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마이클 잭슨 미디어탐구

안녕, 마이클 잭슨

팝의 황제, 팝의 제왕. 수식어로도 감당할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집착에 가까운 완벽주의로 빚어낸 그 개인의 음악사는 팝의 현대사와도 일치한다. 보는 음악을 등장시킨 MTV 시대의 아이콘이 그였고  앨범 'Thriller'의 판매로 기네스에 오르며 동시대성을 입증했으며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s'로 대변되는 팝의 개혁점에 종종 과거세대로 비견되는게 마이클 잭슨의 앨범 'Dangerous'였다. 음악에서 무대 퍼포먼스까지 현대의 수많은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주었고 독창적으로 고안해낸 혀를 입천장에 튀기는 창법이나 로봇,문워크 춤 등은 잊을 수 없는 충격이자 즐거움으로 남았다. 기행마저 미스테리했다.

재키,티토,저메인 등과 결성한 잭슨5 시절은 그에게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아버지 조셉의 정신적, 물리적 학대가 그의 인생 전반에 영향력을 미쳤다. 93년에 진행된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아버지에 대한 공포 그리고 그것이 현재까지 그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처음으로 털어놓은 바 있다. 음악에 비해 자기 자신에게 서툴렀던 인생에서 잭슨 5는 재능이 폭발하게 된 은총인 동시에 저주에 가까웠다. 그에게 음악은 거대한 모순이었다.



68년에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을 맺으면서 잭슨 5란 그룹명을 부여받았고 마이클 잭슨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당시 유행하던 펑키한 느낌의 곡들은 히트에 히트를 거듭했다. 모타운을 배경으로 한 영화 '드림걸즈'의 중후반부, 무대 위에서 재능을 뽐내면서 춤추던 어린 흑인 꼬마가 생각나는가? 마이클 잭슨의 '은유'다. 롤링스톤즈지는 후에 마이클 잭슨에 대해 넘치는 음악적 재능을 가진 경이로움에 가까웠다며 그 시절을 회고한 바 있다.

그의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듀서 퀸시존스를 만난 것은 75년도의 일이었다. 모타운이 만든 뮤지컬 영화 위즈(오즈의 마법사)에서 두사람은 배우와 뮤지션으로 만났는데 잭슨의 솔로앨범을 작업해줄 프로듀서를 찾아달라는 요청에 퀸시존스가 자기 자신을 추천했다고 한다. 첫 솔로앨범 'off the wall'에는 두사람 뿐만 아니라 스티비 원더, 폴 매카트니가 곡을 썼고 'Don't Stop 'Til You Get Enough'같은 걸출한 히트곡이 나왔다. 특유의 가성과 창법으로 무장한 'Don't Stop...'은 동시대 디스코 음악 가운데서도 가장 생기발랄하고 그 리듬에서 느껴지는 강한 역동적인 충동 뿐만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즐거운 곡이었다. 그의 첫 앨범은 2천만장을 팔았다. 지금보다 음악시장이 더 어려웠다던 70년대의 일이다.


82년도에 내놓은 앨범 'Thriller'는 그를 팝의 아이콘으로 확장시켰다. 이 앨범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으로 급속도로 증가했던 판매량 때문에 공식적인 집계는 불분명하게 전해져 적게는 5천만장에서 최대 1억장 이상이 팔린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37주동안 1위를 차지했고 장당 인세료도 2달러로 업계에서 전무후무한 대접을 받았다. 어찌나 인기가 많았는지 전기작가인 랜디 타라볼레리는 그 시절 잭슨의 앨범의 인기는 다른 상품들의 판매고를 낮출만큼 기형적인 현상이었다고 전한다.

