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랜드와 미국의 신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욕구는 누구나 가지기 마련이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결코 충족되지 못한다. 그런 욕구조차 현실의 품 안에서 발생하고 작동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욕구는 억압된 현실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싶은 더 크고 새로운 욕망으로 환원된다. 문제는 자신이 현실에 대해 가지는 영향력이다.
월트 디즈니는 40년대에 이미 자신의 스튜디오와 애니메이션의 통제권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가 집착했던 모형기차와 미니어처는 일종의 도피처였다. 거기서는 다시 자신이 모든 것을 지휘할 수 있었고 아직 그럴만한 열정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40년대 말에 월트는 '디즈니랜디아'라는 전시를 준비한다. 자신이 어린 시절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냈던 미주리주의 마셀린을 거대한 미니어처로 만들어 전국 방방곳곳을 다니며 전시를 할 계획이었다. 도전은 거기에도 있었다. 월트는 그 안에서 인형들이 움직이게 만들고 싶었다. 유럽에서 태엽으로 움직이던 인형을 보고 구입까지 했던 월트는 자신의 미니어처 전시에도 그런 움직이는 인형을 두고 싶었던 것이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51년도에 배우 버디 엡슨이 탭댄스를 추는 것을 프레임 단위로 쪼개 분석하면서 움직이는 인형을 만들기 위한 첫 시도가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아무도 이런 영역에 관심이 없었고 다분히 개인의 취미로 시작된 작업이었다. 아무튼 월트는 특유의 집요함과 조각가 크리스토도로의 도움으로 마침내 제손으로 캠 시스템(회전 운동을 왕복 운동으로 바꾸는 기구)을 활용한 춤추는 인형을 만들었다. 디즈니랜드를 비롯해 영화에도 자주 쓰이는 애니매트로닉스가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52년 로스엔젤레스에서 공개된 거대한 마셀린 미니어처 세트에는 음악이 울려퍼지면서 화롯가 앞 흔들의자에 앉은 노인이 한적함을 즐기고 있었고 목사는 설교에 열중했으며 대장장이가 제 일을 부지런하게 반복하고 있었다. 사실상 디즈니랜드의 개념이 여기서 시작되었고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렇다면 스튜디오의 지배권 밖에 걸쳐앉은 월트가 어떻게 디즈니랜드를 지을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스튜디오 밖에서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월트 디즈니는 이미 그 이름값이 어마어마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던 터였다. 그 무게감은 즉각 돈으로 환산되었고 월트라는 이름은 수많은 상품과 결탁되어 많은 수익을 내고 있었다. 디즈니사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한 월트의 형 로이 디즈니는 회사가 설립되기 이전부터 자금문제에 관해서 전담해오고 있었다. 형제는 최고의 파트너이기도 했지만 서로에게 으르렁거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늘 영화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월트와 돈을 구해와야하는 로이 사이는 팽팽한 긴장감같은 것이 서려있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월트를 이해해주는 것도 형의 몫이었다. 그는 크리에이터가 아니었고 월트가 짓겠다던 놀이공원에 대해서도 그렇게 우호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동생이 그 일을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는 방법 정도는 마련해줄 수 있었다. 그는 스튜디오와는 완전히 분리된, 월트의 저작권 관리를 위해 월트와 가족들이 소유할 수 있는 작은 회사를 하나 더 만들자고 동생에게 제의했다. 현재까지도 남아있는Walter Elias Disney(줄여서 WED로 불리었고 후에 WDI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이렇게 탄생했다.
WED는 사실상 지출없이 월트라는 이름만으로 돈을 버는 회사였다. 월트 디즈니의 이름을 사용하는 작품의 수익을 일정 부분 할당받고 실사영화의 권리와 주식, 로열티 등 디즈니의 저작권 수익이 본격화되었다. 아마도 디즈니의 저작권 개념은 이 회사 설립 전후 판이하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WED의 창립은 어떤 수익을 내기보다는 월트가 스튜디오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만의 공간을 얻게 해주려는 배려와 같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실제로 버뱅크 스튜디오 내 작은 목조 건물에 들어서서 월트는 놀이공원을 지을 실질적인 토대를 WED를 통해 마련했다. 직원들도 모두 스튜디오 인물들을 몇명 소규모로 데려와서 일단 앉혔 놓았다. 당시 디즈니랜드-사실 이때 확실하게 정해진 공원의 이름은 없었고 '미키 마우스 빌리지'가 프로젝트의 명칭이었다-의 개념과 계획은 월트의 머릿속에만 있어서 그냥 애니메이터들은 스튜디오를 지나다 만난 월트에게 픽업된 채 아무 생각없이 자리에 앉은 것이었다. 다들 영화나 만들줄 알았지 공원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놀이공원에 대한 꿈은 예전부터 월트의 머릿속에 잡혀있던 것이었다. 당시 디즈니 스튜디오는 일반인이 방문할 수 있는 관광코스를 개발 중이었고 그 이전부터 월트는 놀이공원에 대한 꿈을 공공연히 밝히곤 했다. 게다가 미국에도 흔하게 있었던 다른 유원지에 대한 월트 개인의 실망에서 비롯된 작업이기도 했다. 월트는 아이들에게 대단히 자상한 아버지였는데 주말마다 항상 두 딸을 데리고 간 유원지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내놓는 놀이공원 계획은 지나치게 허황된 것이어서 사실 가족들조차 쉽게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 아무튼 선구적으로 보든 과장된 것으로 치부하든 그런 개념은 월트 디즈니 만의 것이었고 실제 완성된 결과도 황당하고 황홀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욕망이 구체화된 공간으로서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놀이공간이었다.

'신데렐라'와 '피터 팬' 등의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면서도 월트는 놀이공원의 구상에 푹 빠져있었다. 백설공주 시절의 과격하고 비장한 열정이 다시 한번 도화선을 만난 터였다. 무엇보다도 WED에 모인 소규모의 직원은 예전 월트가 자랑하던 수공업 체제의 작은 공동체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디즈니랜드는 결국 월트 자신의 과거와 영광을 다시 되살리기 위한 자연스러운 욕망의 실현이었으리라. 밤샘회의가 이어졌고 직원들과 월트가 마음껏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어느 순간 디즈니랜드라는 명칭으로 바뀐 그 프로젝트는 세계에 담긴 온갖 재밌고 경이롭다고 판단되는 것을 모아두었다. 지금으로 치면 포스트 모던한 작업이었고 이는 당시 로스엔젤레스의 건축적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20세기 들어 급격한 산업발달이 이루어진 로스엔젤레스는 헐리우드의 영향으로 다양한 예술이 혼종되는 경계에 서있었다. 디즈니랜드를 디자인한 애니메이터들은 마치 영화 세트처럼 그 공간을 자유롭게 사유하고 채워놓았다. 서부의 마을과 마셀린, 그리고 심지어 미래와 동화도 있었다.
월트는 자신의 공원에 어린시절의 추억과 더불어 미국적 원형을 담아냈고 거기에 환상을 덧붙였다. 디즈니랜드는 미국보다 더 미국같은 공간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구상이 거듭되던 무렵 마침내 모두가 달가워하지 않던 현실적인 문제가 눈앞에 걸려들었다. 공원을 지을 엄청난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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