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주식회사 Monsters, Inc. (2001)

픽사(PIXAR)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에도 감독이 있고 스크립터가 있지만 대개는 같은 멤버들의 합작입니다. 단지 누가 중심점이 되냐의 문제죠. 누가 그러더군요. 조직체계에서 나올 수있는 창의력의 극점이라고요. 그 말이 맞습니다. 픽사 영화들의 스토리 텔링은 크게 보면 지극히 안정적인 상업영화들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재기발랄하고 신선한 구석들이 모여있습니다. 한사람만의 주도로는 완성되기 힘든 그런 빈틈과 구석이 모여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는거지요. 그냥 보면 지나치기 쉽지만 사실 '몬스터 주식회사'도 상당히 마이너하고 하드한 농담들이 숨어서 연결되고 있다니깐요.
이런 제작방식은 월트 디즈니가 살아있을 때부터 만들어진 것입니다. 스웻 박스(Sweat Box)라고 불리는 시스템은 제작멤버들이 틈틈히 모여 땀을 뻘뻘 흘려가며(요즘엔 아니겠죠) 영화 장면마다 회의를 해서 이상한 부분은 고치고 괜찮은 아이디어를 넣는 과정인데, 더 나은 결과를 위해 구성원 개개인의 창의력을 빌려 한데로 모으는 거지요.

픽사 같은 경우 지향점이 분명한 편인데 이들 영화의 구실점은 명백히 스토리에 달려있습니다. 감독이 낸 큰 밑그림은 스토리 팀이 만든 6만여장의 스토리보드가 되고 회의를 통해 이 스토리보드의 아이디어는 추가되고 변형되며 재작업을 거치게 됩니다. 남는 것은 고작 2만장 뿐이지요. 토이스토리2같은 경우는 스토리보드 작업을 반쯤 하다가 다 뒤엎기도 했다지요.
이 과정 이후에 작품의 미술적 아이디어가 완성되고 나면 손으로 그린 간단한 애니메이션과 사운드 작업 등이 더해져 편집 부서에서 스토리 릴이란 것을 완성합니다. 여기까지가 픽사 영화들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인데 이야기적 형태가 완성되는데만 약 2년 이상이 걸리죠. 카메라 촬영 방식과 미쟝센(화면구성 연출) 등의 결정은 스토리 다음이고 거기서 3D 작업도 시작됩니다. 물론 여기서도 회의는 계속되고 아이디어는 서로 교환되며 더해집니다. 이러다보니 구성원 개인의 창의력이 중요시될 수 밖에 없습니다. 월트 디즈니 시절부터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이 업계 최고의 대우를 받은 것은 단순히 재정 상황이 좋아서 그랬던 것만은 아닙니다.

몬스터 주식회사도 그런 과정을 통해 정제된 질좋은 각본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캐릭터부터가 입체성과 유머 감각이 뛰어나요. 포악한 외모를 가지고 아이들의 비명을 이끌어내는 설리반(존 굿맨)은 사실 마음씨 좋고 회사 내에서 가장 젠틀한 괴물이지요. 마이크(빌리 크리스탈)는 빌리 크리스탈의 농담과 컴플렉스 가득한 캐릭터를 결합시킨 경우고요. 극적인 반전을 이끄는 로즈(밥 피터슨) 캐릭터의 유머도 좋습니다.
영화는 또 다른 현실을 가져오면서 시작됩니다. 명백히 캐릭터와 행동은 괴물이지만 이들의 일상은 미국인들의 그것과 동일하지요. 영화는 가짜 세계를 만든 후 그 안의 메카니즘만큼은 철저한 현실성을 추구합니다. 9시에 출근을 하고 5시에 퇴근을 하며 영업사원들은 매출에 목을 매고 저녁에는 바에 가서 술 한잔하는 등등. 허구의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사실적인 묘사, 즉 리얼리티의 강조가 이 영화에서도 반복됩니다. 생각해보면 토이스토리 시리즈, 벅스라이프에 이르기까지(이 작품이 픽사 스튜디오의 네번째 작품이에요.) 가짜 세계 속 리얼리티의 강조는 한결같은 픽사의 전략이고 판타지 영화의 주된 관심사지요.
트레일러. 간간히 공포영화식 연출을 빌려옵니다.
허구의 세계에 어느정도의 사실성을 도입할 것인지, 그 경계는 모호하지만 분명 관객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작품의 상상력에 자유롭게 뛰어들 수 있는 지점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픽사의 작품들은 그 거대한 사실성과 환상성의 모호한 경계 위에서 매우 안정된 상태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영화는 비현실적인 소재들로 범벅되어 있지만 그 결과로부터 우리가 느끼게 되는 감정은 지극히 현실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이 몬스터 주식회사는 미국의 일상적인 가족들의 붙박이장에 대한 공포, 민담 수준의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받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꼭 미국의 경우를 들지 않아도 누구나 이런 경험 있을 법 합니다. 살짝 덜 닫힌 문에서 무언가 나올 것같은 공포말이죠. 한국 샤머니즘에도 집안의 빈틈에서 조상신이 자는 사람을 바라본다는 좀 무서운 이야기도 있다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도 영화 속에서는 이 괴물들의 세계는 인간의 비명으로부터 에너지를 모아 전력공급에 사용하고 있고 몬스터 주식회사는 새벽마다 아이들을 놀래켜 비명을 끌어모으는 에너지 회사입니다. 주인공 설리반은 실적이 가장 좋은 영업왕이고요. 그런데 인간들이 괴물을 두려워하는 만큼 괴물들도 같은 수준의 공포심을 인간들에게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인간세계에서 건너온 여자아이 '부' 때문에 이 괴물 세계의 모든 일이 엉망이 되기 시작합니다. 설리반과 마이크는 무언가 음모를 꾸미는 다른 직원들 모르게 부를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게 되지요. 이야기는 한치의 빈틈도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됩니다. 태생적으로 이질적인 두 세계의 주인공을 연결짓기 때문에 다소 슬픈 결말을 떠안고가는 이야기지만(이티처럼) 진행 톤이 매우 밝고 경쾌해서 관객들은 그런 결말을 예측해내기 힘듭니다. 그래서 후반의 감동이 더하게 되지요. 휴먼 드라마지만 액션씬의 스펙터클도 의외로 잘 구현되어 있는데 후반부의 롤러코스터 액션의 연출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 피트 닥터가 언젠가 '업'-2009년 개봉-같은 영화를 만들거라고 예상했지요.
괴물이 현실이 되고 그들에게 연민과 일상의 흔적을 발견하며 공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마지막 부서진 문의 퍼즐이 완성될 때 느껴지는 아련함. 몬스터 주식회사는 관객들이 호흡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 내놓은 또 하나의 명작입니다. 그들이 항상 내놓는 이야기의 코드가 반복적으로 활용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좋은 작품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뒷맛이 여전히 부드럽게 감겨옵니다.
+2가 제작되고 있어요.




덧글
잠본이 2009/07/03 20:28 # 답글
헉 여운이 남는 결말이 좋았는데 속편이 나오다니 좀 불안...OTL
jun Boy 2009/07/03 20:34 #
그러게요. 그 좋은 결말을 만들고서 아쉬워서 속편까지... 흥행은 잘되겠지만 1편만은 못할듯 ㅋㅋ
닭살튀김 2009/07/14 09:40 # 답글
3D 작업에서는, 설리의 털이 실감나게 묘사되었다는게 가장 주목할 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