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디즈니 스토리

18화 장편 애니메이션의 꿈
단편영화는 좀처럼 수익성이 나지 않았다. 월트가 나가는 돈을 줄줄 막으려고 할 때 이미 스튜디오의 손해액은 30년대 중반에 이르러 3만불이 되었다. 워낙에 들이는 비용이 많았지만 돈 때문에 작품비용을 깎는건 월트로서는 생각치 않았다. 타협은 없었고 금전적인 이유든 도전적인 이유든 애니메이션의 길이가 단편에서 장편으로 확장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이미 단편에서 디즈니 스튜디오는 더 이상 새롭게 시도해볼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월트 디즈니가 장편 애니메이션을 생각하기 시작한건 30년대 초반부터였다. 이미 스튜디오는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애니메이션 제작 가능성을 오래 전부터 타진 중이었다. (그 작품은 이미 그 시기에 저작권이 소멸해 있었다) '밤비'도 월트가 가진 상태였다. 28년에 미국에서 히트친 소설 밤비는 원래 MGM사가 판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MGM측에서 월트가 만들어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의한 작품이다. 본래 34년도에 발표 예정이었지만 의인화된 동물이 아니라 실제 동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자 월트는 그 작품을 스튜디오 한켠으로 밀어놓았다.

월트가 첫 장편 애니메이션의 소재로 검토한 작품은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의 민담과 우화를 비롯해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그리고 '걸리버 여행기'등이 초창기에 논의되거나 제의된 작품이었다. 그러나 33년에 월트가 원작으로 확정지은 작품은 '백설공주'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 작품 얘기가 나올 때마다 작품의 예술적 가능성이 자신을 끌어당겼다고 말했다. 아마도 거기 나오는 방대한 캐릭터들에게 월트가 끌린게 분명했다. 거기엔 어린 시절의 추억도 한몫했다. 열 다섯일 때 본 마거릿 클락 주연의 영화 백설공주 영화(영화는 이미 30년대에 소멸되어서 월트조차 다시 보지 못했다)에 대한 깊은 인상이 커서도 남아있었던 것이다.
현재 백설공주의 내용은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그것은 흥미롭게도 월트 디즈니의 각색 이후에 정착된 이미지다. 그의 강력하고 독특한 각색법은 위력적으로 기존 동화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시작은 아무래도 이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부터 일 것이다. 월트는 상당히 평면적인 그림형제의 개작(원작은 작자를 모르는 구전동화다)을 당대에 도는 백설공주의 희곡의 여러 요소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모아 살을 붙이고 제멋대로 비틀고 다듬었다. 가령 제시 브래엄 화이트 버전의 백설공주에서 월트가 빌려온 설정은 왕비가 백설공주를 죽이기 위해 변장하는 모티프였고 자신이 보았던 영화의 기억을 떠올려 그 얘기를 덧붙이기도 했다. 난장이들의 독특한 성격이나 이름은 월트가 고유하게 작품에서 만든 설정이었다. 월트가 백설공주 스토리 전개를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겠다고 애니메이터들을 모았을 때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막연히 따분한 이야기겠거니 생각했던 이들은 월트가 새롭게 꾸며낸 이야기에서 종전에 알던 이야기와는 다르게 뭔가 살아움직이는, 현대적인 맛을 느꼈던 것이다.
월트는 작품의 제작기간을 약 일년에서 일년반으로 잡았다. 34년 겨울에 준비된 프레젠테이션에서 월트는 본격적인 장편 애니메이션의 시작을 선언했고 작품의 스토리라인을 밝혔다. 월트 본인이 평소 회의에서 하던 것처럼 사람들 앞에서 직접 연기했는데 총 세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디즈니의 수석 애니메이터였던 조 그랜트는 그 열정에 할말을 잃었다고 했다. 물론 여전히 커다란 걸림돌이 있었다. 스튜디오는 그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돈이 조금도 없었다. 단편 영화로 버는 돈은 거의 모두 다시 영화를 위해 재투자되어 영화 제작에 쓸 선수금은 남아있질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 단편 영화보다 열배 이상의, 혹은 그 보다 더 많은 돈이 들게 분명한 일이었다. 배급사였던 UA는 이런 장편 애니메이션이 틀림없이 해외에서도 잘 먹힐 것이라고 하면서도-이미 단편영화들을 장편길이로 묶어 상영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선수금을 부담하는데는 주저했다. 추정되는 비용이 40만불이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UA가 예상한 백설공주의 수익은 175만불 정도였지만 그들은 선뜻 그 제작비를 내놓을 생각은 없었다.
많은 스튜디오가 그 작품 제작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20세기 폭스사가 작품의 투자에 관심을 가졌다가 물러나는 사이에 월트는 주변 일은 상관없다는 듯이 시나리오의 제작에 들어갔다. 월트를 포함해 스튜디오에 있던 거의 여덞, 아홉명이 시나리오 하나를 붙잡고 늘어졌는데 기존에 있던 다양한 버전을 다 염두해 두었다. 가령 왕비가 죽는 장면을 처리할 때에는 기존에 돌던 버전처럼 달궈진 구두를 신고 왕비가 춤추며 죽는다던지 그들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갈지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이미 백설공주에 푹 빠진 월트는 한때는 열렬하게 주력했던 단편 제작을 전적으로 다른 이들한테 밀어둔 채 백설공주의 스토리 작업에만 매달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모든 작업은 백설공주가 난장이들의 집을 찾는 장면부터 시작되었는데 월트가 그 대목을 제일 흥미로워 했기 때문이었다. 그 씬만의 시나리오가 초고가 나오고 영화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전체 대본은 35년의 중반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일은 몹시 더디게, 월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발자국도 더 앞으로 나가질 못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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