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유혹 (SBS)
2008-11-03 ~2009- 5-1

sbs의 일일극이 부활한 이후 세번째 작품인 아내의 유혹은 시작 당시에는 별 다른 관심을 모으지 못했습니다. 몹시 자극적인 설정이 관심을 모으며 회자되긴 했지만 그게 굳이 그 드라마를 봐야할 당위성을 마련해주지는 못했죠. 그런데 막상 방영되고나니 이 드라마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그 내용의 자극성이 아니었습니다. 황당무개한 설정과 시치미 떼고 밀어붙이는 빠른 전개 속도가 핵심이었죠. 드라마는 한국 일일 드라마 역사상 가장 빠른 전개를 보여주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착한 주인공 구은재(장서희)는 어린 시절 친구이던 신애리(김서형)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임신한 아이도 잃으며 심지어 간접살인까지 당합니다. 모두가 죽은 줄 알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살아난 구은재는 그녀의 시댁에 개인적 원한관계를 가지고 있던 민사장(정애리)의 도움으로 복수를 계획합니다. 그 복수란 전 남편 정교빈(변우민)을 다시 유혹하고 시댁을 망하게 해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었죠.

이 황당한 설정은 호주 TV 드라마 '에덴으로 돌아오다'의 모티브와 흡사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방영도중에는 모 소설가에 의해 표절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황당하다는 것은 아내의 유혹에 있어 대표적인 키워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황당한 중심 설정과 자잘한 허술함으로 포장되어 있던 드라마이니깐요.
드라마는 그런 포장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리하게(이것은 우연임이 후에 드러납니다만) 이용했고 이점이 드라마에게 좀 독특한 색을 불어넣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은재가 머리를 자르고 눈 밑에 점을 찍으며 다른 사람 행세를 하는데도 다른 인물들은 그가 구은재인지 아닌지 반신반의하며 결국은 속아넘어갑니다. 이런 허술한 설정은 기본적인 드라마 법칙-개연성-을 무시한 채 오로지 속도만을 목적으로 빠르게 전개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시청자들이 내용의 자극성에 몰두하는데 방해하는 두가지 효과를 내었습니다.
다시 말해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진지하게 본 것이 아니라 마치 시트콤처럼 가볍게 즐겼고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의 허술함은 지금까지의 막장 드라마를 패러디하고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던 겁니다. 자극적인 설정을 노골적으로 나열해서 우스꽝스럽게 보이도록 하고, 질질 끌던 막장 드라마들의 전개방식을 파괴하고 파격적으로 빠르게 끄는 전략을 통해서요.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의 인기비결은 그런 의도치 않은 패러디에 있었습니다.
장점을 계속 이야기해 봅니다. 작품의 중반부에서 소위 다른 일일극과는 다르게 답답함이 적었다는 것은 공통된 의견일 겁니다. 구은재가 본격적인 복수를 준비하게 되는 4~50회 이후에 드라마는 2,3일 분량을 하나의 에피소드로 묶어서 기승전결식으로 꾸몄고 서브 스토리를 거의 제외시켰습니다. 모든 에피소드는 구은재를 중심으로 나열되었고 이런 빠른 속도감과 높은 집중도에 시청자들은 지루해할 새가 없었습니다. 드라마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일일극으로는 드물게 다양한 연령층을 포섭했다는 것인데 드라마의 허술한 장면들(간호사의 고화질 카메라, 소품실수 등)이 네티즌의 놀이문화로 환원되기도 했죠.

그런데 드라마는 자신의 장점을 끝까지 영리하게 이용하지는 못했습니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작진이 고집한 '화해와 용서의 결말'은 그 대표적인 증거로, 이 주제로 밀고나간 드라마의 후반부는 상당히 엉망이 되었습니다. 일단은 민소희(채영인)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캐릭터간의 균형이 깨지고 클라이막스가 연장되는 효과가 발생해 따분한 인상을 주기도 했지만 진짜 문제는 드라마가 '진지해'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보통의 시청자들도 이 드라마의 숨겨져 있던 막장성을 눈치채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전에는 빠른 전개로 포장했던 그 막장성은 드라마가 방향성을 일으면서 노출되었고 말도 안되는 설정을 즐기던 시청자들은 돌변해 드라마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쉽게 말해 후반부에 들어서 시청자의 기대와 드라마의 기대가 달랐던 겁니다. 드라마는 완결에 있어서는 문학적인 주제 '용서'를 통해 자신의 막장성을 감추고 싶어했고, 시청자는 순간순간 욕구를 채워줄 오락성을 계속 원했습니다. 이런 부조화는 악역 신애리를 신파의 여주인공으로 세우는 마지막에 이르러 극대화되었고 후반부에 이르러 시청률은 오히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드라마는 영리하지 못했던 것이고 그런 면에서 진정한 막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거지요.
아내의 유혹은 어떤 면에선 대단히 혁신적이고 유쾌한 경험이었지만 똑똑하게 극을 마무리하지 못했고 악습을 남기는 부작용(이미 sbs에서는 후속 드라마로 노골적인 아내이 유혹의 새 버전을 내보내더군요)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 드라마를 나중에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게 될 지 어떻게 재평가하게 될지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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