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디즈니 스토리
6화 첫 작품
어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 대개 사람들의 관심은 그 새로움이 주는 신비함에 쏠린다. 그러나 그 후광이 사라지면 결국은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초기 애니메이터들은 애니메이션의 신기한 속성에 힘입어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면 위의 만화가 살아움직일 것을 요구받으면서 그들은 치명적으로 네러티브의 빈약함과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림을 잘 그리고 또 빠르게 그리는 것말고는 내세울만한 게 없었던 것이다. 월트 디즈니는 그런 점에서 운이 좋았다. 그는 스토리텔링과 유머에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고 그 장르에 대해 겉핥기식이 아닌 진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일을 시작했다.
월트는 집의 차고를 스튜디오로 개조해 거기서 다니던 회사의 카메라를 빌려다 영화적인 기교를 익혔다. 물론 그런 기교는 촬영방식을 확인하는 식의 거의 원초적인 작업이었고 무언가를 알아볼만한 애니메이션 교습서도 드물었다. 당시 애니메이션에 관심있던 사람들의 필독서였던 E.G 러츠의 애니메이션 교습서만이 월트의 유일한 교과서였고 그것을 읽으며 월트는 셀 애니메이션의 기본기를 익혔다. 당시 애니메이션들은 상당히 단순하고 조악한 것이었고 그 짧은 역사와 기교를 담은 책도 사실 대단하다고 말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920년에 발간된 이 책은 지금도 살 수 있고 여전히 애니메이션 초입자에게 권위있는 책으로 꼽힌다. 애니메이션을 하기에 어떤 성격이 적절한가까지 다루고 있는 책이다.

회사에서의 낮일이 끝나고 나면 월트는 어브 아이웍스 등의 동료들과 함께 캔자스 시티 미술학원에 다니며 드로잉 수업을 들었다. 기본기가 닦이기 시작하면서 그는 이제 영화광고업자로 전환한 회사의 사장 코거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요청해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매체에 관심이 많았던 코거조차도 셀 애니메이션의 제작에 필름을 쓰는 일에는 반대했고 월트는 결국 자력으로 첫걸음을 내딛을 수 밖에 없었다. '래프 오 그램 (Laugh-O-Gram)'이라고 이름지은 1분짜리 애니메이션 필름 릴을 회사 동료였던 하먼 형제와 만들어서 뉴먼 극장의 주인 프랭크 뉴먼을 찾아갔다. '래프 오 그램'은 그시절의 소단위 규모의 사회문제들을 풍자한 짧은 만화로 신문에 연재되는 풍자만화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이었다. 월트가 찾아간 뉴먼은 예전에 월트가 일했던 미술가게의 페스먼이 소개해준 자였는데 생김새다운 호탕한 성격으로 1분의 짧은 시사를 마친 뒤 지체없이 그 필름을 사고는 월트와 시리즈 계약도 맺었다. 월트는 훗날 래프 오 그램이 팔릴 때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고 회고했지만 실제로 그 필름 릴은 한푼의 수익도 못받을 것을 염두하고 마진없이 넘긴 것이었다.
그렇게 나온 래프 오 그램 시리즈는 월트의 주업이 아닌 방과후 일과였고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게 다 나중에 경험이 되겠거니하며 한푼도 받지 않고 그 일에 참여했다. 그러나 정말로 거기서 아무런 소득도 올리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월트는 그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름값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회사에서의 주급도 올라갔다. 그러나 월트는 만족할 줄 모르는 야심가였다. 그는 애니메이션의 길이를 좀 더 늘려보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돈과 시간이었다. 독립하기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발목을 잡고 있었다. 간신히 저축액을 털어 카메라와 삼각대를 사고 무급으로 일해볼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로 했다. 하먼 형제를 비롯해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그림을 그리고 테스트용 실사영화를 찍으며 연습을 했다. 나중에 하먼은 풋내기였던 자신들의 목적이 결국은 돈과 명성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조금식 월트의 이름이 바깥으로 퍼져나가고 있긴했어도 두가지 모두 쉽지 않았다.

