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모든 것, 마법에 걸린 사랑 디즈니 리뷰

마법에 걸린 사랑 Enchanted (2007)


마법에 걸린 사랑은 디즈니의 자조적 성격이 묻어나는 영화입니다. 벌써 70년이상 나이를 먹었고 구체적으로 지향하는 한길 걸어왔으니 뒤를 둘러볼 때가 된거죠. 영화는 마치 그동안 쿨하게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 쳐다보지 않고 제 길만 묵묵하게 걷던 장인이 사실은 나도 타인의 시선에 약한 사람이야, 고백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영화에는 여전한 장인의 자부심도 곳곳에 묻어나지요.

영화는 낯선 구성과 화법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를 섞어낸 영화는 간단히 말해 디즈니의 세계 속에서 살던 요정이 마법에 걸려 현대 뉴욕으로 떨어지면서 생기는 일화를 담고 있습니다. 디즈니의 세계 속에서 뻔하게 반복되는 클리셰 속에 살던 인물은 현실의 불규칙함과 냉혹함에 적응하지 못하고 못하고 여기저기서 사고를 치고 다닙니다. 만인이 좋아하던 왕년의 요정은 이제 미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마치 디즈니의 해피엔딩이 이제는 망령의 언어로 들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영화의 시작 8분 정도는 기존의 디즈니 역사를 회고하는 시간입니다. 유명한 애니메이터 토니 박스터가 지휘한 애니메이션 필름은 단 8분이지만 그동안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걸어온 길을 놀라울 정도로 재치있게 압축하고 있습니다. 왕자와 요정이 한눈에 반하고 괴물을 물리치는 내용도 그렇고 곳곳에 기존의 디즈니 영화들의 패러디도 숨겨놓았지요. 보석을 눈에 가져가는 행동(백설공주)이나 머리를 빗는 장면(인어공주), 왕자의 모형을 만드는 장면(잠자는 숲속의 공주), 대사들까지 지금껏 나온 디즈니 영화들에서 쓸만한 소스는 다 뽑아다 뒤섞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단순히 패러디라고만 할 수는 없고 오마주hommage로서의 의미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영화는 드림웍스의 슈렉이 디즈니를 비꼬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비슷한 결과에 접근합니다. 거기에는 선대 애니메이터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예리한 관찰력에 대한 존경심이 들어가 있습니다.

영화는 왕관을 뺏길게 두려운 여왕의 음모로 주인공 지젤이 현대 뉴욕에 쫓겨가면서 완벽한 시각적, 이야기적 전환을 시도합니다. 이제 지난 세월의 동화는 그저 조롱거리가 되고 맙니다. 이를테면 동화 속 할아버지들은 죄다 친절한데 현실에서는 좀도둑역을 맡고 있고 궁전이 그려진 곳은 환상적인 이야기의 세계가 아니라 카지노의 문패일 뿐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길거리를 지나다 부르면 다들 이상하게 쳐자보죠. 착하고 선한 지젤이 살아가기엔 현대 뉴욕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공간입니다. 그런데 그녀를 딸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돕는 변호사 로버트는 이게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영화는 이런 이질적인 두가지 세계의 부딪힘을 아주 코믹하게 묘사해내고 실제로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영역도 거기에 있습니다. 평소에도 동물들의 도움을 받던 지젤이 뉴욕에서도 동물을 모으기 위해 노래를 부르지만 모이는 동물들은 바퀴벌레와 쥐들, 비둘기들 뿐이고 그런 더러운 동물들과 함께 청소를 하는 뮤지컬 씬 Happy Working Song은 굉장히 인상적인 체험을 제공하지요. 이 씬 자체가 신데렐라와 백설공주에 대한 패러디이기도 합니다. 사용된 음악도 패러디와 오마주의 연속입니다. 영화의 음악은 90년대 디즈니의 흥망성쇠를 함께했던 알란멘켄이 참여하여 자신이 썼던 곡들을 살짝 꼬아보기도 하고 과거 디즈니의 곡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도 하면서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동참합니다. 사용된 음악 소스도 디즈니의 예전 영화들의 노래가 참 많습니다. 덤보, 미키마우스 행진곡, 메리포핀스같은 아주 예전 곡들도 울려퍼지고 인어공주와 미녀와 야수의 멜로디도 영화 중간중간에 숨겨놓았죠. 이러한 역량은 That's How You Know 와 So Close 두개의 뮤지컬씬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납니다.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에 세곡이나 후보로 올리며 건재함을 과시했죠. 비록 표가 갈려 원스가 상을 가져갔지만요.

