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리틀 Chicken Little (2005) 디즈니 스토리 텔링 대담

준:치킨 리틀이 벌써 2005년도 영화네요?
보이드: 자막판 개봉이 한정적이어서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간신히 막차타고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애들만 잔뜩 있었죠. 어쩌겠어요. 디즈니란 브랜드에 제목마저 리틀을 붙이고 나왔는걸요.
준: 어땠어요?
보이드: 최악이었죠. 이 영화가 얼마나 중요한 영화였는지는 이미 알고 있겠죠?
준: 그럼요. 픽사와 디즈니의 재계약 협상이 이루어지는 시기여서 서로 눈치들을 보고 있었죠. 디즈니 입장에선 니네없이도 잘 만들 수 있어란걸 보여줄 기회였고 픽사 입장에선 비싸게 회사를 파느냐 마냐가 걸려있었잖아요.
보이드: 그렇지만 픽사는 토이스토리2 이후로 디즈니를 탐탁치 않게 여겼었잖아요. 팔고 말고는 일단 재계약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다음에 할 수 있는 얘기 아닌가요?
준: 픽사의 걸림돌이었던 마이클 아이즈너가 쫓겨났기 때문이었죠. (자세한 것은 여기를)디즈니와 픽사 모두의 경사랄까요? 요새 CEO인 밥 아이거는 아이즈너가 흘리고 간 배설물을 치우느라 분주해요. 확실히 아이즈너가 탁월한 사업가이긴 한데 예술을 다루는 회사에서 그런 식으로 나간 건 비위상할만한 행동이었죠. 최소한 스티브 잡스는 예술을 볼 줄 아는 사람이잖아요?
보이드: 예술이요? 치킨 리틀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입에 담을 수 있을까요? 전 여전히 이 영화가 어떻게 이런 수준으로 나온건지 이해가 안가요. 위기가 닥치면 대개 사활을 걸고 만들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준: 그래도 대니 앨프먼의 스코어는 예술 맞잖아요. 올드 팝송의 리메이크도 들을 만 했구요. 스토리면에선 어느정도 동감해요. 이 영화는 정말로 어떤 그런 위기의식이 조금도 없는 영화에요. 비디오용 속편만큼이나 각본에 신경안쓴 티가 역력해요. 주인공의 성장담이나 코미디는 진부하고 에피소드를 두개 이어놓은 것같이 영화가 통일성도 떨어지죠. 캐릭터 자체도 솔직히 정이 안가요.

보이드: 영화는 치킨리틀이 각종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것으로 시작되지요. 물론 그는 의도한 게 아니지만요. 그렇게 동네에서 루저looser 대접을 받던 꼬맹이가 야구 시합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고 아버지의 신뢰를 되찾으며 동네의 영웅이 됩니다.
준: 다음은 제가 하죠. 그렇게 치킨리틀의 성공을 축하하던 날 밤 하늘에서 유에프오가 내려옵니다. 치킨리틀과 친구들은 이 유에프오의 공격에 정신없이 마을을 날뛰고 외계인들이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온 것이란 걸 알게되죠. 그리고... 그리고는 뭐가 그리고에요. 그다음엔 뻔한거죠.
보이드: 픽사였다면 최소한 닭이 주인공이면 양념통닭이 될지 후라이드가 될지 고민하는 이야기라도 했을 거에요. 이야기를 왜이렇게 끊어 놓은건지 이해가 안가요. 핸콕보다 더 저질이에요.
준: 아버지와의 에피소드를 통해 감정적인 뭔가를 끌어내려고 한 것이겠죠. 그래도 외계인에 대해선 초반에 가끔씩 복선을 날리긴 해요. 다 보고 난 다음에 아, 그랬었지 하는 부실한 복선이지만요.

