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앤 스티치 Lilo & Stitch 2002

디즈니 영화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는 디즈니가 전통적인 가족주의에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한때는 그것이 디즈니 영화들에 대한 대표적인 비평도구였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에 딱 맞아 떨어지는 작품은 최소한 애니메이션에서만큼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가족주의는 미국 영화들의 좋은 소재였고 역사적인 전통성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과거 서부개척시대,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로 출발한 이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관은 민족적 뿌리나 특질이라고 마땅히 이름 붙일게 없는 미국인들에게 개인이 사회로, 책임이 애국심으로 이주해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들에게 가정은 사회의 축소판이고 그래서 가장으로부터 잘 통제된 가족의 완벽한 운영는 결과적으로 애국심에 기여해 국가라는 체제에 대한 인식을 길들이는데 도움을 주었지요.
그러나 많은 것들이 해체되어가고 재조립되는 현대에 접어들고나서부터 이런 전통성은 파괴되기 시작했고 그것은 디즈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족은 더 이상 혈족단위을 의미하는 작은 개념에서 머물러 있지않고 점점 더 확장되고 유연해져 가고, 그래야만 했습니다. 다양성을 수용하고 서로 기댈 수 있는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연대하는 집단으로서의 가족, 이것이 현대적인 개념의 가족이라고 확언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저에겐 분명 와닿는 이야기입니다. 릴로앤 스티치가 보여주는 가족의 모습도 바로 이런 지향점을 가지고 출발합니다.
릴로앤 스티치는 굉장히 소박한 느낌의 영화입니다. 실제로 특수효과를 자제하고 전통적인 수작업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살렸고 파스텔톤의 배경과 하와이의 전통악기들로 구성된 스코어도 굉장히 단순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죠. 이전보다 곡선 사용도 상당히 두드러집니다. 특수효과는 일부 액션씬에서만 사용되었는데 움직임이 대단히 깔끔하고 화려한 느낌이 적어 영화의 전체적인 스타일과 잘 어울립니다.
99년에 나온 타잔 이후로 흥행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디즈니는 몸집을 줄이고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으로 돌아가기 위한 고민을 시작해왔고 이 영화는 여러모로 그런 맥락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비록 처음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는 85년에 나왔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작품은 그런 소박한 풍경과 달리 내용이 담고 있는 의미면에서는 이전 어느 작품보다 훨씬 풍부한 영화입니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동안 디즈니 영화 속에서 등장이 자주 배제된 유색인종들을 전면으로 불러내어 화합과 연대의 의미를 곰곰히 되씹어보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질적인 두 공간의 이야기를 합쳐놓습니다. 하나는 부모의 죽음과 복지사의 입양권유로 완전한 해체 위기에 놓인 나니와 릴로 자매의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지적으로 매우 발달한 먼 우주에서 파괴 목적으로 탄생한 괴물 스티치의 이야기이죠. 우주재판에서 망명을 선고받은 스티치는 도중에 탈출하지만 우주선은 고장나버리고 그가 추락한 장소는 하와이 섬입니다.
애초에 대도시로 가서 문명을 파괴하도록 본성을 부여받은 스티치는 목적을 이룰 심산으로 애완동물 행세를 하며 릴로에게 접근하고 다소 괴짜인 릴로는 좀 이상하게 생긴 스티치에게 쉽게 흥미를 느낍니다. 한편 스티치를 제거하기위해 특수 요원이 파견되고 도무지 섬에서 탈출할 방법도, 파괴할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스티치는 문득 자기가 외롭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야기는 복지사가 입양을 서두르고 우주에서 스티치를 제거하기위해 대장이 찾아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죠.
영화는 예고편만 봐도 뻔하지만 장르적으로 여러가지 텍스트가 뒤섞인 코미디입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의 사고 이후로 나니와 릴로가 직면한 사건은 지독히 현실적이라 이들의 코미디는 어쩐지 쓸쓸한 뒷맛을 냅니다. 영화는 릴로라는 캐릭터를 아주 기능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죠. 그녀의 독특한 행동은 그녀의 개성이기도 하지만 결핍된 가정으로 인한 엇나간 욕구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어찌되었건 영화는 이런 릴로의 설정을 통해 스티치와 가족이 되는 과정에 설득력을 충실하게 불어넣습니다. 그렇지만 영화가 플롯을 감상적인 태도로 방만하게 끌어간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비극적인 설정도 코미디로 밀고 나가면서 영화에는 독특한 리듬감과 깔끔함이 있습니다.
스티치는 기존의 디즈니 영화와는 조금 다른 괴팍하고 잔인한 캐릭터지만 그만큼 그 캐릭터의 성격이 전환되는 과정은 찡한 면이 있고 더 큰 감동을 줍니다. 자신에게 가족이 없다는 사실을 안 직후의 스티치가 귀를 축 내리는 단순한 행동이나 몇마디 배워 릴로에게 내뱉는 장면은 이런 지점에서 감동하는 관객 스스로가 당혹스러울 정도로 묘한 느낌이 있지요. 영화는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장면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그래서 마지막 분위기가 급전하는 부분에는 어떤 진실한 울림이 느껴지게끔 만들어 냅니다. 이들에게 가족은 어떤 절실한 문제이고 실존의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상대적으로 길게 구성된 전반부는 인물들을 충실하게 훑어내림으로써 이런 효과를 배가시킵니다. 영화에는 특별한 악역도 없지만 충분히 극적이지요. 외계인과 흑인 복지사, 자매와 스티치가 모여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내는 마지막 결말도 묘사는 담담하지만 아마도 관객들은 대단히 인상적인 느낌을 받을겁니다.
릴로앤 스티치는 디즈니의 거대한 뮤지컬에 비하면 한없이 작아보이고 낯선 느낌이 드는 작품이지만 이전 어떤 값비싼 영화들보다도 귀중한 가치를 진실되고 돋보이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정말로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근사함을 지니고 있고 어딘가에 잃어버렸던 소중한 기분을 되찾아주고 있지요. 좀 징그러워 보이던 스티치도 영화를 다 보고나면 그저 한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질 뿐입니다.




덧글
베지타의후예 2009/03/15 11:58 # 답글
디비디로 소장해 자주 보는 좋아하는 영화인데.....저 트레일러 시리즈들은 처음봅니다;;;;;;;;;;;; 저런식으로 마케팅했었군요;;;;;;;;
jun Boy 2009/03/15 12:06 #
저런 장면이 진짜 영화 속에 나오는 줄 알고 낚여서 보러간 사람도 많답니다.^^;; 트레일러를 참 잘 만들었죠.
라자리노 2009/03/15 12:33 # 답글
아- 정말 동글동글하고 크림젤리같은 그런 느낌의 그림이 너무나 좋았던 영화였어요!!
크롱크 2009/03/15 22:33 # 답글
일본에서는 스티치가 미키마우스만큼의 인기를 누리고 있더군요 ㅎ수채화풍의 배경도 정말 좋았고...스티치가 귀를 축 내린후 동글동글해지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던...
'볼트'에서도 이 영화를 보고 그 장면을 만든게 아닌가 생각이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