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디즈니 스토리 10화 디즈니 리뷰

월트 디즈니 스토리


10화 오스왈드 래빗

월트는 25년에 스튜디오의 직원 중 한명과 결혼했다. 릴리언 바운즈는 월트보다 네살 연상으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다소 엉뚱하게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보조직원 자리로 들어왔다. 당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메인 작업을 보조하는 일뿐이었는데 그녀 역시 디즈니 브라더스 스튜디오에서 페인터 일을 하던 지인의 소개로 들어온 것이었다. 릴리언은 채색작업말고도 월트의 비서 역도 겸했는데 월트도 그녀가 마음에 들었는지 퇴근하는 다른 직원들을 차로 데려다 주면서 릴리언만큼은 가장 마지막에 내려다 주곤 했다고 한다.(그게 그녀의 자랑거리였다고) 그녀의 집은 스튜디오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집으로 그녀를 데려다 주던 어느 날부터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했고 형 로이 디즈니가 결혼하고난 뒤로 혼자 살던 월트는 결혼을 앞당겼다. 둘은 만나지 일년만에 결혼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좋은 일도 잠시, 배급을 맡던 찰스 민츠와의 긴장이 가시기도 전에 월트가 제작한 영화 '앨리스 코미디 시리즈'의 주인공 버지니아 데이비스와 스튜디오 사이에서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스튜디오에 애니메이터들이 대거 고용되면서 앨리스 코미디는 달라지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의 비중이 실사배우의 출연분량을 월등히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출연분량이 줄어들면서 월트는 계약을 조정하고 싶다고 데이비스의 부모에게 제안했고 데이비스 부부는 발끈해서 월트가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화를 냈다. 어쨌거나 돈 문제에 있어서 예민하지 않을 수 없던 스튜디오는 버지니아 데이비스 대신 주급을 훨씬 적게 받는 어린 배우들과 새로운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버지니아 데이비스와 디즈니의 인연은 후에도 계속되어서 나중에 월트가 장편영화를 처음 제작할때 그녀가 백설공주의 목소리로 테스팅을 받기도 했다. 배우 일을 그만둔 뒤에도 디즈니 애니메이션 부서에서 선화, 채색 작업일을 하기도 했으며 말년에는 디즈니 크루즈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버지니아 데이비스. 2008년 디즈니 관련 행사에서


20년대 디즈니 스튜디오의 초창기 시절에 주로 장벽이 되었던 문제는 역시 부족한 돈에 관련된 것이었지만 그보다도 월트가 얼마나 작품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느냐의 문제로 두고 직접적인 갈등이 불거졌다. 월트는 작품의 질적인 면에 관여하는 민츠에게 작품에 대한 권한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위임되지 않으면 계약을 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때마침 헐리우드에서 배급사의 판도가 바뀌고 있었다. 주단위의 소규모 배급망에서 전국단위로 배급을 하는 거대한 배급사들이 20년대 중반 이후 등장했다. 장차 거대 자본이 투입된 영화들과 블록버스터가 등장하기 위한 전초전이었던 셈이다.

월트가 거대 배급사인 필름 부킹 오피스의 대표에게 찰스 민츠와 협상하는데 대한 불만을 털어놓고 이런 사실이 민츠의 귀로 들어가면서 둘의 사이는 한층 더 격렬하게 나빠졌다. 그렇지만 월트는 여전히 업계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비록 이 시기에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야심을 드러내기 위해 스튜디오를 이전하고 이름 역시 형의 동의를 얻어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로 바꾸었지만 회사는 앨리스 코미디로 거의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버는 족족 다시 계약된 새 작품을 위해 그 돈을 투자해야만 했고 더 큰 문제는 앨리스의 판권이 월트에게 없었다는 점이었다. 월트는 선수금을 위해 계약 당시 작품의 판권을 모두 찰스 민츠에게 넘긴 상태였다. 여러 모로 복잡하게 얽혀있던 둘은 일단 원만한 영화 제작을 위해 협상을 급하게 마무리 짓고 화해하는 척 했다.