이런 상업적 성공은 이후의 음악산업에 방대한 영향력을 남겼다. 단순히 음악적 기준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산업 자체를 전환시킨 앨범이었다. 이 앨범 이후로 싱글의 발매가 활성화되고 동시에 앨범의 중요성도 부각되었다. 음반산업, 라디오, 비디오 세가지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되면서 뉴욕 타임즈가 세상에는 잭슨과 잭슨이 아닌 가수들이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독특한 베이스라인으로 유명한 'Billie Jean'은 전체적으로 사운드가 출중한 앨범 가운데서도 돋보였다. 비극적이고 우울한 곡조는 마이클 잭슨의 날아다니는 보컬 속에서 독특한 인상을 형성해냈다. 실제 자신의 스토커팬에 대한 경험에 나온 이 노래는 그 유명한 문워크를 등장시킨 노래기도 하다.



한편 80년대 중후반부터는 서서히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루피스와 백피증에 의한 피부의 변화도 80년대부터 꾸준히 시작된 증상이었다. 그러나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대부의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손잡고 3D 영화 '캡틴 이오'를 찍어 디즈니랜드에서 상영하기도 했고(수년간 상영되다 '우리 아이가 줄었어요'로 대체되었다) 라이오넬 리치 등과 함께 'We are the World' 프로젝트를 진행해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한편 87년에는 스튜디오 앨범 'bad'도 성공시켰다. 다섯 곡의 빌보드 차트 1위곡을 낸 bad는 전세계적으로 삼천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잭슨의 앨범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챠트에 1위로 데뷔한 앨범이기도 했다. 재즈와의 결합은 더 단단해졌고 그루브함과 멜로디가 독특하게 그러나 결속력있게 모여들었다. 그러나 평가는 상당히 엇갈렸다. 최악의 앨범과 사운드적으로 더 풍부해진 앨범이라는 주장이 대립했다. 타임지는 마이클 잭슨이 음악적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가수라며 그에 대한 비난여론을 경계했다.  Bad를 최악으로 만든 것은 다름아닌 미국 시민들의 설문조사였다. 



소니와 사상최대의 금액으로 재계약을 성사하면서 음악적으로 크게 성장한 앨범 'Dangerous'가 91년에 발매되었다. 동시대 뉴잭스윙 장르 앨범 가운데 가장 성공한 앨범으로서 지금까지 성공을 함께 해온 프로듀서 퀸시 존스가 빠졌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적 전환기로 평가된다. 퀸시 존스가 추천한 테디 릴리-뉴잭스윙의 왕이라고 불리는-와 빌 보트렐이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이 앨범은 내용면에서 마이클 잭슨의 대타적 자의식이 크게 부각된 느낌으로 Billie Jean 이후 최고의 히트 싱글인 'Black or White'가 이 앨범에서 나왔다. 최첨단 CG로 세계적인 놀라움을 불러온 뮤직비디오(맥컬린 컬킨이 카메오로 출연했다)에서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가사, 하드록과 힙합등 다양한 장르를 믹스한 신선함이 크게 어필했다. 기가 막힌 리듬을 타는 Jam을 비롯해 'Heal The World'와 프리윌리의 수록곡으로 쓰인 'Will You Be There'등 장르적 실험과 놀라운 완성도를 갖춘 명곡들이 이 앨범에서 쏟아져 나왔다. 뮤직 비디오에 대한 열정도 이 시기에 이르러 전성기에 도달했다고 보여진다. 수십억을 부어 사운드와 이미지를 결합시켰고 그것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는 명실공히 퍼포먼스의 왕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뮤직비디오도 그의 몫이었다. 동생 쟈넷 잭슨과 함께 찍은 'Scream'의 뮤직비디오는 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작품이다.


이후 지금까지의 음악을 집대성한 'History'에서 90년대와 2000년대에 이르러 그는 음악적인 면보다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플레슬리와의 결혼이나 아동성추행 혐의 등으로 가십에 자주 오르게 되었다. 93년도에는 13살 소년으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History에 수록된 유명한 알앤비 발라드인 'You Are Not Alone'은 알 켈리가 쓴 곡으로 대단한 히트를 기록했지만 후에는 두 가수에 대한 일종의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렸다. 알 켈리 역시 당시 미성년자와 사실혼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사생활에서의 무너짐은 음악적 자아도 약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지구를 걱정하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들으며 코웃음치기 시작했다. History는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대를 마무리짓는 앨범과 다를 바가 없었다. 표지의 석양처럼 쓸쓸히 저물었다.