 


소화하는 배우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게 지젤 역을 맡은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가 정말 정말 좋습니다. 딴 세상에서 온 티 팍팍 내면서 살짝 미친 사람같으면서도 옛 디즈니 만화들의 주인공처럼 행동하는 능청맞은 연기도 좋을 뿐더러 눈망울이 흔들리며 감정의 변화에 당혹스러워 하는 그런 현실적인 연기들도 잘해내고 노래도 기대 이상으로 참 잘합니다. 무엇보다 캐릭터를 정말 그럴듯하고 사랑스럽게 만들어내고 있지요. 상을 많이 못받은게 정말 안타깝습니다.

한편 영화는 고전적인 요소들의 변주에만 신경쓰지는 않습니다. 과감한 자기 조롱과 극복에 대한 의지가 엿보이기도 하죠. 사랑하는 왕자를 찾아 디즈니세계로 돌아갈 길을 찾던 지젤은 문득 자신의 세계에서는 없던 현실적인 감정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운명이니 뭐니하는 것들 이상으로 세상에는 반드시 밟아야할 현실적인 감정의 단계들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디즈니 영화들도 이 한편을 통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줍니다. 이혼남이 남자 주인공으로 배치되지를 않나 마지막 최후의 대결 시퀸스에서 지젤은 거추장스러운 유리구두를 벗어 던지고 직접 칼을 들고 용에게 달려들기도 합니다. 여전히 디즈니의 작품관이 배여있지만 그 가치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적용하면 이런 쓸만한 물건이 되는 것이죠.

 


그렇지만 이 영화는 여전히 디즈니가 좋아하던 이상주의에 대한 따스한 시선도 포기하지는 않는데, 그것은 왠지 모르게 향수에 젖어들고 눈물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낭만적인 감정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그것을 부정하고 사실적이고 이지적인걸 선호하면서도 향수와 정에 약합니다. 90년대에 극장에서 디즈니 영화를 보았던 세대가 이 영화를 본다라면 어쩐지 따스하게 녹아버리는 감정이 차고 올라와 당혹스럽지 않을 수가 없을겁니다. 영화 속에서도 현실만 믿고 살아가던 이들은 이런 해피엔딩의 강렬한 유혹에 로맨티스트가 되어버리죠.

영화는 꼼꼼하게 터치된 감독의 연출력과 한시대를 풍미한 이시대의 장인들이 만들어낸 명품과도 같습니다. 재미있게 숨겨둔 부분도 많고, 또 그것들을 몰라도 즐길 거리는 충분합니다. 고전적이고 단순한 작품들의 시대는 진부하단 평을 받고 이제 떠나갔지만 그것을 추억할 단서를 발견하게 되는 건 여전히 기분좋고 짠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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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chokey 2009/03/21 12:28 # 답글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가 빛을 발했던 작품이죠. 보고나서 동물친구(?)들 부르는걸 얼마나 따라했는지. 디즈니는 아직 건재합니다!! 건재해야해요. 이런 행복한 영화를 만들어 주니까요-
  • jun Boy 2009/03/21 13:04 #

    원래도 연기 참 잘하는데 여기서 정말 빛났지요. 언젠가는 아카데미 상도 받을듯.
  • 크롱크 2009/03/27 20:41 # 답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못올라간것이 너무 아쉽죠. 완전 수상감인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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