보이드: 분명 영화는 후반부 외계인의 침공씬을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일거에요. 나머지는 서툴게 껴 넣은 흔적이 묻어나거든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영화는 외계인이 내려온 다음부터 한 이십분동안은 정말 재밌습니다. 서스펜스를 다루는 전통적인 디즈니식 연출력과 패러디기법, 캐릭터의 충분한 활용이 한데 어울려져 근사한 하모니를 내거든요. 최악이라고 말했지만 어쩐지 개운치않은 최악인건 끝 부분을 정말 잘 만들었기 때문이죠.
준: 특히 자판기씬은 굉장한 명장면이죠. 뭔가 이 영화에 껴있는 게 아까울 정도로요. 그렇지만 20분만 재밌으면 어떡해요. 영화는 81분인걸요.
보이드: 맞아요. 좀더 그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외계인과의 코믹 사투극을 영화 전반의 테마로 삼았다면 좋았을 뻔했어요. 초반에 야구씬은 진짜 지루했죠. 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디즈니에서 안 쫓겨 났을까요?
준: 제가 보기엔 영화의 스토리 보드를 감독해줄 사람 중에 제대로 된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꼴로 나온 거라고 생각해요. 제프리 카첸버그나 존 라세터처럼요. 뭐, 지금이야 존 라세터가 있으니 조금 안심이 됩니다. 최소한 내년에 나오는 공주와 개구리만큼은 기대할 만 하죠. 이 영화의 감독이 재기발랄한 명작을 만들었던 마크 딘달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당시 디즈니가 얼마나 위기였는지 상상도 안가요.
보이드: 딱 70년대에서 80년대에 닥친 상황하고 똑같죠. 디즈니가 죽은 이후에 영화사가 한동안 그의 향수에 단단하게 빠져 극복을 못하고 있었잖아요? 나중에 마이클 아이즈너를 위시해서 론클레멘츠와 존 머스커, 제프리가 들어오기 전까진 말이죠.
준: 그땐 아이즈너가 좋은 사람이었나요?
보이드: 최소한 혁신을 원했죠. 그게 필요한 시점이었고요. 그렇지만 그의 상업적 야심은 지나친 바가 컸어요. 애니메이터들을 해고해서 회사의 인건비를 감소시킨 건 여전히 최악이죠. 디즈니가 무덤 속에서 얼마나 속에 불이 났을까요.
준: 여튼 70년대에 각종 매너리즘에 빠져 정신 못차리던 회사에 신진 세력이 형성되면서 스토리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디즈니식 클래식 동화가 세련된 멋을 지니기 시작했죠. 인어공주는 정말 충격이었죠?
보이드: 저도 그 영화를 처음 극장에서 본 날 정신을 차릴 수 없었죠. 근본적으로 뭔가가 달라요. 십대들의 감성을 반영한 인어공주의 해피엔딩 스토리도 그렇지만 완벽한 조연 캐릭터들, 유머, 뮤지컬, 심지어 블록버스터 뺨치는 액션씬까지 딱 내가 보고 싶은 신나는 영화의 규격을 모두 갖추고 있었죠.
준: 미녀와 야수는 어땠나요. 이 영화의 각본과 연출에는 살아움직이는 감성이 존재했습니다. 이건 월트 디즈니도 해내진 못한 입체성이죠. 그의 영화가 동화책이라면 이 영화는 팝업북이에요.
보이드: 라이온킹은 비극의 요소를 넣었죠. 파토스가 느껴지는 미국 애니메이션은 처음이었어요. 이 작품이 실은 엉성한 구조를 가졌음에도 많은 이들에게 명작으로 기억되는 건 직접적으로 감정을 쑤시는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준: 그러던 것이 시간이 지나 점차 매너리즘에 봉착하고 평론가들의 맹공격이 시작되었죠.
보이드: 전 디즈니의 진부함은 좀 다른 차원의 공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매년 비슷한 내용이다란 식의 평론가적 발언은 딱 질색이었죠.
준: 왜요? 매년 별로 달라진 게 없지 않았어요?
보이드: 매년 새로운 관객층이 유입되는 것도 알아야죠. 애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거든요. 그 애들이 진부하고 자시고를 알겠어요?
준: 그렇지만 애들을 데리고 보는 부모들을 생각해봐요. 디즈니는 좀 더 스토리에 공을 쏟고 애정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었다구요. 따지고 보면 이 치킨 리틀도 평작은 되죠.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픽사들이 매년 마스터 피스를 내놓는걸보면 디즈니의 부진은 눈에 너무 잘보여요.
보이드: 에이그, 픽사에 너무 기대를 거는군요. 디즈니도 40년대와 90년대 이렇게 20년은 명작만 내놓았잖아요. 픽사가 2011년부터는 제작진이 확 바뀌는 걸 모르시나. 진짜 픽사의 도전은 그때부터입니다. 76억불의 가치가 있는지 증명할 단계죠.
준: 그래도 우리에겐 존 라세터가 있잖아요. 그러고보면 애니메이션의 질은 누가 감독인지보다 누가 프로듀서인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군요. 애니메이션에는 동네 마실나온 아주머니처럼 막 간섭하고 후벼파는 사람이 있어야해요. 디즈니나 라세터가 그런 인물이죠.
보이드: 라세터를 좋아하나보군요. Cars에는 혹평을 쏟아부었잖아요.
준: Cars가 드림웍스에서 나온 영화였으면 호평을 주었겠죠. 디즈니나 픽사가 기대치가 높은 건 어쩔 수 없어요. 명작이 상대적으로 많은 스튜디오들이잖아요? 치킨리틀이 최악이라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입니다.
보이드: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흥행은 잘되었죠?
준: 하늘이 기회를 주었나보죠. 치킨 리틀이 망했으면 디즈니는 픽사에게 100억불은 주었을 거에요. 25% DC할 수 있었던 건 작품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기 때문이었죠. 그렇지만 천운은 거기까지. 정말로 다시 관객들을 찾기 위해선 스토리에 애를 써야합니다. 2007년에 나온 로빈슨 가족도 부족해요. 그 이상의 뭔가가 나오길 바라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겠죠.
보이드: 물론이죠. 최소한 매년 극장에 가서 보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불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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