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랜드와 미국의 신화 4화 디즈니 리뷰

디즈니랜드와 미국의 신화

4화 디즈니 왕국 


1955년 7월 17일 디즈니랜드가 마침내 개장했다. 개장 후에도 공사는 완전히 마무리되지 못했다. 공상과학적인 테마로 채워진 '투머로우 랜드'는 타일도 다 깔지 못한 채 결국 첫 손님을 받고야 말았다. 월트는 개장 전날부터 너무나 불안해했고 급기야 그날 저녁 뛰어가서 '해저2만리'에 나오는 대왕오징어를 디즈니랜드에 전시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그는 스튜디오에서 반쯤 표면이 망가진 오징어 모형을 가져다 그날 밤을 새워가며 직접 작업용 마스크를 쓰고 스프레이를 뿌려댔다. 그 난리를 치고선 또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바로 개막식 준비를 위해 달려갔다.

독점계약을 맺은 ABC 방송사은 개막식 생방송 특별 중계를 위해 약 서른대의 카메라를 동원하는 등 당시 사상 최대의 촬영 인력을 공원에 배치했다. 비록 같은 업계에 종사하던 이들은 공원의 성공 여부에 난색을 표했지만 개막식 만큼은 전국민적인 관심을 모으는 행사였다. 실제로 이날 집에서 개막식을 시청한 사람만 7000만명으로 집계되었고 사실상 디즈니랜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개장 이전부터 공원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미어터지듯 몰려왔고 그것으로 개장일의 악몽은 이미 예고된 듯 보였다. 개막식 사회를 맡은 세명의 진행자 중에는 훗날 미국의 40대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도 있었는데 세명의 사회자들은 여기 모인 사람들이 훗날 역사적 광경을 보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실제 그날 생방송


사실 개막식은 언론인과 초청장을 받은 일반 관객만을 대상으로 한 제한된 행사였다. 초청장은 당시 공원의 최대 수용 인원인 만오천장이 배부되었는데 이미 삼만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공원에 몰려들고 있었다. 공원에 대한 엄청난 관심 덕에 위조 티켓이 진작부터 돌았기 때문이었다. 공원 인근 교통은 완전히 마비되었고 입장이 지연되면서 담장을 넘어 사람들이 공원으로 들어가는 황당한 일도 생겼다. 어떤 사기꾼은 거기서 사다리를 놓고 받지도 않은 티켓값을 대신 걷어가기도 했다. 수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공원은 삽시간에 마비되었다. 사람들은 배를 채울 곳이 부족하자 짜증을 냈고 자동판매기도 모두 아침에 매진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섭씨 38도에 육박한 무더운 날씨는 아스팔트를 녹여 길 바닥을 모두 망가뜨려 놓았다. 하이힐이 아스팔트에 꽂히는 소동이 연달아 벌어질 정도였다. 이날은 주인공인 월트마저 쇼에 입장하는 게 저지될 정도로 사람이 많았고 생방송 도중에 예상치 못하게 기계가 고장나는 장면이 줄줄이 방송을 탔다. '판타지 랜드'에서는 가스 유출 사고가 생겨 결국 오후에 방문객의 입장이 제한될 수 밖에 없었다. 이날을 언론에서는 '검은 일요일'이라고 불렀다.

어쨌거나 그 날의 난리통에도 월트 디즈니만은 유달리 침착했다. 공원에 쓰인 못의 개수까지 외우고 페인트까지 직접 칠한 그만의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4시 40분경에 준비된 연단에 오른 월트가 방문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행복한 곳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디즈니랜드는 바로 여러분의 나라입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이곳에서 과거의 즐거웠던 추억들이 되살아 날 것이며,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도전과 미래에 대한 약속을 향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디즈니랜드는 지금의 미국을 만들어낸 이상과 꿈, 그리고 힘겨운 현실들에 헌신을 바치는 곳입니다 ... 이곳이 전세계로 향하는 즐거움과 영감의 원천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월트는 그날 저녁 디즈니랜드의 소방서 2층에서 불꽃놀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보면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월트 디즈니의 헌사


