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이야기의 훌륭한 하모니, 인크레더블 디즈니 리뷰

인크레더블 The Incredibles (2004)

인크레더블은 픽사 스튜디오 최초로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편 애니메이션입니다. 이전에도 토이스토리나 니모를 찾아서처럼 인간이 조연으로 나온 적은 몇번 있지만 이렇게 전면에 나선 것은 처음있는 일이고, 그것은 이 분야의 기술력이 인간을 다룰만큼 성숙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3D 영화들이 인간을 다루지 못했던 것은 순전히 기술의 문제, 언캐니 효과 때문이었지요. 로봇같은 게 하나 있다고 칩시다. 얘를 인간을 닮아보이게 만들고 싶어 피부도 붙이고 눈알도 넣어주며 공을 들이는데, 이게 어느 지점에서부터는 상당한 거부감이 느껴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라고 합니다. 닮긴 닮았는데 무언가가 부족해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이지요. 간단히 말해 슈렉의 피오나 공주같은 경우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피오나 공주는 오히려 변신 후 괴물이 되어서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었지요. 사람들이 동물 캐릭터의 사실성은 좀처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나오던 시기에도(그리고 현재에도) 인간을 3D로 복원하는 기술이 완벽했던 것은 아닙니다. 같은 해에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3D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도 나왔었는데 그 영화같은 경우는 완벽한 인간 캐릭터를 구현하려다 언캐니 효과가 심해져서 동화같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슬픈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인간들을 3D로 그려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던 거지요.

그런데 픽사 스튜디오는 좀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완벽한 3D 배우를 만드는데 공을 들이기보다 일부러 캐릭터들을 데포르메(왜곡)시켜 이런 언캐니 효과의 부작용을 피해가는 방법을 고른겁니다. 영화는 특징을 과장시키는 등의 고전적인 만화수법을 이용하여 3D 인물들을 만들어 냈고 그덕분에 캐릭터들은 인간다운 사실성을 띄면서도 만화같은 재기발랄함을 동시에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관객들은 이를 애니메이션이란 인지 속에서 즐겁게 볼 수 있었지요.



인간의 등장은 단순히 기술의 진보만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고 이야기 방식의 변화도 의미했습니다.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이전의 3D 애니메이션보다 현실의 많은 부분에 기대고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 습관, 사회구조와 관계들은 조금 더 현실의 기조로 빚어지기 시작하고 우리는 거기에 공감하거나 거리감을 두면서 영화에 빠져들게 됩니다. 결정적으로 이야기가 좀 더 현실의 관객들에게 와닿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작품의 아이디어는 왓치맨과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더 영화적이고 쉽기도 하지요. 슈퍼 히어로가 세상을 지켜주던 그 시절 끝에 각종 소송에 휩싸이게 된 슈퍼 히어로들은 강제로 은퇴하게 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미스터 인크레더블은 가끔씩 친구인 프리즈와 범죄현장에 뛰어드는 것 말고는 별 낙이 없는 보험사 직원이죠. 그러던 그가 신분이 노출되면서 회사에서 쫓겨나고 의문의 여인에게서 다시 슈퍼 히어로로 활동할 것을 제의받습니다. 그러나 거기엔 위험한 음모가 숨겨져있고 인크레더블 가족과 사연많은 악당 신드롬사이에 대격전이 벌어집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크레더블 가족은 다소 진부한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진부하단 말이 무색하게 보편적인 현실이기도 합니다. 무능한 가장인 밥과 가사에 지친 주부인 헬렌 그리고 사춘기 소녀인 바이올렛과 말썽쟁이 초딩 대쉬는 20세기 중반에서 후반까지 종종 나오던 가족 오락물의 캐릭터와 닮았고 실제 가정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은유이기도 하죠. 영화는 이들의 개인적인 고민과 서로에 대한 갈등을 심어놓고 일련의 사건들을 진행시켜 그런한 장치들이 자연스럽게 폭파하도록 만들어놓았습니다. 가령 이들의 초능력과 성격을 대응시켜 액션 장면에서도 각각의 캐릭터들의 고민과 갈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만드는 식이죠. 그런 면에서 가장 기능적인 캐릭터는 아마도 딸인 바이올렛인데 사춘기 소녀의 예민한 감수성을 투명해지는 능력과 강력한 보호막으로 설정해 두었습니다. 재밌는 발상이죠.



캐릭터들을 왜곡시켜 표현했다고 말했는데 배경 역시 다소 현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작품 전체의 디자인이 50년대에 유행하던 다소 펑크한 미래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도 하고요.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007의 오프닝 시퀸스나 예전 첩보물에 흘러나올 법한 음악들을 다양하게 편곡해 복고 분위기를 곳곳에서 발산합니다. 고전 슈퍼 히어로물에 대한 텍스트도 영화 곳곳에 숨겨놓았습니다. 극중 코스츔 디자이너로 나오는 E(감독 본인이 직접 연기했습니다)같은경우도 아주 재미있는 패러디입니다. 

영화는 아이언 자이언트의 실패로 위축되어 있던 감독 브래드 버드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기도 했습니다. 브래드 버드는 다양한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깔끔하게 뽑아낸 플롯과 빠른 전개, 실사 영화의 가능성을 능가하는 자유로운 액션씬을 잘 섞어 자칫 아이디어가 난무해 삼천포로 흘러가기 쉬운 영화를 잘 통제해 냅니다.  따뜻한 정서적 감응을 발생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장르를 적절히 배합해(말은 쉽지만 몹시 어려운) 재미까지도 충분히 제공하고 있습니다. 타고난 스토리 텔러답게 에피소드가 많고 캐릭터의 개성이 튀는데도 영화는 매끄럽고 개연성도 충분히 높습니다. 전작 아이언 자이언트나 차기작인 라따뚜이에서 발견되는 사물과 현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은 여전히 유효하면서도 말이죠. 액션에 대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유머가 압도적으로 관객을 뒤흔드는 영화이지만 보고나서 기분이 좋은 건 아마 그런 시각적 이유보다도 브래드 버드의 영화 속에 정말로 따스한 무언가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고, 관객이 그런 메세지와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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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크레더블- 2004. 12.15. 메가박스 2009/03/16 18:18 #

    과 함께 올겨울 최대 기대작으로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픽사의 신작 을 감상하였다. 를 통해 픽사의 극장 애니메이션을 접한 것이 1996년 1월 1일이었으니까, 개봉 당시의 그 두근거리는 경험도 어느덧 9년여. 여전히 픽사의 신작을 보러갈 때면 가볍게 심장이 빨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오늘도 서둘러 그쪽 볼일을 마치고 예매한 표를 찾으러 가는데 정말로 가슴이 떨려왔다. 반지 이후로 오랜만에 이런 설레는 기분을 느껴보는 셈) 픽사는 지금...... more

  • <인크레더블> 비평 - "천한 것들, 나가 있어!" 2009/03/18 13:56 #

    이 글의 원문은 제가 4년 전에 썼던 글입니다. 다만 최근 블로거뉴스에서 <인크레더블>에 대해 다룬 글을 봐서 생각 난 김에 올려봅니다. 지금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을 필두로 많은 부분서 변화해나가고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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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icken Dinner : 디즈니 애니메이션 2009-07-23 19:4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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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3/16 18:26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jun Boy 2009/03/16 18:48 #

    예, 워너 브라더스에서 제작했는데 실패해서 팀이 해체되고 브래드 버드는 픽사에 입사하게 되었답니다.
  • 2009/03/16 18:4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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