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새로쓰다, 라이온킹 디즈니 리뷰


라이온킹 The Lion King (1994)


94년에 나올 32번째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의 중간 시사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애니메이션치고는 지나치게 어둡다는 얘기가 많았지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인 햄릿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존속살인과 주인공의 복잡한 내면, 분열된 무의식이 통합되는 듯한 캐릭터 구도, 철학적 가사들을 담았고 이런 것은 어린이 관객에게, 심지어 어른에게도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영화는 디즈니 영화 중 가장 높은 흥행기록을 세웠고 극장 앞에는 영화를 보지못한 관객들의 기다림으로 넘쳐났습니다. 그 애니메이션은 라이온킹입니다.

애니메이션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라이온킹은 흥행 기록으로 더 유명하지요. 지금도 수작업 애니메이션 중 최고의 흥행기록을 가졌을 뿐더러, 나왔을 당시에는 역대 영화 가운데서도 탑5안에 들었으니깐요. 영화의 흥행이 안겨준 권위는 막강한 것이여서 이 작품이 이후의 디즈니 영화들에게 준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셰익스피어식 희곡쓰기 전략이 디즈니 영화들에 구체적으로 도입되었고 이후의 영화들은 고전적인 비극을 충실히 그려내는데 골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현대의 복잡한 취향을 가진 관객들은 여전히 고전적인 비극 설정에 약했고 라이온 킹이 그것을 증명했으며 타이타닉이 다시 한번 뒷받침해주었지요.

이후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조금 더 복잡한 자아를 가지게 된 것도 라이온킹의 영향력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겁니다. 아마도 96년에 나온 '노틀담의 꼽추'는 이런 라이온킹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일거예요. 프롤로 신부의 성적욕망과 도덕적 책임 사이의 갈등이 빅토르 위고의 원작에서 거세되지 않고 노골적으로 형상화되었으니깐요. 토이스토리나 볼트같은 작품은 또 어떻습니까.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에서 따온 만큼 사실상 극을 채우는 것도 거대한 비극의 향연입니다. 대신 동물들의 비극이지요. 영화는 동물을 인간의 알레고리화시킴으로써 존속 살인이 상기시키는 자극성은 야생성으로 대치하고, 상대적으로 극의 교훈성만을 부각시켰으며 아프리카에 대한 서구적 환상은 작품의 미술적, 심미적 취향까지 충족시킵니다. 디즈니 생전의 걸작 '밤비'로부터도 영향을 받은 구석이 보입니다. 밤비는 라이온킹에 비하면 훨씬 정적인 영화이지만 가족의 죽음, 비극이 진정한 '나'를 찾는 숭고한 과정이라는 설정, 그 밖에 영화 전체의 플롯에 영향을 주고 있지요. 라이온킹은 여기서 복수와 음모를 통해 감정적으로 관객들을 더 뒤흔들어 놓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처럼 대립되는 효과를 잘 활용하고 있기도 하고요. 가령 인종차별 텍스트냐고 의심받았던 악역 스카의 빛깔 역시도 극의 극적인 대립을 위한 일종의 시각적 도구로 활용된 것이고 무대에 많이 서본 스카역의 제레미 아이언스의 연기도 강약을 맞추던 전통적인 셰익스피어식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초반 40분간은 어떻게 프라이드 왕국의 왕자 심바가 왕국에서 쫓겨나게 되는지 묘사합니다. 90분이 채 되지 않는 영화에서 전주가 길어보이는데 그렇다고 비극의 과정이 섬세한 다이알로그로 구성된 것은 아닙니다. 영화의 전개는 무척 빠르고 어떤 면에선 노골적이고 과도하게 친절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캐릭터들이 선명한 빛의 대립을 이루는 것도 부족한 정보를 미리 관객에게 주기 위한 것이에요. 이처럼 감정적 고저와 명확한 극의 대립을 씬들의 빠른 교차 편집을 통해 영화는 통솔하고 있습니다. 가령 영화는 씬들의 분위기를 정확히 나누어 심바의 화려한 뮤지컬 장면인 I Just Can't Wait to Be King 이후에는 음산함과 액션, 공포가 난무하는 코끼리 무덤씬을 내보내고 이후에는 바로 무파사왕과 어린 심바가 화해를 하고 심바의 운명을 결정지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으로, 다음에는 비극의 전조인 삼촌 스카의 뮤지컬씬 Be Prepared를 내보냅니다. 희극과 비극의 강도도 점차 세져 사실상의 클라이막스인 무파사의 죽음에서는 숨이 막힐 지경이죠. 그 대목에서는 심바의 극적인 심정을 줌이펙트로 처리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다음 40분은 사실상 2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극의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고 셰익스피어의 희곡과는 정반대로 나아갑니다. 기존의 비극이 준 무질서가 정돈되고 희극적으로 안정되어있는 요소들, 가령 티몬과 품바같은 캐릭터들이 주도적으로 작품을 끌고가죠. 티몬과 품바는 전적으로 기능적인 캐릭터들입니다. 반드시 정서적 분위기가 균형을 맞추어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디즈니는 티몬과 품바를 통해 극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극을 완전히 전환시켜서 관객들의 침울한 분위기를 반전시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부터 전개가 너무 빠르고 당혹스러울정도로 급작스럽게 넘어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심바가 운명을 자각하는 씬이나 날라와 사랑을 느끼는 장면이 너무 빠르게 넘어가고 스카가 심바를 무파사의 환영으로 착각하는 장면에서는 연출도 다소 앞의 장면과 어긋나 보입니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심바가 자각하는 과정이 실제로는 영화에서 가장 충실히 다뤄졌여야 함에도 단순히 관객들이 느끼는 기쁨과 슬픔의 균형에만 신경쓰다보니 어려운 부분을 슬쩍 넘어가버렸다는 겁니다. 그때문에 입체적으로 느껴졌어야 하는 심바는 상보적인 두가지 내면이 그저 극의 분위기에 따라 교차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성격이 극의 전개를 지배했어야 했는데 엉뚱하게 운명비극으로 가버린 것입니다. 영화는 셰익스피어를 따르는 듯 보이지만 실은 철저하게 고대 그리스 비극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좀 더 풍성한 텍스트의 가능성을 잃어버린채 감정을 쏟아내는 감동적인 이야기에 머물고 마는 것입니다.

