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디즈니 스토리 13화 디즈니 리뷰

월트 디즈니 스토리

13화 엉터리 교향악단

 

월트는 또 다시 적잖이 실망했다. 월트에게 연락해온 배급사들이 하나같이 탐내는 것이 그가 만든 영화가 아니라 그의 스튜디오였기 때문이었다. 월트는 남 밑으로 들어가서 이러쿵 저러쿵 명령을 받기는 죽어도 싫었다. 간신히 누군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차에 그가 순순히 스튜디오를 팔고 배급사 간부들의 깐깐한 주문에 맞추어 영화를 만들 이유는 없었다. 죽는 날까지 월트 디즈니는 그 누구를 위해서도 영화를 만드는게 아니라 자기, 자기자신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했다. 애니메이션은 그가 만든 일종의 해방구이자 완벽한 독립의 공간이였다.

한편 미키 마우스 시리즈의 제작을 하면서도 월트는 스튜디오가 지나치게 미키 마우스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새 작품의 제작을 서두른 이유는 아마도 작품을 통째로 빼앗겼던 기억의 상처가 너무 컸던 탓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연출이나 제작능력을 꾸준히 입증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여전히 겉으로 보기에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정작 그림을 그리지 않고 연출과 제작만 하는 월트를 무능하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스튜디오에는 이미 여러 군데에서 모인 최상급 애니메이터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스무명의 주요직원 중 여덞명이 애니메이터였다. 어브 아이웍스도 이제는 주요한 스케치만 하고 나머지는 다른 애니메이터들에게 진행을 맡기곤 했다. 스튜디오는 오스왈드 시절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간 후 분위기가 전혀 달라지고 있었다. 월트는 이전의 뒷통수 맞았던 경험에서 배운게 있는지 한결 직원들에게 여유있고 격식없이 보일려고 애쓰던 차였다. 여전히 일에서만큼은 똑부러지던 그였지만.
 

1930년. 아래인물들이 어브아이웍스, 월트디즈니, 칼 스탈링. 윗줄에서 세번째 인물이 레스 클라크.


월트는 계획중인 새로운 시리즈를 미키 마우스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만들어서 새로운 수요층을 끌어당길 작정이었다. 일단 특정한 캐릭터에만 의존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뚜렷한 아이디어를 못만들고 있을 때 어릴 적 캔자스 시티에서부터 친분을 쌓아왔던 작곡가 칼 스탈링이 먼저 제의한 것이 바로 뮤지컬 형식이었다. 스탈링은 이미 '미친 비행기'때부터 월트의 애니메이션의 음악을 작곡해주고 있었다. (나중에 워너브라더스에서 루니튠즈 시리즈의 음악도 만들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본 춤추는 해골광고를 응용하고 거기에 생상스의 음악적 감성을 더한 짧은 뮤지컬 형식의 영화를 만들자고 했고 월트는 기발하다며 즉각 스튜디오에서 제작을 서둘렀다. 이미 '증기선 윌리'때부터 사운드에 집착하기 시작한 월트였고 그에게 뮤지컬 영화의 제작은 필연적인 운명이었다. 그것이 그를 다른 애니메이션업계의 인물들과 차별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요소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영화가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한 팰릭스 시리즈같은 애니메이션은 극적으로 몰락하며 새 시대에 안녕을 고하는 중이었다. 그들이 유성영화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논쟁하며 옛 시대에 머물러있는 사이 월트는 캘리포니아에 녹음 스튜디오를 차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월트의 영화들을 배급하고 있고 사운드 시스템까지 관여하던 팻 파워즈가 서서히 걸림돌로 자리잡고 있었다. 여전히 월트는 파워즈가 어떤 인간인지 잘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파워즈는 자신이 특허를 가지고 있는 사운드 시스템인 시네폰의 사용을 위해 연간 만 삼천불을 십년동안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게다가 로열티와 계약금은 따로 받는 조건이었다. 당시 단편 애니메이션 한편의 제작비가 많이 잡아 오천불이었으니 어마어마하게 부담스러운 돈이었다. 그러나 월트는 파워즈의 의도를 조금도 의심치 않고 그의 능력을 믿던 차였다. '증기선 윌리'가 배급문제로 고전하던 사이 그 영화를 주 단위로 배급해 성공시킨 사람이 파워즈였기 때문이었다. 월트는 결국 스튜디오를 담보로 대출을 해서 그에게 돈을 지급하고 녹음스튜디오를 세웠다. 그 과정에서 모자르는 돈을 갚기위해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지 않던 일, 평생의 적이었던 아버지에게서도 돈을 빌리고야 말았다. 오리건주로 이사해 살고있던 일라이어스는 대출을 받아 월트와 로이에게 수천불을 빌려주었다. 한편 적지않은 돈을 대출받자마자 덜컥 파워즈와 계약을 해버린 월트에게 형 로이 디즈니가 화를 내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로이마저도 이때까지 파워즈의 진심은 모르고 있었다.


