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 걸작 애니메이션 밤비 3화 디즈니 리뷰

밤비 Bambi (1942)


3화 밤비의 개봉

백설공주 이전에도 월트는 자기 인생에서 기록할 만한 성공을 몇 번 남길 수 있었다. 하나는 미키 마우스의 성공적인 데뷔작(실제로는 세번째 영화였던) '증기선 윌리', 그리고 단편 영화이고 큰 성공을 거둔 '아기돼지 삼형제'가 그 주인공이었다. 대개 영화를 마치고도 작품에 만족하질 못해 안절부절해하고 우울해하던 그였지만 아기돼지 삼형제는 작품으로 보나 상업적인 성과로 보나 흡족할 만한 작품이었다. 최초의 퍼스낼러티 애니메이션(행동과 목소리의 발달을 통해 각각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작품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아기돼지 삼형제는 이후의 애니메이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일련의 성공 뒤에 더 획기적인 변신이 필요했고 장편 영화의 제작은 그런 개인적인 요구와 도전으로 인해 시작된 일이었다. 사실 가장 먼저 검토된 작품은 51년에나 개봉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고 '밤비' 역시 월트의 마음에 드는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실제로 제작에 들어가게 된 것은 '백설공주'였다. '밤비'는 '백설공주'의 제작과 더불어 스토리 작업에 들어갔지만 점차 스튜디오의 작품성에 대한 기준점이 올라가고 재정적 위기가 닥치면서 차일피일 개봉시기가 연기되었다. 디즈니 스튜디오의 작업은 백설공주 직후만 하더라도 무척이나 빡빡했고 까다로웠으며 모든 것이 매우 촉박하게 이루어졌다. 환타지아는 심지어 시사회 몇 시간 전에 완성해 간신히 극장에 필름을 배달할 수 있었다.

피노키오,덤보,환타지아의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그 가운데에는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섞은 머뭇거리는 용이라는 영화도 한편 제작했다) 밤비는 2년 이상을 스토리 작업에만 보냈다. 전담 제작팀은 월트와 만나는 일도 거의 없어서 그가 필름을 점검하기 위해 나타날 때면 애니메이터들이 "숲에 인간이 나타났다!"며 농담삼아 소리지르기도 했다. 밤비에서 숲에 사냥꾼이 나타날 때 이 대사가 나온다.

그러나 월트는 피노키오의 상업적 실패로 인해 밤비의 완성도에 더 예민해져 있었다. 그는 밤비가 뛰어노는 공간과 그 속의 캐릭터들의 묘사방식을 결정하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이 작품은 그간의 디즈니 영화들과는 달리 서사가 강조되지 않은 작품이었다. 계절의 미묘한 변화와 공간의 아름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물에 대해 단순하고 평범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 절실하게 리얼리즘이 필요했다. 어쩌면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월트는 다시 밤비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한 뒤로 밤비의 씬을 분석하는데만  주로 시간을 보냈다.


42년도 트레일러

월트 디즈니는 이 영화에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영화에서 동물의 적은 인간이고 그 위협은 직접적으로 와닿으나 방식에 있어서는 간접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몹시 까다로운 주문이었다. 밤비는 분명 디즈니 작품들의 연장선상에 있기는 했다. 주인공은 자신만의 파라다이스를 빼앗기고 스스로의 용기를 통해 성장해 다시 파라다이스를 되찾는다, 이것이 현재도 이어지는 디즈니 영화의 뼈대이고 밤비 역시 이런 스타일로 진행되는 영화이다. 그런데 밤비는 그중에서도 역경의 정도가 컸다. 동물들은 인간의 총에 쓰러졌고 파라다이스인 숲은 완전히 불에 타며(아이러니하게 영화에서 가장 환상적인 장면이다) 중요한 캐릭터인 밤비의 엄마가 죽는 씬이 예정되어 있었다. 월트는 밤비의 엄마가 죽는 장면의 처리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까지 디즈니 영화는 죄없는 선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관객들은 월트의 바람에 따라 직접적으로 밤비의 엄마가 죽는 장면을 볼 수 없었다. 스튜디오는 우회적인, 시적인 장면을 생각해냈다. 밤비는 눈보라 속에서 엄마를 찾아 헤매지만 엄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신 적이거나 혹은 아빠같은 존재인 수사슴이 등장해 엄마의 죽음을 암시한다, 두 사슴의 실루엣은 희미하게 얼룩진다, 그뿐이었다. 탁월한 시적 감각으로 묘사된 아름다운 씬이었다.


그러나 이런 묘사에도 반향은 거셌다. 전쟁통에 개봉하면서 울적했던 미국인들은 영화의 우울함에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의 뛰어난 리얼리즘과 이야기적 불분명함, 비극적인 정서는 전쟁의 기운과 월트 개인의 불안한 정서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이었고, 디즈니 스튜디오를 제외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심지어 월트의 어린 딸마저 월트에게 밤비의 엄마가 꼭 죽었어야 하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러나 월트의 대답은 분명했다. 인생은 빛과 어둠으로 이루어져 있고, 인생에 어둠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달콤할지언정 허황되고 가장된 것이라고. 이상주의자이며 폭군인 아버지를 피해 늘 행복한 세상을 가상으로 만들어냈던 월트는 인생의 중반부를 지나며 중부 출신의 현실주의자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품의 스타일에 있어서 영화는 훗날 월트의 작품을 평가하는 획기적인 전환을 마련하기도 했다. 단지 이 영화는 사실에 근접한 화풍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월트가 리얼리즘을 밀어붙였지만 그렇게만 진행되니 무척 단조로워보였던 게 분명한 사실. 여전히 애니메이션에는 마법같은 환상이 필요했고 문제는 그 환상이 줄거리가 아닌 형식과 그림의 문제로 가야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캐릭터들은 본래 의도대로 사실주의적 색체를 부여받되 그들의 성격이 드러나는 캐리커쳐 작업을 약간씩 거쳤다. 완성된 캐릭터와 배경의 조합은 경이롭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절묘했다. 40년에 있었던 중간 시사에서 월트는 그의 인생에서 드물게 애니메이터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너무나 훌륭하다." 바로 이것이 밤비라는 영화를 규정하는 월트 자신의, 그리고 먼 훗날 관객들의 한마디가 되었다. 당시 스튜디오가 겪었던 현실적인 실패는 고전의 위엄 앞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이야기는 피터팬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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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닭살튀김 2009/09/07 14:42 # 답글

    외국 사이트 설문에서는 무섭고도 슬픈 영화로 단연 손꼽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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