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요정 세일러문과 마법소녀 변신물

달의 요정 세일러문
원제: 美少女戰士セ-ラ-ム-ン 1992.3~1997 .2 전 200화
일본에서 소녀변신 모티프가 처음 등장한 것은 60년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전까지 강조되어오던 수동적인 여성상에 대한 반대급부로 등장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사실 60년대가 상징하는 어떤 탈사실주의 경향과 기존체제에 대한 저항정신, 이런 것이 기여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디즈니의 신데렐라(1950)로 대변되는 판타지와 요술공주 샐리(1966)의 판타지는 고작 십여년의 간격을 두고 있지만 서사방식에 분명한 차이가 있지요. 이런 마법소녀물은 60년대에 등장해 완구업체와 협력하게 되는 70년대에 들어 활발히 융성되다 곧 이야기의 진부함때문에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90년대 들어 다시 주목받게 되지요.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은 90년대 초 고단사의 최고 히트작으로 이런 마법소녀물이 집단체제로 드러난 첫 작품입니다. 대개 만화가 히트치고 애니메이션화가 진행되는 것과 달리 잡지 '나카요시'에 연재되었던 단편 '코드 네임은 세일러 V'를 기반으로 하여 전혀 다른 오리지널 스토리로 잡지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동시에 제작, 방영됩니다. 세일러 V는 마법소녀 변신물에 탐정물-중에서도 루팡 류의-코드를 결합시킨 작품으로 세일러문 시리즈의 기반이 된 것은 물론, 직접 세일러문에 출연하여 세일러 전사중 한명인 비너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만화사적인 의의로 살펴보면 기존의 장르를 한데로 모아놓았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소녀적 정서를 기반으로 한 순정물과 집단적 야생성과 액션을 필두로 한 전대물의 독특한 결합은 이후 수많은 아류작을 파생시키기도 했죠.
전대물을 근간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에 기존 ㅇㅇ레인저물의 기본 공식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가령 몇분에는 뭐가 나오고 몇화에는 누가 배신하는 등의 아주 기본적인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었죠. 변신 씬이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부각되기도 하였고요. 본래는 퀸 베릴과의 접전을 다룬 시즌 1으로 마무리될 계획이었지만 폭발적인 인기로 장장 5년간 방송되어 200화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작품의 상업적 성공이 대단하였기 때문에 이후에는 소녀변신물의 표준과 상징처럼 남게 되었습니다. 원소스 멀티유즈의 대명사이기도 하고요. 캐릭터 사업과 극장판등의 확장과 거의 10년동안 공연되었던 뮤지컬,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실사화된 드라마까지 관련 텍스트가 매우 많습니다. 한동안은 원작의 헐리우드 리메이크(!) 판권구입 루머가 돌기도 했지요. 현재는 애니메이션 방영 판권을 원작자인 나오코 다케우치가 막아두었다고 합니다.
등장인물이 다수였기 때문에 상업적인데서 유리했던 측면도 있습니다. 총 다섯개 시즌으로 분류되는데 멤버가 추가되고 새로운 변신 아이템들이 등장하면서 이야기의 볼륨도 점차 커져 갔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작품의 본질적인 측면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는 작품은 92년에 방송된 본편입니다.
