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 걸작 애니메이션 밤비 1화 디즈니 리뷰

밤비 Bambi (1942)

1화 성공, 그 다음


1937년에 개봉한 백설공주는 디즈니와 그의 애니메이터들에게 최고의 해방감을 안겨 주었다. 영화 자체에 대한 극찬도 여러 해에 걸친 걸친 고생을 말끔하게 덜어주었지만 무엇보다도 디즈니 프로덕션의 인물들이 예술가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그들의 작업 방식 역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던 터였다.

당시 사회의 이데올로기적인 분위기에서도 월트 디즈니는 예술가로서 진지한, 또 혁신적인 인물로 대접받았다. 대개 그를 칭찬한 것은 좌파 언론이었는데 그들 대다수가 월트 디즈니가 시도하는 새로운 장편 애니메이션 작업, 집단적인 협력을 통해 영화를 만드는 과정 두 가지에 대단한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사실 스튜디오 내에서 애니메이터들의 재능은 월트가 머릿속에 구상한 이미지들을 구현하는데 다 소모되었다. 월트 디즈니는 날마다 전날 완성된 러프 컷(촬영과 현상을 거친 필름을 이야기의 순서에 따라 대충 연결한 가편집본)을 뜯어고치며 시간을 보냈다. 영화 '백설공주'는 난장이들이 집에 와있는 백설공주를 귀신으로 착각하는 씬 하나를 가지고 9개월이 넘는 회의를 할 정도로 악착같은 디테일의 승리였다. 그러고도 아쉬워서 월트는 훗날 백설공주를 다시 만든다면 정말 잘 만들 수 있겠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백설공주 개봉당시 영화를 보기위해 몰려든 사람들


그가 아쉬움을 토로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영화는 막대한 성공을 거두는데 성공했다.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에 버금가는 영화사적 승리라고 호평이 자자했다. 영화 제작을 위한 백오십만불을 빌리기 위해 온갖 고초를 다 겪은 월트의 형 로이 디즈니도 신이 났다. 이미 그들은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개봉시키기 위해 그들의 캐릭터와 재산을 다 저당잡힌 상태였다. 당시 영화는 미국 영화의 모든 흥행을 갈아치웠다. 650만불을 벌어들였는데 이전 최고 흥행기록을 가지고 있던 영화가 2백만불의 수익을 거둬들인 상태였으니 실로 놀라운 성적이었다. 당시는 대공황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혼란기였다.

그러나 '백설공주' 이후로 월트 디즈니의 본격적인 수난기가 시작되었다. 무엇보다도 일을 크게 벌리는 그의 습관적인 일중독에서 비롯된 수난이었다. 이미 '백설공주'의 후속 작품들의 라인업을 짜여진 상태였고 '환타지아', '밤비','피노키오' 등이 동시 작업에 들어갔으며 '피터팬'과 '앨리스'가 작업 목록에 오른 상태였다. '곰돌이 푸'(winnie the pooh)의 판권도 이 시기에 구입했다. 밤비는 그 중에서도 스토리 작업이 이미 백설공주 제작 당시 시작된 작품이었다.

월트는 '백설공주'의 후속작품으로 '밤비'를 내정했고 '백설공주'의 개봉 1년 뒤에 정확히 개봉할 것이란 사실도 분명히 했다. 몇 년이 걸린 '백설공주'와는 작업 방식도 작품 자체도 달라야 했던 것이고 궁극적으로 6개월마다 장편 영화 한 작품을 만들어내는게 그의 꿈이었다. 그런데 작업은 그렇게 수월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원래 '밤비'는 MGM사의 감독이자 프로듀서였던 시드니 프랭클린이 실사 영화로 제작하기 위해 소설 판권을 구입해 놓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당시 기술력으로 밤비 특유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겠다고 여긴 그는 디즈니 프로덕션에게 판권을 넘긴다. 단순히 판권을 매매한 것에만 그친 게 아니고 시드니 프랭클린은 월트와 스토리 회의에 참여했고 거기서 드라마틱한 감성을 뽐냈다. 갑자기 작품에 대한 자극과 영감이 피어오르자 수월하게 진행될 것같던 스토리 작업이 막히기 시작했다. 자신이 생각해낸 예민하고 감성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기에 1년이란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밤비의 작업은 잠정적으로 미뤄질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백설공주'의 차기 작품으로는 '피노키오'가 대신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후대에 재평가받은 피노키오


'피노키오'는 디즈니 프로덕션에게 꽤 자신있는 작품이었다. 각색작업도 빠르게 마칠 수 있었고 월트는 백설공주 때처럼 프레임 하나를 잡고있기보다는 어느 정도 틀이 잡혔다 싶으면 완성된 씬들을 빠르게 통과시켰다. 많은 씬이 급조되고 또 많이 버려졌다. 무엇보다도 하나의 작품에 진득하게 매달릴 시간이 없었다. 다른 작품들도 신경써서 만들어야 했고 스튜디오가 이사하는 일에도 하나 하나 관여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무렵 월트 디즈니의 마음을 빼앗은 가장 큰 작품은 사실 '피노키오'도, '밤비'도 아닌 '환타지아'였으므로.

