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수확, 쿠스코? 쿠스코! 디즈니 리뷰

쿠스코? 쿠스코! The Emperor's New Groove (2000)

게임 슈퍼 마리오 시리즈의 창시자 미야모토 시게루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영 마음에 안든다 싶으면 밥상 뒤집기라는 방법을 쓴다고 합니다. 말그대로 전부 다 뒤집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밥을 내놓아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시간이 없는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일단 남아있는 것 중 쓸만한 걸 골라 내놓는게 더 좋은 수가 될겁니다.

39번째 디즈니 애니메이션 쿠스코? 쿠스코!는 그렇게 탄생한 영화입니다. 애초에 라이온킹의 감독인 로저 알레스의 작품 '태양의 제국'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지만 제작지연과 중간 시사회에서의 심각한 악평으로 인해 연출 권한이 강제로 마크 딘달이란 애니메이터에게 옮겨지게 되었죠. 문제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미 광고사와의 계약때문에 개봉일은 확정되었고 만들어놓은 작품은 사망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마크 딘달은 대담한 꾀를 내게 되죠. 그는 로저 알레스의 태양의 제국을 조각내 다시 편집한 다음, 모자란 부분은 새로 채워넣어 완전히 다른 영화를 만듭니다. 과거에 저예산용 비디오 영화를 만들 때 사용하던 방식과 비슷하죠. (그러나 앞서 만들다만 영화까지 총제작비는 1억불이 넘게 들었습니다.)
(물어뜯어)
영화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장대한 비극과 신나는 뮤지컬의 조합이었던 원본은 워너브라더스식의 괴팍하고 명랑한 스타일로 바뀌었고 작품의 모티브였던 '왕자와 거지'코드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영화는 디즈니식 정서를 모두 파괴합니다. 플롯에는 노골적인 유머에 대한 집착과 데우스 엑스 마키나같은 개연성을 파괴하는 극단적인 희곡 장치들이 잔뜩 들어갔죠.

물론 모두가 만족한 건 아니었습니다. 작품의 오리지널 시놉을 썼던 로저 알레스나 뮤지컬 곡을 잔뜩 써두었던 가수 스팅은 잔뜩 화가 났습니다. 스팅이야 주제곡 하나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면서 화가 풀렸겠지만 자기 작품에 프라이드가 강했던-심지어 라이온킹을 만들기도 했는데- 로저 알레스는 단박에 디즈니를 뛰쳐나갔죠. 이후에는 소니하고 일했더군요.




바뀐 시놉에는 여전히 황제가 라마가 되는 설정은 유지되었습니다. 영화는 오만한 황제 쿠스코가 농부 파차의 동네에 거대한 별장을 지을 계획을 세우면서 시작됩니다. 그의 오만함에 질린 마녀 이즈마는 그를 죽이고 스스로 황제가 될 셈으로 부하 크롱크와 일을 꾸미지만 엉뚱하게 실패하는 바람에 그를 라마로 만들어버리지요. 라마가 되어 농부 파차의 도움을 받게되는 쿠스코는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 파차와 길을 떠나고 이즈마는 그런 쿠스코를 죽이기위해 길을 나섭니다.
 


(뭔가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


이 작품은 본질적으로 만화적인 재미를 주는데 충실한 작품입니다. 이전에 워너 브라더스에서 일한 적이 있던 마크 딘달은 자신의 경험을 십분 발휘해서 조밀한 농담으로 이루어진 작은 이야기들을 엮어 하나의 커다란 영화를 만들어 냅니다. 영화는 비록 실패한 원작을 재구성한 작품이지만 양쪽의 장점을 모두 가진 채 다시 태어났습니다. 로저 알레스의 색이 남은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롭고 서정적이며 마크 딘달의 아이디어는 단편적인 웃음을 끊임없이 유발하지요. 이 영화를 보는 일은 일요일 아침마다 보곤했던 단편 애니메이션을 챙겨보는것과 비슷한 기분입니다. 한번 보고 씩 웃고 다시 까먹는 그런 재미말입니다.

영화는 사소한 개연성 따위는 신경쓰지않습니다. 심지어 이따금씩 캐릭터들은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와 현실과 만화 양쪽에 걸친 농담을 하기도 하고 전혀 극의 흐름에 전혀 상관없는 행동을 하기도 해요. 이야기의 막힘에도 거칠 것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일행을 뒤쫓다 뒤쳐진 이즈마 일행이 갑자기 왕궁에 먼저 도착해 주인공 일행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죠. 노골적으로 능글맞지만 그것은 구시대적인 작법이 아니라 여기서는 만화적인 재치, 상상력으로 읽혀집니다. 영화가 따르는 논리는 아이들의 논리, 정서적이고 단편적인 구조를 따라 이동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다소 과격하지만 아이들이 보기에 아주 좋은 영화입니다.

(이즈마(왼쪽)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마녀 마리피센트의 패러디)

감독은 여기에 수사학적인 재미를 더해 줄기차게 고전 디즈니 영화에 대한 패러디를 곁들입니다. 노골적인 패러디들을 찾는게 영화보는데 아주 재밌는 일입니다. 이를테면 작품의 마녀 이즈마는 고전 디즈니의 악역의 화법을 역행합니다. 거대하게 변신하는 것처럼 굴더니 아주 작은 고양이가 되어버리고, 절벽에서 추락하고는(대다수 디즈니의 악역들이 죽는 방법) 다시 트렘폴린을 타고 튀어오르기도 하죠.




이런 괴팍스러운 무질서와 만화적인 상상력의 결합은 디즈니의 전통성을 파괴하지만 그것은 나름대로 규칙이 깨어질 때의 희열과 어릴 적 보던 즐거운 만화들-벅스버니나 타이니 튠 어드벤처같은-의 추억들을 생각나게 해줍니다. 유쾌하다는 말 외에 어떤 것도 필요없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틀을 깬 건 아니에요. 영화는 디즈니의 전통적인 미덕들, 우수한 액션이나 뛰어난 감응효과는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로저 알레스의 작품을 위해 쓰여진 진지한 주제곡 'My Funny Friend And Me'가 감독이 바뀌고 정서가 완전히 뒤바뀐 이 작품에도 잘 어울리는 이유는 농담 속에서도 고르게 템포를 조절해온 좋은 연출 덕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본질적인 메세지를 놓치지 않고 오히려 더 진하게 그 흔적을 관객들의 마음 속에 그려놓습니다. 웃고 떠드는 영화의 맥락을 따라가면서도 관객들은 무게감있는 영화의 메세지를 진지하게 듣게 되죠. 오히려 원작대로 갔다면 지금같은 극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가끔씩은 전혀 다른 방식의 생각도 필요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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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03/13 21:00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jun Boy 2009/03/15 12:11 #

    감사합니다^^
  • 잠본이 2009/03/13 21:27 # 답글

    쿠스코 소년시절을 다룬 tv판 나온걸 봤는데 확실히 스타일이 종래의 디즈니보다 좀 호들갑(...)스럽더군요 OTL
  • 크롱크 2009/03/15 22:35 # 답글

    준보이님 새로운 리뷰 올라왔나 보려고 매일매일 들어옵니다. ㅎㅎㅎ
    크롱크가 매우 인상적이어서 이 영화를 본이후로 닉넴을 맹글었지요
  • jun Boy 2009/03/16 18:03 #

    속편에는 무려 크롱크가 주인공이지요. ^^;
  • 2009/03/17 14:42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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