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1Q84

그 세계에는 현실과 허구가 어지럽게 뒤섞인다. 낯선 제목은 Q가 일본어 숫자 9(큐)와 동음이라는데서 착안했다고 한다. 또 여기서 밝히진 않지만 책을 읽으면서 찾게되는 또 다른 의미도 있다. 다시 말해 제목은 1984의 동음 이의어인 셈이다. 이의어라는데는 분명한 근거가 있다. 1Q84는 정확한 시간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작가가 창조해낸 또 다른 세계까지 소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 작가의 신작이지만 일본에서 특별한 마케팅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루키라는 선입관 없이 읽고 싶다는 독자들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여기에 한국의 독자들은 더 남다른 기분이 들 것이다. 90년대 한국 문학은 대안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취했고 그 영향을 이어받았든 혹은 거부하고 다르게 나섰든 그를 무시하기에는 뭔가 가렵고 찝찝한 시간을 보낸 바 있다. 그의 명성만큼 반감도 드높지 않았나 싶다. 최근 30년간 과대평가된 문인으로 하루키가 당당히 그 꼭대기에 걸터 앉았으니까. 그렇지만 여전히 한국 문학의 90년대는 하루키로 대표되는 것은 아니어도 최소한 그의 흔적을 강하게 남기고 있다. 그를 거부하든 수용하든 어쨌거나 누구나 지나가는 그 길목에서 한번쯤 눈길을 주게 되고 그길로 빠져들고 싶게 만들었던 일종의 매력적인 표지판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우리는 정말로 하루키의 책을 읽었을까, 하루키 자체를 읽었을까.
5년만에 발표된 작품에는 그의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젊음의 상징일 것같던 그도 벌써 60대다. 전작 해변의 카프카만큼이나 기운세고 강력한 주제의식, 잘 융합된 신화적인 모티프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소설가적 야망과 지신의 인생이 들어있다. 무엇보다도 지난 작품들보다 초반부 이야기의 힘이 강력하다. 재밌게 잘 쓴 소설이다. 수식이 많지 않고 호흡이 짧게 여러번 가는 간결한 문체와 공간을 구성해 거기에 독자를 눕히는 능력 그리고 흥미로운 소재와 이 소재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예전 작품 언더그라운드처럼 95년 오움진리교 사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새 작품은 사이비 종교를 둘러싼 미스테리한 사건을 놓고 그 은폐된 진실을 조금씩 벗겨가며 퍼즐이 맞춰나가는듯한 짜릿함을 선사한다. 추리소설을 읽는 듯 서스펜스를 통제하는 능력이 발군이다.

그러나 작품은 답을 정하고 그길을 향해 명확하게 걸어가는, 그러니까 우리가 추리소설에서 기대할 법한 이성적이고 앞 뒤가 딱딱맞는 논리적인 태도로만 써내려간 작품은 아니다. 흥미로운 이야기 안에는 난해하고 형이상학적인 작가의 질문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왜 지금 여기에 있는지, 인생을 구원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은 도그마일까 사랑일까.
거대한 서사의 흐름은 현실을 넘어 환상성과 결탁하면서 어지럽게 혼재되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미스테리와 난해한 개념은 무분별하게 흘러가면서도 해결되지 않는다. 작품을 흔드는 몇가지 개념도 몹시 불분명하다. 분명 거기에는 짜증섞인 불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불분명한 태도는 오히려 묘한 설득력을 지닌다. 무거운 시대를 어지럽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는 명확하고 날카로운 선긋기보다는 흐리멍텅하고 모호한 것이 차라리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최소한 거기에는 현실과 그 현실을 어루만지는 진심이 있다.
그런 가운데 작가가 말하고 싶은 단 하나의 주제는 제자리를 지키다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챕터를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점차 호흡을 맞춰가며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사랑의 힘을 설파한다. 사랑이 아니라면 모든 것은 싸구려 연극에 지나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정말 그 말처럼 다른 모든 가변적이고 혼란스러운 것들 가운데 우리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존재의 이유를 성찰한다. 정말로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다행인 일도 없을 것이다. 늘상 삶을 대하는 태도가 능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있다고 전후戰後 세대 작가들에게 비판받아온 하루키의 문학론은 여기서 전복한다. 사랑을 갈구하는 두 주인공의 바람과 그런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모종의 희망적 의지는 종결되지 않은채 작품에 그대로 남아서 고른 숨을 내쉬기 때문이다. 거기서 1Q84의 세계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마침내 위기에 직면한 그 세계를 구원한다.




덧글
재밍 2009/09/12 00:57 # 삭제 답글
평을 정말 잘쓰시네요.마치 소설처럼 빠져들어 읽었네요~
제목도 독특하고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sardine 2009/09/12 15:03 # 답글
독자들의 요청으로 특별한 마케팅이 없었다기 보다는, 하루키와 출판사의 필요에 의해 마케팅(으로서의 노출)이 없었답니다. 해변의 카프카의 경우, 잡지 등의 매체 리뷰를 통해서 내용이 미리 알려진 것이 판매에 굉장히 영향을 미쳤다는 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일체 내용이 사전공개되는 것을 막는 '마케팅'을 한 것이지요.
jun Boy 2009/09/12 17:24 #
이번 책은 내용에 대한 어떠한 정보없이 읽는게 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