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왜 걸작일까. 지브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몇 년전에 사망한 로버트 알트만 감독은 생전에 관객들이 자기 영화를 한번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불평한 적이 있다. 사실 어떤 영화던지 한번 보고 그 포인트를 잡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의 감독들은 자기 작품에 대한 관객의 당혹감을 즐긴다. 특히 쇼트 하나마다 정성을 다해 의도를 부여하는 스탠리 큐브릭같은 감독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는 관객의 지적인 능력을 믿으면서도 자신의 예술성을 폭넓게 과시했다. 그 깊은 예술성은 한번 보고 알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영화를 여러 번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영화가 품고 있는 어떤 정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얼핏 대충봐도 평작은 아니다. 그것은 이 영화를 본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모두가 이 영화에 매료되고 그 독특한 환상을 품에 안은 채 영화 밖으로 빠져나온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오즈의 마법사'에서 모티브를 받은 듯한 이 영화는 순간적으로 관객을 앨리스나 도로시처럼 만든다. 영화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는순간 우리는 영화 속 신들의 세계로 빠져든다.


영문판 트레일러

왜 이 영화가 걸작으로 인정받을까. 그것은 단순히 이 작품이 거장의 매끄럽고 농익은 손맛에서 빚어나온 작품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은 보편적이고 원형적인 정서를 건드린다. 그것은 순전히 아이들의, 작품의 주인공인 열살짜리 아이의 세계 속에서 구상된다. 아이들은 어떤 대상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아도 그것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인다. 영화 속에서 우연히 긴 터널을 지나 신들이 머무는 온천장에 도착한 치히로(루미 히라기)에게도 그곳은 전적으로 낯선 곳이다. 그러나 거기서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 환상은 익숙한 것이다. 현실처럼 그곳에도 즐거움만큼 슬픔도 있고 만남과 이별이 있다. 불안하고 두렵기는 하지만 목표(신의 음식을 먹고 돼지가 되어버린 엄마,아빠를 구출하는 일)를 위해서는 참을 줄 알아야하고 혼자인 것같지만 어디나 진심인 친구들의 도움은 있다.

아이들은 집 밖의 세계와 부모 이외의 다른 존재에게 공포를 느낀다. 그들이 부모 이외에 친밀함을 느끼는 것은 순종적인 애완동물이다. 이 작품이 끊임없이 치히로와 각종 동물들을 붙여놓는 것은 아이들이 애완동물과 가지게되는 친밀한 관계성을 반영한다. 매혹적이고도 두려움 가득한 세상에서 그런 친구들은 필수적인 존재다. 그들의 도움으로,또 그들을 위해서 치히로는 터널을 건너오기 전에는 도달할 수 없었던 지점에 도착한다. 그것은 성장이다.

영화는 성장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주디 갈란드가 출연했던 MGM사의 걸작 '오즈의 마법사'를 연상시킨다. 오즈의 마법사가 그렇듯 해결의 열쇠일 것같던, 온전해보이던 어른들은 사실 불완전하거나 약한 존재다. 가장 나이가 많은 온천장 주인 유바바(나츠키 마리)는 탐욕스러운 자본가를 상징하고-온천장은 19세기의 열악했던 노동환경을 직접적으로 묘사한다- 엄마아빠는 아이를 도울 수 없는 무력한 존재인 돼지가 된다. 도움을 주는 것은 또래의 모습과 동물의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하쿠(이리노 미유)와 영화 속에서 프롤레타리아쯤되는 가마 할아범(스가와라 분타), 전원생활을 하며 소박하게 사는 노인 제니바(나츠키 마리)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여전히 진실과 희망은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있다고 단언한다. 화려한 마법의 환상이 없는 곳, 인간의 끈끈한 정이 살아있는 곳에 가서야 비로소 치히로는 희망과 진실된 용기를 발견한다.


단지 이 작품이 오즈와 마법사와 다른 것은 도로시의 꿈으로 종결되는 오즈의 마법사와 달리 엄연한 성장의 증거로서 환상과 현실을 연계짓는 지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오즈의 마법사에도 루비슬리퍼가 있긴하다) 마지막 씬에서 터널을 지나 차로 돌아가는 치히로의 보랏빛 머리핀이 반짝 빛난다. 그것은 제니바에게 성장의 증표로 받은 것이다. 성장은 어린 시절을 잃는게 아니라 그 기억을 안은 채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전 작품보다 더 강하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린 듯하다. 일본의 전통성을 살려 갖가지 민담,전설 등에서 빌려온 캐릭터를 포스트모던하게 인용하여 독창적인 세계를 창출해냈다. 이 작품이 베를린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것은 그런 미학적 주관성이 높게 평가받았을 공산이 크다.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해 관객이 가지는 경외심의 본질은 미학적인 뛰어남 이상으로 영화가 구현하는 그 근원적 정서에 있다. 아마도 이 영화가 진가를 인정받게 되는 것도 이 영화를 보고 자란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 이 영화를 다시 추억하는 그 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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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규토픽 등록 2009/07/08 1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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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루퍼드머독 2009/08/04 09:41 # 삭제 답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다시금 생각나게 만드는 작품이네요.
  • c2o2k2 2009/09/01 17:24 #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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