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즈 시리즈의 철학 미디어탐구

심즈 시리즈의 철학

6월2일에 심즈3가 나옵니다. 기회를 맞아 이전 시리즈에 대해 한번 생각해봅니다.


2000년에 심즈 시리즈의 첫번째 편이 나왔을 때 성공을 확신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겁니다. 흥미롭게도 이 게임은 그간의 게임들이 가장 무시해왔던 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평범한 일상과 인생입니다. 게임들이 추구해온 쾌락성과 일상의 탈출을 배반하고 이 게임은 바로 그 일상을 재현합니다. 악몽같이 규칙적인 생활과 거추장스러운 생리 현상들, 쥐꼬리만한 월급, 인생의 자잘한 실패와 성공이 모두 담겨있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선 요리를 해야하고 규칙적으로 잠을 자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일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습니다. 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현실의 고난을 게임 속에서 다시 체험하며 흥분하는 일종의 사디스트가 됩니다. 그런 게임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PC게임이 된 겁니다.

발매 당시 충격을 안겨준 심즈1


무엇보다도 이 게임의 가장 큰 배반은 목적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리지널 심즈에는 반드시 달성해야할 목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심들은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살 수도 있습니다. 사실상 오리지널 심즈는 몇가지 베이스를 제공할 뿐 그 밖에 모든 것이 유저의 상상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목적없는 게임은 역설적으로 플레이어의 욕구에 의해 영속적인 목적성이 부여됩니다. 개인에 따라 다를겁니다. 건축적 목표와 부에 대한 열망, 양육에 대한 판타지, 서사에 대한 욕구(유저들은 화면을 캡쳐해 만화를 만들고 가상의 이야기를 불어넣으며 심즈들의 세계에 자아를 적극적으로 개입시킵니다.) 모든 것이 플레이어의 상상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개발자 윌 라이트가 말하는 게임의 캘빈 팩터(Calvin factor)는 파괴를 위한 창조를 뜻하는데 심즈는 이런 것이 무한대로 가능한 공간입니다. 유저마다 각기 다른 파괴와 창조의 욕구가 탄생하는 겁니다.


이 게임의 본질은 이런 창조적 요소 뿐만 아니라 '재현적 인식'이란 요소에도 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요리를 태우고 불이 난다는 게임 속의 사소한 사실에 놀라고 심즈가 몇가지 물리적 이유로 죽을 수 있다는 현실성에 재밌어 합니다. 점차 심들의 선택사항이 늘어나는 확장팩은 이런 창조성과 사실성을 복잡하게 확장시켜 놓았다는데 핵심이 있습니다. 인형놀이에 힌트를 얻었다고 하는 이 게임은 그 인형놀이에 놀라운 사실성과 심리학적 메카니즘을 불어넣었습니다. 심즈들은 여덟가지로 분류되는 생리적 욕구에 의해서 지배되고, 단순한 행위와 집꾸미기로 대변되던 오리지널 심즈는 확장팩에 의해서 갈수록 진화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리지널 심즈의 성공 이후로 처음 나온 확장팩 '별난 세상'은 심즈 세상에 섹스와 생명의 탄생의 상관 개념을 도입했고(이때문에 등급문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허영과 물질적 욕구를 대변한 '슈퍼스타'와 초현실적인 모티프로 게임성을 확장시킨 '수리수리 마수리'같은 확장팩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여러가지 확장팩들


이런 심리학적 요인은 심즈2로 와서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MBTI의 창시자인 심리학자 이자벨 마이어즈의 이론이 심즈의 인격형성에 관여했고 이들의 성장에는 프로이트와 라깡의 개념들이 유입되었습니다. 심들은 두번째 편으로 와서 조금 더 인간다워졌는데, 후속편의 가장 큰 특징은 심들이 나이를 먹고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기억들은 누적되고 그것이 심들의 성장에 영향을 줍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어느날 불쑥 튀어올라 심즈의 인생에 영향을 주고 인격 게이지에 따라 다양한 성격이 부여되었습니다. 성격이 다른 만큼 상호작용도 복잡해졌고 관계는 일시적인 것과 영구적인 것으로 분리되었습니다.

그래픽이 3D로 진일보한 심즈2


불멸의 삶을 지녔던 오리지널과 다르게 심들이 나이를 먹고 죽으면서 게임은 반복성을 탈피했는데 동시에 야망의 개념은 게임에 약간의 목적성을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성격에 따라 가지고 싶은 직업들이 생기기도 했지요. 심들은 바라는 것이 생겼고 싫어하는 것을 피하게 되었으며 플레이어들은 게임의 설정에 많이 의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심즈2의 확장팩들은 오리지널 심즈처럼 게임성을 높이는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 관계와 심리적 요인들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사실 이 생활 시뮬레이션이란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그들이 얼마나 인간을 닮는냐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물론 한계는 있습니다. 여전히 심들은 게임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벗어날 수 없고, 그 때문에 비인간적으로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편입니다. 너무나도 공평한 심들의 세계는(강제성을 지닌 평화지요) 기본적인 인간의 계급의식과 계급욕구가 거의 반영되지 않습니다. 또한 심들의 비도덕성은 악한 것이 아니라 오락적이고 멍청한 것이 대부분이라 사실 인간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지요. 이 게임을 하다보면 '진정한 도덕'에 대한 명제-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야말로 진짜 도덕적이다.-가 심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심즈가 정말로 인간을 닮고자 한다면 결국 이런 난제들을 피해갈 수는 없을겁니다. 이 한계를 기술적으로 어떤 식으로 고안해 극복하냐에 따라 심즈의 경이로움도 이어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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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퀘스트 게임의 문제 2009/06/01 22:21 #

    요즘 게임들은 퀘스트가 많습니다. 할 일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재밌기 때문입니다. 플레이어는 퀘스트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지만 보통 퀘스트를 하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게임을 하는 중에 어떤 게 재밌을까하고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퀘스트가 없다면 어떨까요. 대부분의 게임은 그런 상황에 대해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즐길 거리들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플레이어들은 그런 게임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항상 게임이 가르쳐주길...... more

덧글

  • MIP마스터 2009/06/02 09:57 # 답글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예전 중학교 시절 심즈를 붙잡고 한달 동안 달렷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군요
    (특히 결혼하고 애는 입양기관에서 대려가고 이혼하고.............)
    아마 철학자 기호학자 인문학자들이 심즈를 분석한다면 대단한 글이 나올것 같습니다
    (물론 게임을 해봐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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