그러나 돈과 배급 문제 그리고 배우 문제가 얽히면서 스튜디오의 분위기도 부쩍 나빠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큰 재앙의 불씨였고 훗날 일어날 사건들의 암시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월트는 이 주나 삼 주만에 짧막한 애니메이션 한편을 완성시켜야 하는 계약때문에 무척 날카롭고 예민하게 굴기 시작했다. 찰스 민츠가 월트를 채찍질하면 월트가 다시 애니메이터들을 채찍질하는 형식이었다. 그의 강압적인 태도와 신경질에 못견딘 애니메이터들이 불만을 품고 몇몇은 마침내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가버렸으며 또 몇몇은 해고되었다. 심지어 애니메이터들 중 한명이던 휴 하먼은 다른 애니메이터들에게 월트를 배신하고 다른 스튜디오로 모두 옮기자고 설득중이었다. 황당하게도 동참하기로 한 애니메이터들이 다른 이유로 해고되면서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예전같지않게 험악해졌다.

그러던 차에 찰스 민츠는 월트에게 앨리스 코미디 시리즈를 그만 제작하자고 제의한다. 단시간에 너무 많은 영화가 나온 앨리스 코미디는 이미 생명력을 잃어가던 차였다. 유머는 늘어지고 형식은 완전히 판에 박은 듯 똑같아지고 있었다. 비슷한 내용으로 장장 쉰 여섯편이 나온 상황이었다. 월트 역시 새로운 시리즈가 필요함에 동감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의 요구에 응답해 개발된 것이 바로 오스왈드라는 토끼 캐릭터였다. 당시 애니메이션 업계는 팰릭스 더 캣을 비롯한 고양이 캐릭터가 득세 중이었는데 스튜디오는 고양이가 진부해진 틈을 타 슬쩍 토기 캐릭터를 꺼내놓았다. 첫 편 'Poor Papa'를 시작으로 스물여섯편의 계약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Poor Papa'는 조잡한 구성과 낮은 완성도로 정작 상영되지는 못했다. 월트는 오스왈드를 좀 더 다듬어 보기로 한다.

오스왈드


그리고 그 방식은 캐릭터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그 동안의 애니메이션의 코미디는 무분별한 슬랩스틱과 패러디로 비롯된 것이었고 월트는 여기서 캐릭터를 좀더 입체적으로 구성해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비록 단편이지만 캐릭터에게 동기를 주고 그 동기로부터 불어나오는 의지를 통해 작품의 코미디를 새롭게 규정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바로 이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에게서 최초의 퍼스낼리티 애니메이션들이 등장했고 오스왈드가 그 첫번째 기수가 되었다. 그 생각의 차이에 비해 결과물의 차이는 굉장히 미미했지만 성과는 남달랐다. 유니버설에선 작품의 광고를 하면서 엄청난 걸작 영화가 2년간의 실험끝에 나왔다고 과장된 문구를 실으며 흥행에 대한 기대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는 2주만에 개발된 캐릭터였고 어쩌면 월트의 의도도 그렇게 구체적이지 못한 우연의 산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스왈드는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애니메이션의 진화를 한단계 앞당겨 놓았다고 당대와 후대 모두에게 높게 평가받았다. 그간의 고생이 모두 보상받는 셈이었다. 월트는 작품당 대략 500불의 이익을 올렸고 27년 한해에 개인적으로 5천불이 넘는 돈을 벌었다. 스튜디오의 직원도 스물두명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1928년 2월 '오스왈드 시리즈'의 재계약을 하러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있는 뉴욕에 간 월트는 로이에게서 청천벽력같은 전보를 듣게 된다. 찰스 민츠가 휴 하먼과 작당하여 월트가 데리고 있던 직원들을 빼돌렸다는 사실과 그가 유니버설과 오스왈드에 대한 독자적인 계약을 마친 상태라는 소식이었다. 월트에게 남기로 한 어브 아이웍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애니메이터들이 민츠와 새로운 계약을 맺었고 오스왈드의 판권을 가지고 있던 찰스 민츠는 디즈니의 회사에서 디즈니란 성을 가진 두 형제만 빼돌렸다. 월트는 오스왈드의 성공으로 찰스 민츠와의 계약에서 자신의 입지가 더 유리해지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찰스 민츠에게는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는 월트가 가장 불필요한 존재였고 그를 빼돌리기 위해 그간 치밀하게 준비해온 터였다. 배신을 당한 월트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가 이룬 성공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동료들까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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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450 2009/10/30 17:08 # 답글

    아. 다음편이 무지 궁금하네요 =ㅂ=..
  • 잠본이 2009/10/30 23:01 # 답글

    그야말로 청천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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