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소년지련 (1998)
퀴어 영화에는 두가지 흐름이 있는 것같습니다.
하나는 사회와 개인의 벽을 그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순수하게 개인과 개인의 사랑을 다루는 것이죠.
물론 이 둘은 서로 엮여서 더 그럴싸한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둘의 엮임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태를 벗어나긴 힘든 그저그런 싸구려 비극로맨스로
전락하기 일쑤입니다.
문득 톰행크스가 나왔던 필라델피아가 생각나는군요.
분류로 치자면 전자에 속하는 이 영화는 회사의 불합리한 처사에 반발해 승리해서 결국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존재감을 부여하는 내용이었죠. 아이다호도 생각납니다. 물론 이 영화를 퀴어물로
엮는 건 그다지 훌륭한 분류는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이투마마같은 성장물에 더 가깝지만 어쨌거나
기억의 저편에선 홀딱 벗은 채 껴안고 있었던 키아누 리브스와 리버 피닉스의 이미지가 생생한 걸요.
이 미소년 지련은 순수하게 개인과 개인의 사랑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 사회의 차가운
시선은 고려되지 않습니다. 최소한 가족에게만 들키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식이죠.
주인공들의 연애는 복잡하고 자유분방합니다. 그들은 성정체성의 고민보다 사랑의 불영속성과
불안정함에 괴로워 합니다. 아니, 동성애자로서 받는 차별따위는 애초에 결여된 것 같이 행동이
대담하기 그지 없습니다.
오히려 주인공 샘은 사랑이 가진 그런 이면때문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꼭 허진호 감독의 영화같지 않습니까?
최소한 이 작품을 인식적인 차원에서 진보된 것으로 봐주는 게 옳을 듯 싶습니다.
동성애자라서 불쌍하다는 식의 시선이 전혀 느껴지지 않거든요. 물론 (강력한 스포일러)
마지막에 샘이 아버지에게 동성애자인 것이 들켜 자살하기는 하지만 그건 서사에 가해진
일종의 비극적 장치에 불과할 뿐 작품 전반의 메세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아닙니다.
영화가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은 오로지 사랑의 진실된 존재에 관한 것 뿐입니다.
마지막에 샘이 자살했는데도 불구하고 애인인 젯이 안정을 취하고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던 것을
생각해 보세요. 그의 사랑이 진실된 것이었음을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는 행복한 것입니다.
일찌기 퀴어물이 이런 식으로 다뤄진 적이 많았던가요? 다른 작품을 몰라서 그런지
전 이 작품을 꽤 참신하게 보았답니다.
다만 매우 아쉬운 것은 연출과 연기의 미숙함입니다. 이 작품은 작위적 설정으로 몇몇
장면을 넘어가기도 하고 적은 러닝타임에 쓸데없는 관계의 남발로 좀 지저분한 구석이
많습니다. 몇몇 캐릭터는 너무 가벼워서 욕구에만 충실한 인간같구요. 연기도 어색합니다.
이 시기 홍콩 영화들이 좀 졸속인 경향이 있었지만 작품의 시놉이 나쁘지 않았다는 걸
고려해보면 조금 더 신경써서 찍는 편이 좋았을 뻔 했어요. 그래도 마지막에 오언조가
아버지에게 성정체성을 들키고 흐느끼는 장면은 좀 가슴이 아프더군요. 뻔한 공격도 가끔은 제대로
당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제목의 자신감이 대단하지 않나요? 미소년의 사랑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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