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아이러니한 코미디 미디어탐구

박쥐, 아이러니한 코미디

박쥐는 근래에 본 영화 중 가장 웃긴 영화였습니다. 그냥 순수한 의미로 웃긴 영화죠. 영화는 진지한 상황 속에서 기대치않은 언어와 행동의 반전과 괴팍한 코미디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서사가 별로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뚝뚝 끊어지는 이야기는 화면 뒤에 벌어졌을(관객은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이야기를 궁금케 하지만 영화는 그것을 세심한 화면구성력과 감독의 독창적 형식으로 포장해 그럴싸한 미학적 완성품으로 잘 묶어 놓았습니다.

주된 테마는 욕망과 죄의식에 관한 것입니다. 등장하는 대다수의 인물들은 시작 부분에선 욕망의 과한 억눌림으로 왜곡되고 과장된 행동을 하는 일종의 미친 집단이며(과장된 연기로 표현됩니다.) 동물적 본능이 해방되지 못해 불우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뱀파이어가 된 신부 상현(송강호)과 남편을 죽일 계획을 세우는 아내 태주(김옥빈)의 결합으로 비롯되는 '욕망의 해방'은 기존의 도덕률과 양심같은 모든 이성적 요소들을 파괴합니다. 불우했던 인간들은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행복해지지만 그 행복은 죄를 저지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이며 또다른 '결여'를 낳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중요한 종교적인 모티브가 놓여 있습니다. 종교와 욕망 그리고 죄가 만나면 하나의 메커니즘이 형성되지요. 가령 영화 속 종교에선 죄를 지으면 그것을 신에게 속죄함으로써 죄의식을 해소하게 됩니다. 고백성사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릅니다. 인물들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과감히 죄를 짓고 그 죄를 신에게(신의 사도인 신부에게) 속죄함으로써 또 다시 죄를 지을 수 있는 원점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상황이 반복되면서 죄의식은 무뎌지고 욕망은 강해지며 그안에서 그들을 용서할 신은 그만 죽어버립니다.

(미쳤거나 제정신이 아니거나)


신부와 뱀파이어는 아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설정입니다. 신부는 모든 욕망이 은폐되어야만 하는 신성한 상징이지만 뱀파이어는 생존을 위해 욕망을 적나라하게 현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가지가 뒤섞여 그 자체가 거대한 모순덩어리가 된 상현의 욕망은 그래서 점점 더 왜곡되고 뒤틀려 갑니다. 그는 자살하려는 사람들의 피를 훔치지만 그것이 신부인 자신의 상징과 뱀파이어로서의 자아가 합일하는 일이라고 애써 위로합니다. 물론 그것은 그렇게 단순한 논리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헷갈려하기 시작한 상현의 엇나간 행동들은 극을 비극으로 이끌고 갑니다. 물론 여전히 희극적인 템포를 늦추지 않습니다. 영화의 이런 부조화는 독특한 리듬감을 주면서 관객을 스크린 밖으로 밀어냅니다. 관객들은 즐기고 몰입하는 대신에 고민하지 않아선 안됩니다.

(어긋난 욕망과 죄의식의 화신)


상현의 죄는 생존에 대한 욕구로 시작되지만 결국 쾌락만을 위해 뻗어가고, 끝내는 이미 수많은 죄에 대한 형벌로 죽음을 맞이한 태주마저 뱀파이어로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뱀파이어가 된 태주는 모든 죄를 용서받고 부활한 신의 사도가 되어 극중 죄를 지은 모든 인간을 단죄합니다. 영화에서 어떤 식으로든 욕망을 탐하고 죄를 지은 인간은 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단죄할 수 있는 것은 신이지 신의 사도가 아닙니다. 그녀는 뱀파이어로 탄생하면서 그만 또 다른 죄를 지어버립니다.

결국 죄가 쌓일만큼 쌓여 형벌을 받을 수도, 속죄할 신도 없는 상황에서 인물들은 용서받기 위해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아선 안됩니다. 존재를 지움으로써 끝내는 구원받고 싶어하는 인물들의 결말에 인간적이고 나약한 빛이 비추고 그들은 대체로 창백한 영화에서 처음으로 원래의 색감을 얻습니다. 비극의 냄새가 만연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여전히 희극적입니다. 박쥐라는 존재처럼 아이러니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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