그런 가운데 2001년에 오랜 작업 끝에 나온 앨범 'Invincible'은 상업적으로 이전 앨범에 비해 두드러진 실패를 보여주었다. 프로듀서 로드니 저킨스의 댄서블한 묵직한 비트는 기존의 마이클 잭슨의 이미지를 연상시켰지만 그 뿐이었다. 이전 앨범에서 뽐내던 창조력과 감흥은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스스로 제시한 팝의 높은 기준을 무너뜨리기에 그의 음악 행보는 불성실하게 여겨졌고 그 결과가 Invincible을 통해 드러났던 것이다.  마이클 잭슨은 점점 더 기행을 거듭하면서 그를 팝의 황제를 추앙했던 미국인들로부터 바닥까지 내팽겨쳐졌다. 몇년 전에는 최악의 미국인으로 마이클 잭슨이 선정되기도 했다.

84년도 모습.

네버랜드에 살고 싶어하던 영원한 아이, 그리고 팝의 황제. 극단을 오간 삶은 50세를 끝으로 멈추었다. 몇 달전 그의 경매 프로그램을 보면서 수많은 장난감들을 구경했다. 오락실에나 있을 법한 수많은 소형 놀이기구들과 애니메이션 원화들, 인형의 집 등등. 그는 정말로 아이로 남고 싶었던 걸까?  팝의 황제는 다음달 컴백을 앞두고 숨을 거두었다. 몇일 전까지도 리허설에 참가해 몸을 만들고 춤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를 죄의 화신으로 만들었던 수많은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고 피부암까지 발생한 최악의 상황에서 다시 일어서기 위한 몸부림이었지만 끝내 그 컴백을 한달도 남기지 않고 떠나버렸다. 허망한 결과만 남은 지금, 그가 정말로 전설이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구가 정말로 한 사람때문에 행복했던 적이 있었음을 증명함으로써, 우리의 추억을 상기시킴으로써. 안녕, 마이클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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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클잭슨 사망 소식들 정리 2009/06/26 16:10 #

    미국의 팝가수 마이클잭슨이 오늘 사망했다고 하네요. 조금 전에 소식을 접하고 반신 반의해서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사실 같군요. 80년대를 대표하는 마이클잭슨, 학창시절 일탈속에는 항상 그의 노래가 함께 한 기억이 납니다. 한때 성형과성추문 등에 휩싸여나의 우상으로서의 지위는 잃었지만, 젊은시절 그의 노래가 있었음에 즐거웠던 것은 사실이니 그의... more

  • R.I.P. MJ... 2009/06/26 18:28 #

    디즈니랜드(아니, 디즈니월드던가요?)에 가면 틀어주던 3D 영화 캡틴EO. 1986년 작품으로, 감독은 다름아닌 코폴라 영감님입니다. 총제작과 스토리는 조지 루카스. 스코어는 제임스 호너. 그리고 악의 여왕 역할은 안젤리카 휴스턴. 그야말로 80년대 킹오브팝의 위상을 보여주는 셈이죠. 지금도 디즈니 어트랙션으로 틀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정말로 MJ의 새로운 앨범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인빈서블은 재미없...... more

  • RIP, Michael... 2009/06/26 22:52 #

    안녕, 마이클 잭슨from jun Boy's blog안녕...부디 고통없는 곳에서....ㅜㅜ.....영원히 죽지 않고 나이먹지 않는,영원한 소년일 수 있는 곳에서 행복하게...... more

  • [인생은 아름다워]마이클 안녕~ 2009/06/27 04:43 #

    58년 개띠, 70년생 나와 띠동갑인 그가 세상을 등졌다. 중학교에 입학하던 그 시절, 그러니까 84년정도 되려나... 그의 2천3백원짜리 LP음반을 사던 기억을 잊지못한다. 전문가들 말대로 팝음악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고는 하지만, 내가 들었던 그의 음악은 판에박힌 그런 표현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그는 팝의 시작이었고 끝이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 그 시절만큼 음악을 찾아 듣지 못하는 아저씨가 되어버렸지만, 그의 ...... more

