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타지아 2000 Fantasia 2000 (2000)

디즈니는 영화 환타지아를 통해서 두가지 목적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클래식에 대한 탐식과 재능을 뽐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대중과 함께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특정 계층의 점유물이던 클래식은 디즈니가 그 장르의 물리적 특수성을 잃게 함으로써 고급예술의 특성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디즈니는 극장에 사운드 채널을 여러개 설치해 오케스트라의 생생한 느낌을 살렸고 지휘자도 당대 최고의 마에스트로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를 불러다 녹음을 진행했습니다. 클래식을 즐기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파괴되었고 더 이상 비싼 티켓을 살 필요도 없었죠. 간단히 말해 디즈니는 대중이 클래식을 쉽게 즐길 수 있게끔 가치를 재편한 것입니다. 엘리트 예술을 파괴하기 위해 자본주의 시대의 '일상'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팝아트'같은 현대 예술처럼 디즈니도 클래식을 일상으로 끌어당기려고 한 것이에요. 그는 최초로 영화 사운드트랙을 상업화시킨 사람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 파격적인 시도는 결정적으로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중이 디즈니의 의도를 읽기엔 시기적으로도 너무 좋지 않았던 거지요. 영화의 막대한 상업적 실패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함과 동시에 디즈니가 단편을 제작하며 긴 전쟁기간을 보내도록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본래 뮤지컬처럼 계속 상영되며 그 안의 단편이 조금씩 교체되는 실험적 형식을 추구하려고 했지만 그 계획도 모조리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음악과 애니메이션의 결합을 추구한 작품들은 디즈니 역사의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조금 더 대중적인 선곡을 바탕으로 한 '멜로디 타임'이나 미완의 프로젝트였던 달리와의 합작같은게 그 증거지요.
(로마의 소나무 시퀸스)
오리지널로부터 60년이 지난 뒤 나온 환타지아의 후속편은 정확히 2000년 1월 1일에 아이맥스를 통해서 전세계에 개봉했습니다. 영화는 디즈니의 본래의 계획을 충족시키려는 듯 본편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인 '마법사의 제자' 파트를 그대로 실었고 나머지는 전부 새로운 작업들로 채웠습니다. 영화는 시대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과신하려는 듯한 디즈니사의 과한 자부심과 죽은 디즈니의 잰 체가 느껴지는 듯 하지만 여전히 볼 만하고 거기에 정신없이 빠져들만한,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매우 매력적인 경험을 보장해주는 작품입니다.
오리지널에 비해 가장 큰 특징은 훨씬 덜 지루하게끔 코믹한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겁니다. 영화는 다이알로그없이 음악과 미술의 결합으로 구성되는 본편과 별개로, 유명인사들이 곡을 소개하는 인터미션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의 설명은 진지한 척하다 엇나간다거나 대체로 유머러스한 농담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아마도 원작의 엄숙함이 대중성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영화는 한결 가볍습니다. 오리지널보다 한층 더 경쾌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디즈니다운 유머나 색채가 작품 속에서 살아있지요. 개봉 당시 극장에 서라운드 채널을 사용했는데 이런 시스템을 이용한 농담들(미키가 등뒤에서 말을 한다거나)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동물의 사육제 피날레 시퀸스)
그렇다면 본편에 대해선 어떨까요. 작품은 원작처럼 세가지의 분류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이야기를 가진 것(구상), 익숙한 이미지로 구현되는 것(추상) 그리고 순수하게 음악만을 위한 무질서한 이미지의 나열입니다. 예전에는 마지막을 제 나름대로 '숭고'라고 분류했는데 이것은 언어적으로 쉽게 표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는 베토벤의 5번 교향곡('운명'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으로 문을 열면서 이 세번째 방식의 이미지 나열을 보여줍니다. 곡의 웅장함을 현란한 색감의 나비패턴 집합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약간 조화가 안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죠.
영화는 90년대 중반부터 작업 해왔기 때문에 '토이 스토리'보다도 먼저 CG 그래픽을 이용한 작업물들이 이 영화에 나타나 있기도 한데 안데르센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장난감 병정'이 그에 해당됩니다. 초기 기술임에도 캐릭터들의 외향이나 모습에는 조금의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는데 애초에 장난감이라는 소재가 가지는 이점이기도 하죠. '장난감 병정'은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이 간절하게 옮겨오고 싶어하던 작품 중 하나였다고 하는데 사실 전통 디즈니극처럼 해피엔딩으로 바뀐 이야기가 너무 단선적이고 평범하게 느껴져 실망할 수도 있겠습니다. 원작의 주제를 살리고 결말을 그대로 따라가는게 더 좋았을거예요.

