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더 베어 Brother Bear (2003)

브라더 베어는 월트 디즈니가 만들어낸 만화 영화 중에서 가장 어렵고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분노에 가득 찬 인물들이 등장하고 어떤 이는 자신이 가장 혐오하던 대상으로 변하며 악연인 인물들이 운명의 장난처럼 엮입니다. 혈연관계를 부정하고 원수(?)로 구성된 가족이라는 쉽게 풀어내기 힘든 설정과 주제가 중심에 놓여있으니 디즈니가 추구하는 동화적인 느낌과도 배치되지요.
그렇지만 영화는 여전히 디즈니식 동화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 이 영화의 장점과 단점이 나란히 놓여있습니다. 장점만큼 단점이 명확하지만 영화가 가진 장점의 매력은 작지 않아 마음 속에 서서히 스며들고, 영화의 감흥이 사라진 다음에 생각해봐도 그다지 나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디즈니의 마흔 네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인 이 영화의 창작은 어디까지나 라이온킹의 비극적인 테마를 근간으로 하고 있고 타잔의 성공 공식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철학적인 모양새는 재패니메이션의 영향력에서도 자유롭지 않고요. 타잔의 메인 스크립터가 쓴 각본은 희극적인 숨통이 트여진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가깝습니다. 운명의 굴레에 갇힌 주인공들은 거기서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지만 결코 운명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필연적인 파국에 맞닥들이게 되고 그러면서 내적 성장을 하게되죠.
따라서 영화는 그간의 디즈니 만화 영화들과는 다르게 심리적 갈등구조에 꽤 공을 들입니다. 극에는 특별한 악역도 없고 오로지 운명의 신이 장난쳐놓은 기묘한 악연들만 존재하지요. 그렇지만 영화의 스토리가 진행되는 형식은 다분히 현대적이에요. 두 주인공은 로미오와 줄리엣만큼이나 악연이지만 그 사실은 영화의 후반부까지 서로에게 밝혀지지 않고 둘의 사이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통해 점점 가까워져 갑니다. 관객은 이런 관계를 미리 눈치채게 되는데, 영화의 서스펜스는 이런 관객의 불안과 어두운 상상력을 자극시키는데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가 이렇게 무거운 갈등을 푸는 방식이 맥이 풀릴 정도로 안일하고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비극적인 설정에 비해서 풀어가는 방식이 지나치게 희극적이고, 어려운 설정을 이해못할 어린이 관객들을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지요. 영화는 영화 내에서 가장 중요한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을 단순히 음악과 이미지의 배치로 해결하고 그 거대한 비밀이 붕괴된 이후에도 인물들의 내적 변화를 거의 진행시키지 않습니다. 마치 해피엔딩이란 거대한 목적을 위해 다들 스스로의 분노와 의지를 억누르고 억지로 통합하려는 것만 같이 느껴지지요. 좋은 설정을 아깝게 소비한 셈입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여러가지 설화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듯 합니다. 설화에서 나타나는 주술적인 요소들이 뒤섞여 있고 '웅녀'를 통해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곰 토템이 주요 테마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영화 개봉 당시에는 이 토템을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가지고 미국 기독교도와 디즈니 사이에 마찰이 있기도 했는데 이 영화에선 기본적으로 이런 토템이 인간과 연대하는 동물이라는 현대의 환경주의적 입장이 강합니다. 인간과 자연의 친화적 연대는 영화의 또 다른 주제입니다.
(Wecome)
수만년 전을 배경으로 북미에 사는 원주민인 주인공 키나이는 성인식을 맞아 부족의 무당인 티아나에게 곰 토템을 받아들이게 되지만 곰이 영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진짜 곰과 싸움을 하게 되고 일이 커져 그만 큰형인 싯카가 죽게 됩니다. 살아남은 곰에게 복수를 하려는 키나이는 둘째 형 데나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곰을 죽이게 됩니다. 그런 키나이에게 갑자기 빛이 그를 둘러싸더니 그의 몸을 곰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뒤늦게 쫓아온 데나히는 그만 곰이 자신의 동생 마저 죽였다고 오해를 하고 곰이 된 키나이는 놀라서 도망을 칩니다.
키나이는 주문을 풀기위해서는 빛과 땅이 마주하는 신성한 산을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런 중 엄마와 헤어져 길을 잃은 아기 곰 코다를 만나게 됩니다. 코다가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된 키나이는 동행하면서 점점 서로에게 의지하며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자신이 죽인 곰이 사실 코다의 엄마라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죠. 한편 키나이를 죽이러 나선 둘째 데나히 역시 그들을 쫓아 빛과 마주한 산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의 가장 독특한 연출적 특징은 상영 도중 화면비가 바뀐다는 점이었습니다. 1.75:1로 시작한 영화는 주인공 키나이가 곰으로 변하면서 2.35:1의 비율로 바뀌고 색감은 밝아지며 인물을 그리는 방식도 약간 둥글게 변형됩니다. 인간과 곰의 시각적 차이를 살리기 위해서 사용한 방식인데, 키나이가 인간일 때 보는 곰의 모습과 곰으로 변하고 나서 보는 곰의 모습이 확연히 다릅니다. 이 역시 환경주의적 입장에서 고려한 사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브라더 베어는 좋은 설정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그 과정을 썩 잘 그린 작품은 아닙니다. 이야기의 개연성은 부족하고 진행은 진부하니 주인공들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되는 과정을 관객은 영화가 끝난 직후에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뭔가 나쁘다고 하기에는 아쉽습니다. 설익은 솜씨 때문에 비록 드라마적인 흥미가 반감되었을지언정 여전히 무언가 와닿는 게 있고 보고난 후에는 마음이 따스해지거든요. 엄마잃은 어린 코다가 키나이에게 얼굴을 파묻는 그런 장면들은 영화 자체보다도 더 큰 생명력을 지니고 강렬한 감성적 체험을 선사하지요. 네, 디즈니는 셰익스피어가 아니고 그렇게 되고싶은 욕심도 없으며 그저 디즈니일 뿐입니다.
+데나히 역을 맡은 배우는 디즈니의 라이온킹 뮤지컬 무대에 주인공으로 섰던 제이슨 레이즈인데 영화가 나온 다음 해에 자살했습니다. 주인공 키나이는 호아킨 피닉스가 목소리를 빌려주었습니다.




덧글
piro 2009/12/09 03:06 # 삭제 답글
개인적으로 디즈니를 좋아하게 만들었던 2번째 작품입니다. 첫번째로는 릴로엔스티치였구요 (키득)그저 드라마적인 요소로만 보았을 땐, 꽤 재미있었습니다. (반전요소가 없어서, 닝닝한 맛도 있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