 


대신 영화는 스카와의 마지막 대결에는 고민을 많이 한 듯 보입니다. 동물들의 싸움이지만 천해보이지 않고 그저 잔인하거나 목적없는 듯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애쓴 흔적들이 보이고 이런 과정은 다행스럽게도 심바가 왕위를 계승하는 장면에서 숭고함을 느끼게 하는데 성공합니다. 영화의 테마라고 할 수 있는 삶의 순환을 강조하는 결말도(생뚱맞게 느껴진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나름대로 깔끔하게 느껴집니다. 한스짐머의 스코어가 더 인상적이긴 하지만 영화 속에서 내낸 울려퍼지는 엘튼 존의 음악도 여전히 팝적이고 아름답고요.

라이온킹은 디즈니식의 액션과 재담, 질좋은 스토리텔링, 최첨단 기술력이 가미된 작품입니다. 대중문화 전략에 있어서 디즈니의 기능성이 가장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황홀하게 만들었던 추억은 여전히 공존하고 있어서 영화의 다른 단점을 덮어버릴 정도로 강력하게 느껴지지요. 영화가 어떤 위대한 예술과 창조의 매력을 얻는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무척 잘 만들어진 작품이고 이후의 모든 애니메이션의 이야기와 그 위상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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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오나 2009/03/27 16:58 # 답글

    개인적으로도 무척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예전에 산 비디오 테잎도 갖고 있는데^^; 개봉 당시에 극장에 가서 봤었죠. OST 테잎을 사서 워크맨으로 듣고 듣고 또 들었던 추억이 생각나네요.
  • 크롱크 2009/03/27 20:39 # 답글

    1994년 당시 전세계 흥행수입은 주라기공원에 이어 2위였었죠. 이제 흥행수익은 몇몇 영화에 의해 깨졌지만 그때의 그 아련한 추억은 그 어떤영화도 넘어설수없는것이 되어버렸네요.
  • 한다나 2009/03/31 00:30 # 답글

    최고의 디즈니 영화였죠 ㅠㅠㅠ 아.... circle of life는 다시 봐도 눈물이 나오네요 ㅠㅠㅠ...
  • pjm5666 2009/09/14 00:33 # 삭제 답글

    최고 였죠. 분명 정체성을 찾아가는 심오한 과정이 간단하게되고 부족한듯이 되었지만
    이것은 어린이들을 타겟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봐줄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어른들에게 끼친 영화도 대단했지만요 ㅎㅎ
  • pjm5666 2009/09/14 00:35 # 삭제 답글

    솔직히 적어도 저에게는 모든면에서 최고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2009/12/11 15:16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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