월트는 6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하면서 소재에 대한 고민도 시작했다. 첫작품은 '빨간 망토' 아니면 '브레멘 음악대' 둘 중 하나가 될 것이었다. 동화나 우화를 빌려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한 것은 훗날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시절(심지어 지금까지도!)에도 적용되었지만 이는 사실 당시 뉴욕에서 잘 나가던 애니메이터 폴 테리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1921년 5월에 자신의 첫 이솝우화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발표한 폴 테리는 애니메이터로서 크게 성공을 거듭하던 중이었다. 월트는 후에 자신의 초기 목표가 폴 테리의 작품들에 근접하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실제로 가장 먼저 만든 작품은 래프-오-그램과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이었던 '래플릿'이란 애니메이션이었다. 직장에 다니는 중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실험보다는 익숙한 것을 택했지만 그 마저도 장장 육개월이나 걸려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그는 자신의 마음에 자리잡은 근거없이 부푼 희망에 알맹이들을 채울 수 있었다. 그는 과감하게 캔자스 시티 슬라이드사(관두던 시점에는 필름 광고사로 이름을 바꾸었다)를 그만두었다.
관두자마자 월트는 자신의 작품명을 따 래프 오 그램 필름사를 설립하고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그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아버지는 알거지가 된다고 뜯어말렸지만 월트는 남의 눈치를 보며 짜투리 시간을 쪼개 일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 집입한지 2년이 조금 넘어 생긴 일이었다. 그러나 그 회사의 설립은 믿음에서 근거한 것이지 실증적으로 회사가 잘굴러가리란 보장은 조금도 없는 것이었다. 월트는 무리해서 회사를 주식회사로 탈바꿈한 다음 애니메이션 제작비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금전적인 위기가 닥칠 전조였다. <계속>

어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 대개 사람들의 관심은 그 새로움이 주는 신비함에 쏠린다. 그러나 그 후광이 사라지면 결국은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초기 애니메이터들은 애니메이션의 신기한 속성에 힘입어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면 위의 만화가 살아움직일 것을 요구받으면서 그들은 치명적으로 네러티브의 빈약함과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림을 잘 그리고 또 빠르게 그리는 것말고는 내세울만한 게 없었던 것이다. 월트 디즈니는 그런 점에서 운이 좋았다. 그는 스토리텔링과 유머에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고 그 장르에 대해 겉핥기식이 아닌 진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일을 시작했다.
월트는 집의 차고를 스튜디오로 개조해 거기서 다니던 회사의 카메라를 빌려다 영화적인 기교를 익혔다. 물론 그런 기교는 촬영방식을 확인하는 식의 거의 원초적인 작업이었고 무언가를 알아볼만한 애니메이션 교습서도 드물었다. 당시 애니메이션에 관심있던 사람들의 필독서였던 E.G 러츠의 애니메이션 교습서만이 월트의 유일한 교과서였고 그것을 읽으며 월트는 셀 애니메이션의 기본기를 익혔다. 당시 애니메이션들은 상당히 단순하고 조악한 것이었고 그 짧은 역사와 기교를 담은 책도 사실 대단하다고 말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920년에 발간된 이 책은 지금도 살 수 있고 여전히 애니메이션 초입자에게 권위있는 책으로 꼽힌다. 애니메이션을 하기에 어떤 성격이 적절한가까지 다루고 있는 책이다.

