 와서 영국인과 결혼한 인디언이었기 때문이었죠. 포카혼타스는 당시의 사회관계를 반영하는 일종의 아이콘이었다고 합니다. 개척자들에게 보인 친화적인 태도나 영국인에 의한 납치, 이주 전과 후에 이루어진 두번의 결혼은 격변하는 역사의 상징처럼 기억되죠.

(실제 포카혼타스...라지만 진짜일까?)

정작 영화가 다루고 있는 포카혼타스의 원주민 시절 삶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습니다. 단 하나, 영화의 모티프를 제공해준 게 있긴 한데 존 스미스의 회고록에 포카혼타스가 그를 구해주었다는 내용이 있다고는 합니다. 그러나 이것마저 사실여부는 불투명하며 이 시점에서 포카혼타스의 나이가 11살 내외였다니 러브 스토리는 거의 완전한 상상에 기초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디즈니는 이런 인물들의 관계를 로미오와 줄리엣식의 이야기로 각색합니다. 인디언과 개척자라는 두 집단의 극명한 대립 속에서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이 생겨나고 그로인한 화해와 용서를 다루죠. 영화는 단순하게 집단적인 갈등구조에만 집중하는게 아니라 그안에서 포카혼타스와 코쿰, 존스미스의 삼각관계와 존 스미스과 톰이 맺는 선장과 선원의 우정관계, 포카혼타스의 부녀관계를 엮어 이야기를 능숙하게 끌어갑니다. 이런 관계들은 분리돼 보이지 않고 이야기의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가는데 촘촘하게 얽혀 사용됩니다.

가령 코쿰의 죽음으로 영화가 클라이막스를 맞이하게 되는 순간을 기억해보면 이런 영화 속의 갈등구조가 종합적으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간다는 걸 알 수 있죠. 영화는 백인들의 행동을 경계하지만 꼭 적대적으로 묘사하지만도 않습니다. 그런 모호한 태도가 답답한 분들도 있겠지만 영화는 양 집단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러브스토리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시키는 쪽을 선택한 것이고 이야기적 재미로 볼 때 그런 선택은 분명 더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알려진 바로는 바로 전 해에 나왓던 라이온 킹보다 각본에 몇배나 공을 들였다는데 그 이야기가 꽤 믿을만한 것 같아요. 둘 모두가 셰익스피어적이지만 포카혼타스의 이야기가 더 플롯이 잘 구축된 편입니다. 결말은 흐름에 맞기도 하고 어찌보면 다소 뜻밖인데 디즈니 영화로서는 드물게 두 주인공의 이별로 종결됩니다. 영화 전체의 색채를 통일하려는 선택으로 나쁘지 않았고 결말을 참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극장에서 애들이 진탕 울었다고는 하지만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부분은 미술적인 아이디어와 그런 특질이 영화의 다른 부분과 엉키는데 있습니다. 영화는 남미의 소설들, 보르헤스나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의 소설적 아이디어들, 환상과 실제가 뒤엉키는 묘사들을 화면 속으로 불러냅니다. 영화 속에서 인디언들의 토템은 살아있고 물리적인 힘도 있습니다. 이들은 바람을 통해 소통하고 나무의 정령에게 지혜를 얻으며 때로는 바람 그 자체가 되어 흘러가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런 것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만 어긋나지 않게 영화적인 아이디어로 잘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말로 하긴 어렵고 직접 보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죠. 다소 오리엔탈리즘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전 영화가 풍요로워진 일등공신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Colors Of The Winds)

음악도 그런 면을 뒷받침해줍니다. 다양한 악기와 음악적 테크닉을 통해서 대상의 이미지를 구현해내고 메세지를 심도있게 전달하지요. 이를테면 바람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현악기와 하프등을 사용하고 노래에 과감히 늑대 울음소리같은 것도 믹싱해 넣는 식입니다. 가사도 그런 맥락에서 일정 동참하고 있고 거의 시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런 개별적인 요소들을 종합하면서 영화의 메세지도 분명하게 드러나죠. 영화는 대체로 자연친화적인 삶에 대해 칭송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상대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지적하고 반성할 것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교훈도 나쁘지 않지요. 어찌보면 참 아이러니한 면이 느껴집니다. 영화는 그 소재때문에 온갖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반대로 그 소재가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포기하거나 역사적으로 건조하게 재현하기에는 이런 각색이 아마도 강렬한 유혹이었을겁니다. 결과에 대한 판단은 보시고 스스로 내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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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03/13 10:44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jun Boy 2009/03/13 11:11 #

    음...막아놓은 줄 몰랐습니다.;;
  • 2009/03/13 11:12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tooksimi 2009/03/14 08:54 # 답글

    바람은 소통이자 시간이고 전령사였네요.. 무지 알흠다운 애니 맞습니다.. 눈물이 다 나네요...
  • 크롱크 2009/03/15 22:36 # 답글

    무지막지하게 저평가되는듯해서 속상한 마음이 드는 작품입니다. 시대를 잘못타고 태어난듯한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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