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리턴 Kids Return (1996)

배달 일을 하는 신지(안도 마사노부)는 고교 동창 마사루(카네코 켄)를 우연히 만난다. 몸이 불편해 보이는 마사루는 하는 일이 없는 백수다. 신지의 권유로 둘은 자전거에 함께 올라타고, 영화는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함께 타고 학교로 달리던 그들의 고교시절로 돌아간다.
문제아인 둘과 다른 학생들 사이에는 뿌연 창이 놓여있다. 창가에 앉아있는 다른 학생들은 멍하니 운동장을 배회하는 그들을 응시한다. 둘의 탈선은 제도권 안에서 속한 이들에겐 자유롭고 또 한편으로는 멍청해 보인다. 영화 속에서는 바보란 말이 곧잘 반복된다. 마사루에게 돈을 뜯기는 아이들도 바보고 학교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선생님의 새 차에 불을 지르는 마사루와 신지도 선생에게는 바보다.

어느 날 돈을 뜯었던 아이의 선배에게서 흠씬 두들겨맞은 마사루는 복수하기 위해 권투선수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신지는 묵묵히 그를 따라 도장에 가는데, 정작 권투에 소질을 보이는 것은 신지다. 기분이 나빠진 마사루는 권투를 그만두고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보기로 한다. 그것은 야쿠자가 되는 일이다.
신지가 권투선수로 승승장구하고 마사루는 조직의 단계를 밟아 점차 지위가 상승한다. 제법 성공한 마사루가 역시 챔피언쉽 도전을 앞둔 신지를 만나러 오지만 서로에게 득될 게 없는 처지다. 권투선수인 신지에게 술과 담배, 유흥은 몰락을 자초하는 길. 마사루는 관장의 충고를 받고 만나러 왔던 걸음을 돌린다. 그리고 나중에 신지가 챔피언이 되고 자신이 두목이 되면 다시 만나자고 한다.

그러나 인생이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다른 젊은 권투선수들이 무너진 것처럼 신지도 자기관리의 실패와 체중조절 약으로 인한 컨디션 저하로 권투선수로서의 삶이 한순간에 주저앉는다. 그가 링 위에서 마지막으로 목격하는 것은 화면 가득 날아오르는 하얀 수건과 밀려오는 현기증 그리고 인생의 패배. 마사루 역시 젊은 시절의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보스의 죽음에 광분하며 날뛰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의 야만성에 대한 조직의 응징 뿐이다. 그는 굴욕적인 집단린치를 당한 후 왼팔마저 쓰지 못하게 된다.
둘은 그렇게 다시 만나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학교로 간다. 시간이 가도 익명의 학생들은 변함이 없고 여전히 창이 그들 사이의 경계처럼 놓여져 있다. 부러움과 경멸의 이중성을 지닌 학생의 무표정한 시선도 여전하고 그들을 내다보고는 바보라며 한숨짓는 선생도 이전과 다름없다. 그러나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리듯 시계 반대방향으로 빙그르르 자전거를 타고 돌면서 신지가 묻는다. "우리 이제 끝난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했잖아"