함께 일한 사람들. 오른쪽 끝이 월트 디즈니.
회사에서의 낮일이 끝나고 나면 월트는 어브 아이웍스 등의 동료들과 함께 캔자스 시티 미술학원에 다니며 드로잉 수업을 들었다. 기본기가 닦이기 시작하면서 그는 이제 영화광고업자로 전환한 회사의 사장 코거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요청해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매체에 관심이 많았던 코거조차도 셀 애니메이션의 제작에 필름을 쓰는 일에는 반대했고 월트는 결국 자력으로 첫걸음을 내딛을 수 밖에 없었다. '래프 오 그램 (Laugh-O-Gram)'이라고 이름지은 1분짜리 애니메이션 필름 릴을 회사 동료였던 하먼 형제와 만들어서 뉴먼 극장의 주인 프랭크 뉴먼을 찾아갔다. '래프 오 그램'은 그시절의 소단위 규모의 사회문제들을 풍자한 짧은 만화로 신문에 연재되는 풍자만화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이었다. 월트가 찾아간 뉴먼은 예전에 월트가 일했던 미술가게의 페스먼이 소개해준 자였는데 생김새다운 호탕한 성격으로 1분의 짧은 시사를 마친 뒤 지체없이 그 필름을 사고는 월트와 시리즈 계약도 맺었다. 월트는 훗날 래프 오 그램이 팔릴 때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고 회고했지만 실제로 그 필름 릴은 한푼의 수익도 못받을 것을 염두하고 마진없이 넘긴 것이었다.
그렇게 나온 래프 오 그램 시리즈는 월트의 주업이 아닌 방과후 일과였고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게 다 나중에 경험이 되겠거니하며 한푼도 받지 않고 그 일에 참여했다. 그러나 정말로 거기서 아무런 소득도 올리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월트는 그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름값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회사에서의 주급도 올라갔다. 그러나 월트는 만족할 줄 모르는 야심가였다. 그는 애니메이션의 길이를 좀 더 늘려보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돈과 시간이었다. 독립하기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발목을 잡고 있었다. 간신히 저축액을 털어 카메라와 삼각대를 사고 무급으로 일해볼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로 했다. 하먼 형제를 비롯해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그림을 그리고 테스트용 실사영화를 찍으며 연습을 했다. 나중에 하먼은 풋내기였던 자신들의 목적이 결국은 돈과 명성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조금식 월트의 이름이 바깥으로 퍼져나가고 있긴했어도 두가지 모두 쉽지 않았다.

래프-오-그램 스튜디오. 지난 2004년에 무너졌는데 디즈니 일가가 45만 달러를 들여 복원 중이다.
월트는 6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하면서 소재에 대한 고민도 시작했다. 첫작품은 '빨간 망토' 아니면 '브레멘 음악대' 둘 중 하나가 될 것이었다. 동화나 우화를 빌려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한 것은 훗날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시절(심지어 지금까지도!)에도 적용되었지만 이는 사실 당시 뉴욕에서 잘 나가던 애니메이터 폴 테리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1921년 5월에 자신의 첫 이솝우화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발표한 폴 테리는 애니메이터로서 크게 성공을 거듭하던 중이었다. 월트는 후에 자신의 초기 목표가 폴 테리의 작품들에 근접하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실제로 가장 먼저 만든 작품은 래프-오-그램과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이었던 '래플릿'이란 애니메이션이었다. 직장에 다니는 중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실험보다는 익숙한 것을 택했지만 그 마저도 장장 육개월이나 걸려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그는 자신의 마음에 자리잡은 근거없이 부푼 희망에 알맹이들을 채울 수 있었다. 그는 과감하게 캔자스 시티 슬라이드사(관두던 시점에는 필름 광고사로 이름을 바꾸었다)를 그만두었다.
관두자마자 월트는 자신의 작품명을 따 래프 오 그램 필름사를 설립하고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그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아버지는 알거지가 된다고 뜯어말렸지만 월트는 남의 눈치를 보며 짜투리 시간을 쪼개 일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 집입한지 2년이 조금 넘어 생긴 일이었다. 그러나 그 회사의 설립은 믿음에서 근거한 것이지 실증적으로 회사가 잘굴러가리란 보장은 조금도 없는 것이었다. 월트는 무리해서 회사를 주식회사로 탈바꿈한 다음 애니메이션 제작비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금전적인 위기가 닥칠 전조였다. <계속>
태그 : 디즈니




덧글
잠본이 2009/10/22 21:28 # 답글
나중에 폴 테리가 낳은 마이티 마우스가 미키 아류로 취급받는 걸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군요 OTL
jun Boy 2009/10/23 00:24 #
역시 유명하고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