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작품은 최초로 동양을 무대로 한 디즈니의 만화영화입니다. 36개의 영화를 만들어 나가는 동안 동양의 무대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은 좀 의외인 일입니다만 그만큼 원작 의존적인 분위기에서 서양의 소위 정전正典이라고 일컬어 지는 고전들이 수많은 영화화로 인해 고갈되던 시기였고, 마침 뮬란의 이야기는 디즈니와 잘 어울리는 소재였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다르게 제작 시점에서는 중국과 디즈니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중국 개봉에 차질을 빚기도 했습니다. 디즈니가 달라이 라마를 소재로 한 영화 쿤둔을 제작했었기 때문이었죠.
간결하게 표현된 미술 스타일만큼이나 플롯도 사족이 제거되어 크래커를 씹거나 차를 마시는 것처럼 담담하게 느껴집니다. 영화의 플롯은 뮬란의 성장이라는 큰 주제에 완벽하게 집중되어 있고, 여기에 기본적으로 깔리는 갈등이 있으며 그것은 흥미롭게도 원작의 계도적 성질과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유가적 관습으로 인한 사회적인 압력과 자유롭고 싶은 개인의 욕구가 어긋나면서 이는 뮬란이란 캐릭터에게 있어 후자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녀는 누군가의 후처로 들어감으로써 가문을 빛내는 일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살기위해 아버지 대신 전쟁에 참가하려고 하죠. 영화는 개연성 있는 사건들을 계속 던져냄으로써 뮬란이 성장할 발판을 충실히 마련합니다. 그렇다고 뮬란이 아주 전위적이거나 혁명적인 인물로 나오지는 않아서 영화는 여전히 다분히 동양적인 효의 가르침은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게 디즈니 정서에도 잘 맞았나 보지요.
영화에는 중국 왕조와 훈족과의 갈등이라는 눈에 보이는 극명한 대립이 있지만 영화 전체의 핵심적 갈등은 오히려 뮬란의 내부에 있습니다 . 오히려 악역으로 등장하는 훈족은 기능적으로 소모됩니다. 뮬란이나 용으로 나오는 감초캐릭터 무슈를 제외하면 인물들은 대체로 뻣뻣한 편이고 진부한 행동을 반복합니다. 남자 주인공인 샹 대장은 멋없이 평면적이고 악역인 훈족 대장 산유같은 경우는 여기서 그냥 힘이 매우 센 괴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몽골에서 눈에 불을 키고 영화개봉을 반대할 만 했죠. 그렇지만 어떤 개인의 성장담이 주를 이루면 외부의 캐릭터들이 단순해져 버리는 건 어절 수가 없지요. 그래도 영화가 그럽게 고민에만 치중해 무겁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남장 여자가 주는 극적 긴장감도 재미있고 유머나 액션이 잘 통제되어 있어 오히려 전체적으로 보면 가벼운 느낌도 듭니다. 그런면에서 뮬란의 성장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무슈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입니다. 에디머피의 연기와 맞물려 디즈니식 껄렁하고 웃긴 조연역을 충실히 보여주면서 영화의 무게감을 적절하게 통제해 주고 있는데 슈렉의 동키와 정말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지요.
98년에 개봉해서 영화는 호평과 더불어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었습니다.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작품의 스토리가 미녀와 야수가 보여주었던 뛰어난 성취에 맞먹는 것이라 칭찬했고, 이 이야기가 보여준 강렬한 힘은 각색이 의미있는 작업임을 재확인시켜 주기도 했죠. 당시에 디즈니가 차기작 타잔에 막대한 예산과 심혈을 기울이던 것을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던 이 영화의 커다란 성공은 여러모로 상기시켜 준 점이 많습니다. 그것은 대중영화는 여전히 시각적인 스펙터클보다 기본적인 플롯과 인물 구축에 우선적으로 충실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어떤 천재적인 연출이나 거대한 자본에 의지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기본에 충실했고 재치있는 아이디어를 정성스럽게 모아놓은 작은 매력이 화면 가득 번져가는 먹물처럼 넘쳐나는 작품입니다.




덧글
잠본이 2009/03/19 23:44 # 답글
역시 기본기가 제일...
한다나 2009/03/31 00:33 # 답글
뮬란 정말 좋아했어요 :-) i'll make man out of you 는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