세일러문은 단순히 환상성에만 의존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물론 세일러문이 주문을 외우고 변신하는 40~50초 가량의 씬은 매 에피소드마다 반드시 나와야되는 장면이고 소녀들의 변신 욕구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장면이며 세월이 지나도 우리가 이 작품을 기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긴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욕구와 반대되는 소녀의 평범한 일상 역시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일러문은 단순히 그런 전체주의적 가치를 위해서만 머물지는 않았습니다. 이 작품은 기존 전대물의 통속성이나 이념적 가치를 현대적으로 극복했는데, 흥미롭게도 세일러 전사들은 변신을 통해 집단적 가치를 구현하다가도 결국 현실의 평범한 자신에게로 돌아오길 원합니다. 세라는 첫번째 시즌의 마지막편에서 자신의 세일러문으로서의 기억이 소거되길 원하는데, 죽으면서 엄마의 잔소리, 하교길에 먹었던 크레이프같은 것을 기억해 냅니다. 결국 기적적으로 살아나 기억을 잃은 세라가 소중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으로(1편과 수미상관을 이루도록 연출되었습니다) 시즌1이 마무리 되지요. 어찌보면 세일러문이라는 환상적인 주체는 현실의 자신을 더 소중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의 오프닝에서 유리창을 가운데 두고 세일러문과 세라가 등을 대고 마주하는 장면은 그런 면에서 대단히 상징적입니다. 오프닝의 어느 장면에서도 세라는 웃지 않고 잡을 수 없는 대상을 잡으려 하고 목적없이 끝없이 달립니다. 사실 세일러문의 활동이 성공적일수록 현실의 자신은 더 초라해지고 일상과 평화는 더 간절해지는 것이거든요. 세일러문과 세라, 둘은 불일치하고 더 소중한 것은 거울 속의 세일러문이 아니라 현실의 세라입니다. 목적성없이 방황하게 되는 사춘기 소녀의 우울함과 만족을 모르는 끝없는 욕구, 그 실현과 좌절, 현실로의 복귀를 이 작품은 모두 담아낸 것이지요. 이런 마법소녀물에 대한 현대적인 각색이 폭발적으로 동시대 소녀들의 감성을 휘잡았던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런 본편과 다르게 후속편들은 이야기면에서 발전되고 확장되었습니다. 자연보호적인 테마와 먼 미래의 신화를 다룬 판타지인 두번째 시즌 '세일러문 R', 세기말의 불안감과 메시아의 등장 등 한층 복잡하고 어두운 내용을 다룬 세일러문 S등이 있습니다. 이 세일러문 S는 이야기면에서 시리즈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었는데 외계에서 온 집단 데스버스터즈에 의한 지구의 멸망과 근친상간적 모티프, 신화와 성경을 엮어내 만들어낸 수준 높은 이야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리즈 방영 후 이듬 해 일본에서 벌어진 오움진리교 사건 등을 생각해보면 동시대성도 뛰어나 보이죠.
이렇게 전체적으로 하나의 큰 시리즈가 비극적인 내용이나 무게감있는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지만 개별적인 에피소드들은 사실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인물들이 사고를 치고 수습하고 짝사랑, 음식을 가지고 벌어지는 사소한 다툼같은 일상의 만화적 묘사들은 이 작품의 명랑만화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고 사실 오랜 시간 작품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기본적인 원동력이기도 해요.
+이상한 공격 주문등은 작가인 나오코 다케우치가 전직 약사출신인게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후에 헌터X헌터 작가인 토가시요시히로와 결혼했습니다.




덧글
키마담 2009/06/21 19:21 # 답글
와, 작품 해석이 멋지시네요.세일러문도 역사문학의 형태로 남을지도 모르겠네요^^
파라파라믹스에서 일본판 마지막시즌 오프닝을 믹스해놓은 것
좋아하는데, 반갑네요. 좋은글 읽고갑니다^^
벨제브브 2009/06/21 19:27 # 답글
근데 이러한 마법소녀물을 보다가 마포소녀 나노하 시리즈를 보면 참 충격이 큽니다(경험자)
散華 2009/06/22 00:56 # 답글
열심히 외웠던 주문들은 결국 약이나 바이러스, 병 이름이었던거군요^^;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미친과학자 2009/06/22 09:50 # 답글
실사판....OME!!! OME!!!!!!!!!!!!!!
jun Boy 2009/06/22 14:13 #
실사판 턱시도가면 변신장면도 한번 보셔야 할듯...^^;
ㅇ 2009/07/12 19:35 # 삭제 답글
치비우사가 맨날 가지고 다니던 둥그란 공모양의 고양이의 정체는 대체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