  • 네버랜드를 찾던 마이클, 그는 피터팬이고 싶었나? 2009/06/27 04:44 #

    네버랜드를 찾던 마이클, 그는 피터팬이고 싶었나? - 죠니뎁의 <네버랜드를 찾아서> 그리고 마이클 잭슨에 대하여 - 영원히 늙지 않고 소년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나라... 네버랜드 누구나 피터팬으로 살아가고 싶은 어린시절의 동화같은 꿈은 마음속 깊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해가 지날수록 그 꿈은 아마도 어린 시절 나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되살아나며 만들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들이 각자의 네버랜드를 만드는 것일게다... ...... more

  • 마이클 잭슨의 죽음이 우리 가족에게 허전한 이유 2009/06/27 11:20 #

    금요일 아침, 출근 준비를 위해 6시 뉴스를 틀어놓고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긴급 뉴스로 ‘마이클 잭슨이 사망했다’라는 앵커의 음성이 들려왔다. 자세한 것은 추후 알려주겠다고 한다. 일순간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아내와 말을 잃고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언가 울적하고 좋지 않은 기분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스캔들과 의혹에 휩싸여서 정신이 온전해 보이지 않는 그였지만, 마이클 잭슨은 연애 시절부터 ...... more

덧글

  • 양갱 2009/06/26 17:09 # 답글

    중학생때 이어폰을 끼고 마이클잭슨의 음악을 들으며 공부했었죠. 그때는 그가 너무 위대해 보여서
    나보다 10살 많다는건 생각도 못했고..영국에서의 콘서트가 잘되길 바랬는데.. 안타까워요.
    여러 스캔들이 있었지만 나의 청소년기를 풍요롭게 해주었던 팝의 황제로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많은 인물들이 떠나시네요. 더이상의 슬픈소식은 이제 그만....
  • ▶◀AlexMahone 2009/06/26 18:36 # 답글

    저 84년도의 짤방의 마이클이 가장 마이클 잭슨 답게 기억되네요...


    하아... 정말 아쉽기만 하네요..
  • 2009/06/26 18:51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오린간 2009/06/26 19:00 # 답글

    돌아가신건가요?
  • jun Boy 2009/06/26 20:27 #

    예.오늘 심장마비로...
  • Moonseer 2009/06/26 20:12 # 답글

    정말 전설이었는데 말이죠. 이렇게 또 별 하나가 지네요.
  • nadal 2009/06/26 21:20 # 답글

    그래도 어느듯 50세가 되었다니, 참 믿어지지 않네요. 늘 애같았는데...하늘에서 우리를 볼까요? 자신이 만든 곡들을 들을 수있을까요?
  • 콩두 2009/06/27 00:15 # 답글

    믿기지가 않습니다......사실인지 아닌지 몇번이나 확인해보고 그때마다 울었습니다.......ㅠㅠ 당신은 영원한 킹옵팝입니다 마이클.....아....왜 그렇게 빨리 가버린거예요...
  • 소니아♡ 2009/06/27 09:29 # 답글

    Black or White는 http://www.youtube.com/watch?v=YVoJ6OO6lR4
    풀버전을 보면 왜 아저씨가 시작부분에 떨어지는 지 알 수 있지요.

    그나저나 저도 기사에 나이 보고 깜짝 놀랐지요. 50세;;;
  • moon 2009/06/27 11:33 # 답글

    지금 dangerous 앨범을 듣고 있습니다. 몇 년만에 꺼낸 cd... 아들이 처음 듣는 음악인데도 1번 트랙부터 박자타고 다리를 구르며 춤을 추네요.

    이 시대 천재의 작별이 아쉽습니다.
  • 쭈영 2009/06/27 19:15 # 답글

    Rest in Peace, Michael!!!

    제가 있는 호주에서도 종일 마이클에 대한 뉴스만 나오고 있습니다.
    그의 공연을 라이브로 지켜 볼 기회가 사라진것이 너무 안타깝고,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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