해골춤. 황당한 면이 없지 않지만 훗날 위대한 단편 애니메이션에서 높은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던 사이 만들어진 'The Skeleton Dance-해골춤-'은 흡족하지 못한 완성도로 뉴욕의 배급사들을 실망시켰다. 월트는 이미 이 작품을 시리즈물로 계획해놓은 상태였고 'Silly Symphonies-엉터리 교향악단-' 시리즈의 첫편으로 배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배급사들이 기괴한 감성의 작품에 놀라 배급을 주저하자 또 다시 제작비만 날리는 꼴이 되었다. 그러나 월트는 작품이 어딘가 실망스럽기도 해도 장기적으로 시리즈화될 가능성은 있다고 일종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해골 춤'은 결국 몇개의 극장에서 상영되는데 성공했다. 작품을 그린 어브 아이웍스는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보곤 사람들이 좋아서 웃는건지 그냥 비웃는건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작품은 예상치도 못하게 성공했다. 영화의 기괴함과 낯선 접근이 의외로 제대로 관중들에게 먹혀 들어갔던 셈이었다. 영화 관객 중 한명이었던 십대의 조지프 바바라가 이 작품을 보고 애니메이터로서의 꿈을 키웠다. 그는 나중에 플린스톤 시리즈와 스쿠비 두를 만들어냈다.

영화들의 성공으로 들어오는 돈이 상당했지만 나가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월트는 영화를 팔기 위해 더 바쁘게 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다. MGM사에 있던 감독 빅터 플레밍(오즈의 마법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과 작가 프란시스 마리온(20세기 가장 유명한 여성 극작가중 한명)이 월트를 MGM사의 사장 루이스 메이어에게 추천했지만 배급하는 것을 거절당하고 당시 메이저 스튜디오는 아니었지만 서서히 이름을 알리던 콜롬비아 스튜디오가 월트의 '미키 마우스 시리즈'를 받아들인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미키 마우스 클럽중 하나. 32년 사진이다.


서서히 미키 마우스의 전성시대가 개막하고 있었다. 인지도를 쌓아가던 미키를에게 커다란 팬층을 만들어낸 계기는 거대한 배급사나 월트 디즈니 본인의 아이디어가 아닌 LA 교외에 살던 헨리 우딘이라는 어떤 극장의 지배인이 낸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는 토요일마다 극장에서 미키마우스 클럽을 열어서 미키마우스 영화의 상영과 파이 먹기 콘테스트며 콘서트같은 다양한 행사를 엮어 파는 패키지 상품을 기획해 인기를 끄는 중이었다. 어느 토요일에는 천명이 넘는 아이들이 그 행사에 와서 신나게 놀았고 월트 디즈니도 초대되어 거기가서 미키의 인기를 실감하게 되었다. 헨리 우딘은 이런 행사를 전국적으로 확대해보자고 월트에게 제의했고 마침내 스튜디오의 대대적인 후훤을 받아 전국적인 미키마우스 클럽이 조직되었다. 월트 본인조차 그런 인기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미키 마우스 클럽은 그 시대 부모들이나 아이들이 타협할 수 있는 가장 건전하면서도 즐거운 오락문화였다.(현재까지도 비슷한 행사가 매년 애니메이션 개봉때마다 열린다) 급속도로 증가한 회원수가 절정에 이르면서 미국 전역에서 백만명에 육박했다. 때마침 스튜디오는 신문과도 계약하여 미키 마우스 연재만화를 시작하였는데 이 역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월트는 이 연재만화들을 해외로 수출하면서 달마다 수천불의 부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돈이 한푼도 남지 않아 고생하던게 불과 몇달 전 일이었는데 상황이 자꾸만 뒤집어지자 월트도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자꾸만 변해서 현기증이 날 지경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임시직원이었던 프레고트슨이 그린 미키 마우스 연재만화.
임시직이었지만 결국 1975년까지 50년 가까이 그렸다.   


별안간 아이웍스가 1930년 초에 스튜디오에 사표를 내면서 심상치않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당황한 로이 디즈니는 원인을 알아내려 하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는 대공황 시절이라 누가 회사를 그만두는 일은 그리 쉽게 생각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때마침 뉴욕에 가있던 월트로부터 파워즈가 어브 아이웍스를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월트는 초창기부터 함께 일해온 아이웍스가 자신에게서 등돌린 점에 대해 분노를 삭이질 못했다. 나중에 조금 그의 화가 누그러지게 한 것은 아이웍스가 파워즈와 직접 계약한 것이 아니라 대리인을 통해 계약한 것을 알고난 후였다. 아이웍스는 자신과 계약한 사람이 파워즈의 대리인이라는 사실도 모를 정도로 어수룩했다. 그렇지만 아이웍스가 디즈니의 스튜디오를 나가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는 월트의 영향력 하에 갇혀있는게 답답했고 애니메이터들이 늘어나면서 제 역할이 감소된 점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었다. 또 미키 마우스를 함께 만든 공에 대해 제대접을 받지도 못한다고 생각했고 어느날은 고소할 생각까지하다 그만두기를 반복했다.(파워즈가 부추겼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스튜디오를 나가는게 월트에게 치명적인 배신으로 이어질 줄은 알지 못했고 그럴 의향도 없었다. 어브 아이웍스만 그만둔게 아니었다. 칼 스탈링도 로열티와 지분에 대한 불평을 하다 불과 아이웍스가 사표를 던진 다음 날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월트는 초창기 스튜디오의 가장 큰 역할을 해냈던 두 명의 조력자를 순식간에 잃었다. 무엇보다도 이전 해부터 로열티 지급문제로 틀어지기 시작한 파워즈가 선수치고 배신했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그러나 예전처럼 당하고 있을 입장만은 아니었다. 월트는 파워즈를 상대로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계속>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mistisk.egloos.com/tb/1828975 [도움말]

덧글

  • 잠본이 2009/11/06 22:11 # 답글

    '예전의 내가 아니다!'라며 대반격을 가할 월트의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군요 OTL

    그건 그렇고 이번에는 조셉 바버라 깜짝등장 OTL
덧글 입력 영역


Snow White

F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