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 사건, 과잉된 이야기와 연출 미디어탐구

신주쿠 사건 (2009)


여러분은 이주 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까.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소재는 90년대 말 일본에 대거 밀입국한 중국인 불법 노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약 150만명의 중국인이 90년대 일본에 체류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중국 경제 활성화와 더불어 많이 돌아간 상태라고 하지만요.

영화 속 이주 노동자의 모습과 거기에 반응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감독의 취재에 의해 주관적으로 형상화된 허구이긴 하지만 기본권이 박탈당한 채 고통받는 이주민들의 모습이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습니다. 또 일본 속 중국인들 이야기라지만 남의 문제만도 아닌 듯 싶지요. 제도의 미비와 인식적 차별 속에서 한국 사회는 이미 떠안고 있는 문제를 그저 없는 듯 취급하고 그안에서 사회의 갈등과 고름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몇일 전 청소년과 이주노동자의 우정을 다룬 영화 '반두비'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했단 이유로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고 아직도 우리의 갈 길은 멉니다.

이 영화의 마케팅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보단 사실 성룡이 정극에 출연했다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네, 성룡이 나오는 영화고 액션씬의 비중이 적지 않지만 이전의 코믹한 모습은 거의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극 연기가 처음도 아니고 사실 그동안 성룡이 코미디 영화에만 출연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서 보여주는 모습도 그렇게 새로운 것만은 아니에요. 여전히 영화가 성룡을 어떤 영웅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도 시종일관 진지하기만한 성룡이 낯선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영화는 일본에 밀입국한 중국인들이 어떻게 생존 경쟁과 본토민들의 멸시에서 살아남고 융성했으며 다시 몰락했는지 그 과정을 '철두'(성룡)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줍니다. 감독 이동승은 마약을 소재로 했던 영화 '문도'에서처럼 리얼리즘을 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인물들은 선과 악으로 양분되지 않고 민족주의적이면서 동시에 이익을 위해 동포인 서로를 배반하는 모순을 떠안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철두는 불법 이주 노동자에서 살아남기 위해 야쿠자가 되는 인물로 선한 것같지만 생존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와 관련을 맺는 야쿠자나 중국인 동포들도 마찬가지로 개인의 이기심과 생존문제 속에서 갈등하죠.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루며 빠지기 쉬운 단순한 선악구도에서 탈피한 건 이 영화의 장점입니다. 개별적인 에피소드의 사실성도 높인 상태고요.

본토민인 일본인에 대한 묘사도 꼭 적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철두를 진심으로 돕는 것은 다름아닌 일본인 형사(다케나카 나오토)이니깐요. 야쿠자들같은 경우도 중국인들이 세력이 커지는 걸 두려워하지만 그들을 직접적으로 멸시하고 괴롭히지는 않죠. 오히려 극중에서 악한 인물은 대만쪽 갱들이나 같은 중국인들로 나옵니다. 결국은 국가나 종족의 문제이기보단 인간의 보편적인 탐욕이 비극을 낳는다는게 영화의 큰 주제입니다.

야연이후 국내에 처음 개봉한 오언조영화. 뽀글이 파마가 인상적-.-;


그런데 관객들은 그런 영화에 쉽게 몰입할 수가 없습니다. 영화가 상반된 두가지 효과를 동시에 관객에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영화는 주인공인 철두란 인물의 순수함과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초반부에는 철저한 감정 몰입을 요구하다가 보편적인 인간의 탐욕과 그로 인한 좌절을 그려내는 후반부에서는 소거효과를 통한 비판적 거리두기를 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면서 철두 캐릭터는 뒤로 갈수록 홍콩 느와르 속 비극적 영웅처럼 묘사되니 이건 도대체 관객에게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건지 모르겠습니다. 몰입과 비판을 한 번에 가지고 가기에 영화의 연출은 버거워 보이고 이야기와 캐릭터는 넘쳐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인공 철두 캐릭터 보다는 오히려 주조연인 오언조의 캐릭터 '아걸'이 훨씬 인상깊습니다. 순박한 이주 노동자 청년에서 마약상이 되어 파멸하기까지 비극적인 면모가 더 잘 드러나는 캐릭터고 영화의 주제에도 더 적합합니다.

오른쪽 여자는 황제의 딸에 금쇄로 나왔던 판빙빙임.


장백지가 출연했던 이전 작품 '왕각흑야'에서처럼 이동승 감독의 관심은 보편적으로 사회로 인해 파멸해가는 개별적인 인간성을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신주쿠 사건에서도 그런 주제의식이 드러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공간이 빨아들이는 인간의 탐욕과 그로인한 몰락에서 개인의 비극은 전체 사회의 비극으로 확장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주제를 위해 너무 많은 에피소드를 담았고 너무 많은 캐릭터들을 필요에 의해서만 소모해 편집에 있어서도, 러닝타임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불친절하게 느껴집니다. 빠르게 서사만 짚다보니 분위기가 종종 급격하게 전환되어 어처구니없는 실소가 터지기도 하고요. 같은 주제를 다룬 수작 '왕각흑야'에 비교하면 이번 작품은 여러 면에서 지나치게 과잉되어 있습니다. 이동승 감독 영화 중에선 오랜만에 개봉한 영화가 아닌가 싶은데 안타깝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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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CowboyBlues 2009/06/23 22:13 # 답글

    성룡의 코믹액션은 조금 줄어들었겠군요 -
  • jun Boy 2009/06/23 22:23 #

    많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래도 간간히 나옵니다. 고어한 장면도 몇개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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