대부분 작품의 수록곡은 참여한 제작진과 디즈니의 간부들이 골랐는데 이 작품을 기획한 디즈니의 조카인 로이 디즈니는 오토리노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를 골랐습니다. 로마의 소나무는 제목의 안정된 느낌과 다르게 로마 전체의 향수와 환상적 심상이 화려하게 드러나는 곡인데 낭만시대 말기의 과격해지기 시작한 음악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는 곡이에요.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은 이를 하늘을 나는 고래들의 이미지로 재해석해 냈습니다. 아이맥스라는 영화적 특성을 가장 잘 살린 작품으로 환타지아2000의 수록 작품 중 이미지적 완성도나 음악과 영상의 조화가 가장 뛰어납니다. 본디 애니메이터들이 바그너의 '발키리의 비행'의 수록을 염두해 두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곡이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되었더라면 이 로마의 소나무와 결과가 아주 흡사했을 겁니다. 전체 곡을 지휘한 제임스 레바인이 바그너에 대한 풍부한 해석으로 유명한 사람이라 여러 모로 좀 아쉬운 일이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전 이 작품이 영화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원작에도 수록되었던 '마법사의 제자'는 잘 알려진 대로 이 영화의 오리지널 곡이고 스토리에 맞게 작곡된 음악인데 그 때문에 소리를 이미지로 살리는 영화 전반의 작업이 가장 뛰어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멜로디도 아주 인상적이고요. 애초에 곡과 극의 균형이 맞게끔 함께 작업된데다 그 자체의 완성도도 높기 때문에 이 작품이 60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가장 인상적인 체험을 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렇지만 비슷한 테마로 완성된 에드워드 엘가(사랑의 인사로 유명한 낭만파 작곡가)의 '위풍당당 행진곡'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 곡은 노아의 방주를 패러디한 도널드 덕의 로맨틱 코미디로 채워져 있는데 이야기적인 측면에서 작품 내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퀸스입니다. 하지만 곡의 분위기와 내용이 다소 불일치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본래 낭만파 이전의 클래식 위주로 채우던 원작의 분위기와 달리 조지 거쉬윈의 재즈 '랩소디 인 블루'가 영화 내에 들어있는 것도 후속작만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노다메 칸타빌레로 다시 주목받은 곡이라 아주 익숙하지요. 알라딘의 '지니'의 캐릭터작업을 맡았던 알 허쉬펠트가 작업한 '랩소디 인 블루'는 뉴욕을 배경으로 네명의 도시인의 애환을 희극적인 감성으로 보여주는데 단선과 단색으로만 시퀸스 전체가 깔끔하게 구성되어 었어서 영화내에서도 가장 개성이 가장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사실 알 허쉬펠트의 작업은 영화와 별개로 작업 중이었고 그 결과물을 영화에 실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환타지아 2000 자체가 그렇게 이미지적인 통일성을 유지하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이 작품도 그 속에서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장 마지막 곡은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로 영화의 하이라이트입니다. 가장 시각적인 요소에 신경쓴 작품이죠. 먼저 곡이야기를 하면 스트라빈스키를 비롯한 20세기 초의 아티스트들의 경향이 드러나있는 곡입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주로 이전에 존재하던 악기로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였습니다. 그의 음악은 조성이 붕괴된 비정형적인 표현과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고 '불새'에도 이런 전형적인 특징이 반영되어 있죠.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은 이 음악을 가지고 독특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냈습니다. 탄생과 죽음, 부활이라는 순환적 주제와 생명(자연의 신)과 죽음(불새)의 강렬한 이미지 대립을 섞어 하나의 작품을 형성했는데 완성품을 보니 여러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스타일이 결합된 것처럼 보입니다. 오리지널 판타지아에 대한 오마쥬와 오시이 마모루적 이미지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적인 메세지가 드러나 있죠. 이것은 디즈니만의 독자적인 이미지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징표처럼 보입니다.
사실 환타지아의 참신성- 이미지와 소리의 결합-은 이미 80년대 뮤직 비디오 산업의 융성과 쇠락으로 극한까지 치달았기 때문에 현대의 관객들은 그 시도에서 더 이상 큰 감동을 받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놀라운 경험은 그냥 순수한 의미로서 재미있고 흥분되는 하나의 실험이죠 . 장르적인 실험에 있어 원작 환타지아는 완벽한 과정과 결과를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그 실험성은 다소 쇠퇴했지만 환타지아 2000처럼 재미있고 참신한 결과물이 계속해서 나온다면 관객들도 기쁘게 그 실험에 동참할 것입니다.
+ 월트디즈니 생전에 비틀즈의 곡들을 환타지아의 에피소드로 만드는 것에 대해 월트 디즈니가 거절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덧글
잠본이 2009/04/30 23:58 # 답글
랩소디 인 블루가 제일 좋았죠. 적당히 이야기가 있으면서도 이미지가 자유롭게 흘러나와서.(확실히 원조 판타지아는 일부 파트가 너무 지루해서 보기 힘들었는데 그점을 많이 개선했더군요)
......그나저나 비틀즈......OTL
헣헣헣 2009/05/01 09:45 # 답글
극장에서 여러 번 보고도 모자라서 DVD로 소장하고 있습니다.블로거뉴스를 통해서 보니 반갑네요.
저는 랩소디 인 블루와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를 가장 좋아합니다.
극장에서 감동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불새에서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장면과 음악의 조화란..^^
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언젠가 저렇게 감동적인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지요.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