영화는 대담한 생략과 정적이고 반복적인 화면 그리고 같은 멜로디가 다양하게 변주되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각각 하나의 단위로 삼아 전개된다. 정적이지만 색의 배치나 구도는 역동적이다. 각기 대비되는 색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거리를 달리는 마사루와 신지의 모습은 그 색감만으로도 에너지가 넘친다. 동시에 영화는 넋이 나간 듯한 멍한 시선으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첫 장면을 보며 영화의 시선이 멍하다는 것을 넌지시 깨달았다. 그런 느낌을 주는 장면들이 회상으로 들어가기 전 인물들의 현재 모습을 묘사할때 주로 나타난다. 마치 달리기를 하다 뒤쳐진 아이가 제치고 나간 다른 아이의 등을 바라보듯 영화의 카메라는 인물들의 움직임보다는 움직인 이후의 풍경 속에 머무는 걸 반복한다. 느릿한 신지의 시선같기도 한데, 영화의 다른 어떤 장면들보다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긋나고 왜곡된 인간상과 비합리적으로 굴러가는 사회 속에서 역시 사회와 같은 운명을 맞는 인간들의 비참함을 이런 느긋하고 멍한 시선이 감싸 안는다. 한박자 느리게 가는 듯한 카메라는 사회의 부적응자로 낙인찍힌 이들을 부드럽게 달래는 것같다. 세상의 속도를 무시하는 듯한 그 여유가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줄 것만 같다.
주인공인 마사루와 신지 외에도 영화는 보조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충실히 횡단한다. 짧은 씬들이 패치워크를 직조하듯 짜맞혀 들어가 있다. 마사루와 신지가 자주 놀던 다방에서 그집 딸에게 수줍게 러브레터를 건네던 같은 반 소년은 졸업 후, 외판원으로 취직도 하고 그녀와 결혼하는데도 성공하지만 택시기사로 전업하고 얼마되지 않아 사고로 사망한다. 만담을 하던 두친구는 마사루의 권유로 오사카에 가서 일을 시작하고 그들은 예상치 않게 인기를 끄는 콤비가 된다. 신지를 따라 뒤늦게 권투에 입문한 친구 한명은 몰락한 신지에 이어 챔피언의 자리를 노린다. 불규칙하고 뜬금없는 각각의 에피소드는 허무하고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마사루의 마지막 말이 희망의 언어처럼 들린다면 그것은 영화의 상황이 극히 절망적이고 한치 앞을 알 수없을 정도로 매섭기 때문이리라. 마치 음성상과도 같은 대비 효과다. 이때 머믐게 되는 웃음은 쓴 맛이 가득나는 차디찬 기운이 담겨있을 것이다.
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만담가 출신이다. 워낙에 희노애락을 누비는 다양한 경험을 했고 독특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무엇으로 봐도 범인은 아닌듯 싶다. 그의 웃음은 어떤 본질적인 현대의 비극성을 근간으로 하는 것 같다. 광대로 출발한 그는 방송에서 '모든 사람은 스스로 죽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말을 남기고 자살시도로 추정되는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는데, 죽음의 기저까지 갔다 돌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살았고 죽음과 절망에 관한 자신만의 언어인 영화 '하나비'(1997)를 만들어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극히 절망적인 어조로 가득찬 하나비 바로 앞에 선행하는 영화가 이 키즈리턴인데 여기서는 그럼에도 질기게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강한 인간애의 면모를 보여준다. 성장영화이지만 심리학적 접근이나 사회학적 접근은 철저하게 배체한 채 특유의 냉소로 가득찬 세상의 배신과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서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편법을 가르치는 세상에서 결국 그 편법에 내가 넘어가는 코미디같은 세상. 그의 세상은 이런 부조리로 가득하다. "우리 이제 끝난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했잖아" 너무나도 애잔하게 들리는 이 문답은 오지않는 고도를 기다리던 그 안타까움과 닮았다.
어쩌면 생각하기 나름이다. 거칠게 삶의 무대로 뛰어올랐던 마사루와 신지는 모든 것을 잃음으로써 새로 출발할 수 있는 희망을 얻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삶은 연속적이라 모든 사건과 기억은 응집되기 마련일터. 과거의 짐과 상처를 끌어안고 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그들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다시 영화의 물음은 되풀이된다. 그 모든 삶의 무게를 짊고 가기에 그들은 너무 젋지 않은가?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키즈리턴은 무한한 희망이면서 비극의 전보를 남긴다. 그럼에도 거칠게 피어오르는 희망의 꿈이 비극을 뚫고 그 자리 위로 쏫아오른다. 히사이시 조의 요동치는 음악은 영화가 끝나는 바로 그 시점에서 시작된다.




덧글
Newtype 2009/06/09 22:25 # 답글
저도 이영화 좋아해서 dvd도 구입했습니다. >_<기타노 타케시는 사고이후에 거의 회의론자가 된 것 같아요.
이 영화찍고 인터뷰에서... 마지막 장면에 대한 사람들의 질문에...
"사실 그들의 인생은 끝난거나 마찬가지지."라고 대답했다죠.
뭐 영화를 보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겠지만요.
가젤 2009/06/09 22:44 # 답글
영화 내용도 좋고 음악도 인상적이었습니다.세상은 여전히 냉혹하겠지만 마지막 주인공들의 대화가 일말의 희망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는데..
Newtype님 덧글에서 감독의 말씀이 참..
역시 냉소적이시네요 ㅎㅎ 잔인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