사실상 그는 '환타지아'에 자신의 모든 야심과 꿈을 걸었다. 환타지아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마법사의 제자'는 그 당시 '도널드 덕'의 인기에 밀려 잊혀져 가는 월트 디즈니의 상징 '미키 마우스'의 컴백작이기도 했다. 월트 디즈니는 마법사의 제자를 통해 제 얘기를 하고 싶었다. 이 영화에서 미키는 엄청난 마법의 힘을 얻지만 결국 그 힘에 지배당하며 온갖 고초를 겪는다. 당시 월트는 자신이 만든 프로덕션과 영화들이 자신이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커져 자신마저 지배해오던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영화는 '피노키오'에 이어 디즈니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다층 사운드 장치를 달았던 극장에서만 소규모로 바로 개봉되었다. 배급사인 RKO에게 월트는 영화가 지금은 수익을 내지 못할테지만 앞으로 수십년이 지나면서 눈부신 성과를 거둘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당시 배급사는 짜증을 냈고 흥행에서는 실패했으며 영화에 음악 '봄의 제전'을 제공한 스트라빈스키는 심지어 '저능하다며' 영화의 완성도를 욕했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의 호언장담은 그가 죽고 나서 사실이 되었다.

걸작 판타지아. 그러나 클래식계에서는 재앙이라는 평이 우세했다는.


한편 온갖 우여곡절끝에 '환타지아'에 앞서 개봉한 '피노키오'는 미국 흥행에서는 괜찮은 성과를 냈지만 해외수익을 거두지 못하면서 디즈니사에 적자를 가져다 주었다. 혁신적인 시도를 위해 '백설공주'때만큼이나 판을 너무 크게 벌린 탓이었다. 이 무렵에 월트는 몹시 침울해있었다. 자기 인생에서 가장 잘 만든 작품이라 자부한 '피노키오'가 당시 혹독한 혹평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백설공주'는 대공황의 충격과 공포에서 사람들을 구원해준 작품이었지만 '피노키오'는 전쟁 중에 자기만의 예술성에 집착한 작가의 개인적 작품이란 인상이 강했던 터였다. 예술성은 깊어졌지만 사회와 정치를 외면하기에는 그럴만한 시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개인적인 불행도 닥쳤다. 영화가 개봉하기 일년 전 월트가 어머니에게 선물한 집에서 난방시설의 가스가 유출해(공교롭게도 기록에 따르면 월트는 난방시설이 마음에 들어 그 집을 구매했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환타지아'가 마무리되던 무렵 월트는 다시 '밤비'의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쉽게 제작되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여전했다. 사슴 하나를 그리는데만해도 수개월이 소모될 정도로 작업이 느렸기 때문이었고 작품의 독특한 사실주의 형식과 시각적인 특별함을 위한 고민이 시간을 자꾸만 늦추게 했다. 월트는 '밤비'를 떠맡을 팀을 꾸리고 그들을 닥달하지 않은 채 콘티만 점검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사실 이 영화에 그렇게 많은 관여를 하지는 않았다. 영화의 대본을 쓰고 총책임을 맡았던 퍼스 피어스가 월트에게 좀 작업상태를 봐달라고 요청할 정도였으니까. 월트는 전쟁과 영화 예산 편성으로 인해 부족해진 재정을 채우기 위해 상당히 빠른 시간에 만들 수 있었던 환타지아의 차기작 '덤보'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이 당시 미국을 휩쓸던 파업열풍에 동참한다. 월트 디즈니 인생에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계속>




두번째 에피소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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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우사미 2009/08/25 20:48 # 답글

    밤비는 디즈니 영화 중에 제일 귀여운 영화라고 생각했었는데, 제일 무서운 영화를 묻는 조사에서 상위권에 꼽힌 적도 있더라구요 :) 어린 밤비가 가족을 잃는 부분이 어린아이들에게 근본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킨다나 뭐라나...
  • jun Boy 2009/08/25 20:54 #

    밤비 엄마가 죽는 씬을 직접적으로 안보여주고 우회적으로 표현하느라 애를 먹었다는데 오히려 그게 상상력을 자극한 것 같더군요. 표현 방식만 놓고보면 길이 남을 명장면이지요.
  • kisnelis 2009/09/02 12:09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다음 글이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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