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이 아내의 유혹을 떠나는 이유

아내의 유혹을 명품이라 치켜세우던 사람들은 이제 없다. 드라마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시청률에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애청자들은 텔레비전 앞을 떠난다. 다른 막장 드라마를 꼬는 듯 시종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았던 드라마는 어느새 다른 막장 드라마의 전철을 밟기에 급급해진 듯하다.
사실상 이 드라마의 인기 하락은 이상할 게 없다. 이것은 여전히 형식상의 문제다. 보통의 극은 마치 등산을 하듯 상승부를 타다 고지에 이르며 그것이 하강부로 이어진다. 고지에서는 분위기가 전환되고 극은 하강부에서 클라이막스를 맞이하여 종결된다. 아내의 유혹을 이 원초적인 형식의 틀에 집어넣어보면 구은재가 가짜 민소희 행세를 하며 복수를 시작하는 단계가 전환점이었고 자신의 정체를 밝혀 모두를 질겁하게 하는 순간이 클라이막스라고 볼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드라마가 본격적인 인기를 얻는 시점은 갈등이 팽팽해지는 전환부에 이르러서다. 이 드라마는 초반 약 40회 동안은 구은재가 철저하게 악역 신애리에게 당하는 '설정'에 해당하는 부분을 전개해 나가다 급격하게 분위기를 반전시켜 복수극의 진행을 이끌어냈다. 드라마에 대한 인기와 평가는 이때를 기점으로 달라졌다. 모래시계에 붙던 귀가시계란 별칭이 따라 붙었고 시청률은 40%를 넘었다.
드라마는 복수를 하는 부분에 이르자 구체적인 디테일을 생략하는 대신 진행을 급속도로 빼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전에는 이런 스타일을 감히 생각도 못했으니 혁신적이라고 할 만하다. 독특하게도 이 드라마는 세밀하지 못한 디테일들을 하나같이 서스펜스를 유발하는데 사용했다. 보통 서스펜스는 시청자가 앞의 내용이 어떤 방식으로 행해지는지 예상치 못할 때 발생하는데,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제공하는 정보량이 현저하게 떨어져 장면 하나하나가 몹시 불안하고 불규칙하다.
이것은 보통의 다른 드라마에겐 치명적인 단점이겠지만 '아내의 유혹'에서만큼은 장점으로 작용했다. 시청자들은 오히려 양은 냄비로 사람을 기절시키고 시공간이 불일치하는 등 말도 안되는 장면이 나올수록 드라마에 열광했다. 극중 간호사의 고화질 핸드폰 카메라가 화제를 모은 건 대표적 사례다. 전혀 기대치 못한 신선한 반전들(규모는 작은)을 빠르게, 그리고 많이 제공해서 극적인 흥분을 돋우는 것. 그것이 아내의 유혹의 인기의 실체다.

장기적으로 드라마라는 장르에서 보면 악영향을 주겠지만 분명 아내의 유혹에는 신선한 발상의 전략이 있다. 시청자들이 감탄하고 sbs 드라마 국장이 칭찬할 정도였다. 호흡이 긴 드라마이면서도 서브 플롯이 거의 없다는 점(모든 씬은 구은재라는 캐릭터에게 긴밀하게 연결된다)도 독특한 특징이면서 이 드라마 속 사건이 그만큼이나 많고 복잡했음을 증명한다. 물론 병폐도 심해서 심각한 캐릭터의 단순함과 복잡한 사건의 부조화, 농밀한 자극성과 그로인한 정서적인 폐해 등 드라마의 질적 완성도는 높다고 말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기발한 전개 속도 때문에 용납받았고 이 모든게 좀 특이한 현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단점이 진짜 민소희의 등장으로 인해 적나라하게 폭로된 셈이다. 드라마가 소위 허접스러워진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드라마가 연장되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극의 실질적인 클라이막스가 지났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연장은 아내의 유혹의 가장 큰 장점이던 스피디한 전개를 무너뜨렸고 클라이막스는 구은재가 복수의 대미로 정교빈에게 정체를 밝히던 그 시점에서 끝났다. 대개 클라이막스가 지나면 시청자는 지루해하기 시작하고 온전한 형태의 결말을 원하게 된다. 그런데 죽었어야 하는 민소희가 살아 돌아와 악역행세를 하면서 극은 새로운 긴장 관계를 유발시켰다.
민소희는 사실상 복수가 끝나가는 시점에 등장했음에도 다른 캐릭터들과 복잡하게 엮이면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망쳤다. 캐릭터들의 성격이 변했고 질서를 잡아갔어야 하는 극은 예전의 패턴을 반복하면서 무질서해졌다. 구은재는 복수 이전의 연약한 캐릭터와 복수 당시의 강한 캐릭터를 오락가락했고 구은재에게 도움을 주는 역이었던 민사장은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매우 모순적인 인물이 되었다. 이야기는 풀기 힘들 정도로 꼬여 결국에는 극단적인 희곡 장치가 등장하기도 했다. 가령 고모가 '매우 우연히' 핸드폰으로 민소희의 음모를 녹음하는 식으로 말이다. (고모는 종종 이런 식으로 소모되는 매우 기능적인 캐릭터이다) 이렇게 아내의 유혹의 저급했던 성질들은 스스로의 과욕때문에 폭로된 셈이다.
같은 막장 드라마로 취급받는 임성한 작가의 하늘이시여는 이런 면에서 비교했을 때 비교적 영리한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는 연장을 거듭하고 전개 속도를 늦추면서도 결코 가장 핵심적인 작품의 클라이막스였던 자경의 생모의 비밀이 폭로되는 과정을 끝까지 밀어붙였고, 그 결과 내부의 납득하기 힘든 디테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구조에서 시청자들의 흥미를 적절하게 조절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내의 유혹은 이미 클라이막스를 지나 버렸고 시청자들은 원하던만큼의 흥미와 복수의 카타르시르를 모두 소진해버렸다. 끝내야 할 시점을 지나 계속 달리는 것은 무의미한 사족에 불과하다. 드라마는 이미 복수라는 본질을 잃은 채 민소희라는 강한 캐릭터의 광기와 소음으로 가득차 버렸다. 이제 남아있는 것은 보던 걸 마지못해 계속 보는 관성의 법칙 뿐이다.




덧글
tooksimi 2009/04/12 09:12 # 답글
이 드라마 드뎌 끝나나 보네요... 뭔 고함들을 그리 질러대는 씬이 많은지... 아흐... 이젠 그 지긋지긋하고 코믹스러웠던 갈등의 끝이 왔나 보네요... 고함성 매회 반전반복 짜증스러웠던 복수 멜로 코미디 였던 걸로 기억될 듯 합니다... 이건 아냐... 너무 아냐...
jun Boy 2009/04/12 18:28 #
5월 초에 끝난다고 하네요. 여러모로 기억에 오래 남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