 그 날이 악몽이었던 지옥이었던 디즈니랜드는 이후 미국의 문화적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시각적 예술이 촉각적인 경험으로 뒤바뀌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사실이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화보다 디즈니랜드에서 더 쉽게, 그리고 먼저 증명되었다. 영화란 장르가 그렇듯 영화꾼들이 만든 이 공원은 관객들에게 어떤 정서와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전달했다. 그것은 구겨져 있던 과거의 추억과 조우하고 그를 통해 멋모르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광기를 해방시키는 일종의 편안함과 친숙함 같은 것이었다. 벤야민은 30년대 논문에서 디즈니 영화들이 성공한 것은 관객들이 자신의 삶을 그 영화 속에서 재인식했기 때문이었다고 제시한 바 있다.  20년이 지난 후 디즈니랜드의 성공은 그와 같은 공식에서 다시 한번 이루어졌다. 관객들이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마음의 평화와 삶에 대한 강한 통제력이었다. 디즈니랜드에서는 공포조차도 극적인 해피엔딩을 위해 통제된 조건이었다. 무서워할 것은, 나를 겁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독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고 훗날 디즈니랜드와 미국 자체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월트 디즈니는 현실에서 실질적인 위협을 제거함으로써 현실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정신적 범죄의 혐의를 받았고 그 자신도 그의 공원처럼 가짜라는 판정을 받았다. '디즈니랜드는 실제 미국이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말한 장 보드리야르의 제시대로 디즈니랜드는 미국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거기서 말하는 미국이란 철저하게 환상과 즐거움만을 위해 주조된, 허구의 이미지로 겹겹이 둘러쌓인 상징들의 집합같은 것이리라. 미국은 그들이 19세기부터 내세운 보수적인 가치가 실제로 무너져가고 있음에도 그 사실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월트 디즈니와 디즈니랜드를 내세웠다. 월트 디즈니의 이미지가 보수적이고 체제 순응적으로 변모한 것은 실제 월트가 그러했다는 사실보다도 미국인들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또 다른 가짜였다. 
 


검은 일요일이 지나가고 정식으로 공원이 오픈한 월요일에도 방문객들은 쉴새없이 밀려들어왔다. 새벽 두시부터 줄을 서 영광의 첫 티켓을 구매한 데이비드 맥퍼슨은 디즈니랜드 평생 입장권을 받았다. 그를 비롯해 첫주에만 16만 1657명이 디즈니랜드를 방문했고 개장 2년을 넘기고 나서는 천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디즈니랜드를 다녀갔다. 완벽한 대성공이었다. 스튜디오는 1955년에 바로 전 해의 두배를 훌쩍 넘는 2450만불의 수익을 올렸다. 당시 디즈니랜드의 입장료는 성인기준으로 1불이었는데 어트랙션(탈것) 비용은 따로 내야했다. 같은 해 티켓제가 도입된 이후에는 A부터 C까지 등급이 나누어진 티켓이 처음 등장했다. A 티켓으로는 운송 수단같은 작은 어트랙션만 탈 수 있었는데 59년에 추가된 E  티켓은 가장 값비싸고 인기많은 어트랙션을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이었다. 현재 테마파크에서 가장 재밌는 놀이기구를 지칭하는 은어인 E-티켓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어휘이다.

공원은 금세 미국의 대표 관광지로 자리매김했고 인근지역을 방문한 관광객의 공원 방문률도 90%에 달했다. 해외 방문객들의 열정은 더했다. 59년 소련의 국가원수 니키타 흐루시초프의 디즈니랜드 방문계획은 심지어 외교문제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흐루시초프는 당시 디즈니랜드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가 국무성이 안전 문제로 그의 디즈니랜드 방문을 제한했는데 화가 난 그는 무기경쟁을 하겠다는 거냐며 자신은 미국 문화의 정수를 보기 위해 바로 여기 LA에까지 왔다고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이 모든 공의 실질적 주인공은 월트 디즈니였다. 사실상 이 디즈니랜드의 대성공을 계기로 월트는 이후 영화업계와 애니메이션에서 더 멀어졌다. 1960년에는 동계 올림픽 개막식 위원장 자리를 맡았고 뉴욕 세계 박람회에서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다. 그의 예술관이 새삼스럽게 재주목되면서 뉴욕 현대미술관이 그를 주제로 전시를 준비하기도 했다. 심지어 50년대 말에는 노벨 평화상의 강력한 후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찬사를 떠나 그는 디즈니랜드 그 자체였고 그 공원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천성적으로 완벽주의자였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사실때문에 일평생을 불만족스럽게 살았던 월트였다. 그에게 디즈니랜드는 영원히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이후에도 월트의 고집대로 공원에 끊임없는 재투자가 이루어졌고 확장 공사가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된다. 월트는  디즈니랜드에 그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런 기회도 영광도 그의 인생에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었다.

<이야기는 월트 디즈니의 유작 정글북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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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린드 2009/09/27 13:46 # 삭제 답글

    BBC 에서 선정한 죽기 전에 가야 할 곳 4 위가 디즈니 랜드 더군요. 정말 하나도 모르고 있었던 디즈니 랜드의 역사와 월트 디즈니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어서 정말 유익한 글이었어요^^ 재미도 많이 함유되어 있었고요. 다음 글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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